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나 DuNa May 06. 2022

나의 묘연은 그렇게 닿았다

반려묘를 맞이하기까지, 내 각오와 마음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검열'

우리 부부는 고양이를 참 좋아한다. 연애 때부터 여러 고양이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면서 랜선 집사로 지내왔다.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고 이따금씩 입양이나 분양 충동이 오기도 했지만, 서로가 서로의 충동 심리를 억눌러줬다. 어설픈 관심과 사랑으로 한 생명을 책임지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여행도 참 좋아한다. 연애 때부터 일 때문에 우울하다는 핑계로 여행을 훌쩍 떠나고, 좋은 일이 있으니 기념해야 한다고 여행을 떠나고, 한동안 여행을 못 가 근질근질하다고 또 여행을 떠났다. 우린 반려동물을 놓고 휙 떠날 자신감도 매정함도 없었고, 그렇다고 여행이 없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랜선 집사로 머물렀다.


이런 우리가 지금 루나라는 예쁜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와 같은 충동적으로 떠나는 여행을 멈췄다.




2022년 4월, 아주 늘어지게 누워있는 두턱 루나


2020년 11월. 코로나로 싱가포르에 발이 묶인 지 9개월이 됐다. 원래의 우리라면 이미 그 9개월 사이에 최소 두세 번의 여행을 다녀왔을 것이다. 싱가포르로 이사 왔을 때, 동남아 여행을 정복하려는 부푼 마음을 가지고 왔지만, 동남아 정복은커녕 코비드-19 팬데믹 때문에 결혼식조차도 치르지 못했다.


어느 날 불현듯 '지금 코로나 상황을 보아하니 적어도 일 년 이상 이런 생활을 더 이어나가야 할 것 같고, 둘 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반려묘를 맞이할 가장 좋은 타이밍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들었다. 한 일주일을 ‘기다, 아니다’를 실랑이하다 결국 ‘그래 한번 보러나 가보자!’로 이어졌다.


막상 고양이를 보러 가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우리의 마음이 아직 갈피를 못 잡아서인지 여러 고양이를 만나면서도 선뜻 이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보러 왔다는 분양자의 은근한 재촉과 채근에도 결국 '조금 더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라고 말하며 발을 돌렸다. 마음 한 구석에 과연 우리가 이 작은 생명을 잘 책임을 질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앞섰지만 고양이를 데려오는 이 마음이 혹시나 한낱 호기심과 충동으로 인한 것이지 않을까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고양이들을 만지며 교감할 수 있는 몇 분의 시간을 가지면서 고양이 집사가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감을 얻었기 때문에 순간의 욕구를 진정시켜줬다.


그러다 어느 날 이미 꽤 자라서 분양을 갈 시기를 약간 놓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아무래도 새끼 고양이 시절의 모습은 매우 찰나인 데다 집사와의 교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다 보니, 보통 3개월 정도의 새끼 고양이들이 가장 빨리 분양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만난 이 고양이는 이미 태어난 지 6개월에 접어든 시점이었기 때문에 보통의 고양이보다 좀 더 이곳에 머물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구석으로 숨어들었던 앞서 만난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이 고양이는 낯도 가리지 않고 내가 흔드는 깃털 낚싯대로 반응하고 노느라 혼이 빠졌다. 낯선 우리의 손길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똑바로 눈을 맞추져 주기도 했다. 말 그대로 뭔가 서로가 클릭(click)이 된 느낌을 받았지만, 가볍고 충동적인 마음으로 결정하고 싶지 않아 생각의 시간을 갖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꿈에서 이 아이를 만날 정도로, 나의 온 마음은 이미 호박 보석 같은 노오란 눈을 가진 이 고양이에게 푹 빠져버렸다. 분양 확답을 주기도 전에 내 머릿속에서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고 있었다. 세일러문의 검은 고양이를 닮기도 했고, 노오란 눈이 보름달 같아서 달의 여신인 루나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그렇게 우리의 묘연이 닿아서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었다.  




2020년 11월 29일, 루나가 우리 집에 온 첫날


남이 보기엔 별로 특별하지 않는 반려인이 된 과정일 수 있다. 아이가 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하기 좀 우습겠지만, 마치 오랜 시간 아이를 원했던 부부가 마침내 아이를 품게 된 것과 같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만난 고양이가 사람을 간택해 집까지 따라 들어왔다는 이런 특별한 묘연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고양이 속에서 유난히 눈이 가고 내 마음이 오래 머물렀던 고양이가 바로 나와 묘연이 있는 고양이가 아닐까? 갈팡질팡하던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준 루나를 만나기 위해, 앞서 그 수많은 고양이들을 지나쳤던 것이 아닐까? 비록 고양이를 보러 가기로 결심을 하고 루나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기까지 약 보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는 수년간 랜선 집사로 머물면서 항상 반려묘에 대한 고민과 계획을 이야기해왔다. 루나를 데려오기로 결심하기까지 우리의 각오와 마음가짐에 대해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했다. 그 끝에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선택을 했다.


츄르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야옹!


- 루나를 가족으로 맞이하면서 부부의 다짐 -

1. 다른 나라로 이주하더라도 루나와 갈 것.

2.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항상 루나와 함께 할 것.

3. 루나를 혼자 24시간 이상 집에 홀로 두지 않을 것.

4. 루나가 아파서 아무리 큰돈이 든다 하여도 포기하지 않을 것.

5. 사랑과 책임감을 가지고 루나가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할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