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코로나에 걸리다
2020년 1월 말, 설을 맞이해 친정이 있는 홍콩을 갈 때만 해도 코로나가 2년하고 반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삶에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줄 몰랐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이 바이러스는 당시에만 해도 중국 내에서 이제 막 퍼지던 때라, 세계 곳곳의 화교와 해외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중국인들이 마스크, 손소독제 등 구호물품을 사재기해서 고국의 가족과 친인척, 지인들에게 보내주던 때였다. 화교인의 나라라고도 불리는 싱가포르에서도 역시 약국에서 마스크와 소독제들이 동이 났다는 뉴스 보도가 연일 떠들어댔다. 아직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2003년 사스 때처럼 중국 및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만 잠깐 유행할지 전 세계로 바이러스가 퍼질지 아무도 모르던 때였다. 홍콩행을 앞두고 마스크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우리는 싱가포르 공항 내 약국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재기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우리도 어느 순간 동참해 한 손 가득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사고 있었다.
2022년 7월.
2년 반이 지났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었고, 이제는 마스크는 일상생활이 되었다. 대부분 나라들은 자유를 이유로, 경제를 이유로 국경을 개방했고 다시 자유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코로나 베이비가 이제는 뛰어다니고 말도 하게 될 정도의 오랜 시간만큼 우리 모두 마스크 착용에 익숙해지고 재채기하는 사람을 흠칫하고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성이 생겼다.
하지만 친정이 있는 홍콩은 아직이다. 중국의 공산주의와 과거 영국 식민지의 민주주의 그 사이에 머물고 있는 홍콩의 코로나 정책은 중국만큼 '빡세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홍콩에 입국하는 여행객들은 여전히 지정된 호텔에서 격리를 해야 한다. 이해가 안 되고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되어도, 선택이 없다. 2020년 설에 친정 가족을 만난 후로 줄곧 못 만났기에 2년 반 만에 홍콩을 갔다.
한국에 계셨던 친정엄마와 싱가포르에서 시간을 보낸 후 같이 홍콩행 비행기를 탔다. 나의 격리 메이트로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비행기 타기 48시간 전 첫 번째 PCR 검사를 받았고, 비행기를 타고 홍콩 공항에 도착해서 두 번째 PCR 검사와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3년 전 홍콩국제공항은 여행길에 들뜬 사람들로 붐볐지만, '국제공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매우 고요했다. 방호복을 입은 수많은 인력의 통제 하에 입국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곳은 마치 좀비 영화 속 생존자 캠프였고, 우리는 이 캠프에 막 도착한 생존자들 같았다. 우리가 좀비들에게 물린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검열 단계를 거쳐야 했다.
무사히 모든 단계를 거친 후 우리는 '홍콩'이라는 생존자 캠프에 들어섰지만, 우리는 아직 안전한 사람들이 아니다. 호텔에서 일주일 간 격리를 하며 계속 모니터링을 당한다. 호텔에서 일주일을 격리하면서 홍콩 도착 3일차와 5일차에도 사람이 객실 문 앞까지 와서 PCR 검사를 두 차례 더 했다. 또 객실 안에 이미 비치된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가지고 매일 아침마다 검사를 해야 했다.
하루 3끼 식사는 사식처럼 객실 문 앞에 도착한다. 올드보이 속 최민식처럼 방 안에 갇혀있는 우리는 군만두가 아니지만, 랜덤박스처럼 매번 다른 음식이 도착한다. 오늘 점심은 뭘까,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 냄새로 알아맞히는 게임을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은 뭐가 나올까 그 자리에서 저녁 메뉴 맞추기 게임까지 연달아한다.
다행히 일감이 있었기에 생각보다 시간은 부지런히 잘 갔다. 잠에 들기 전, 남은 밤을 새우며 잤다. 이것도 추억이라며 엄마랑 낄낄대며 마치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처럼 수다를 떨다 잤다. 대화거리가 떨어지면 엄마는 그림을 그리시고, 나는 가져온 책을 읽었다. 엄마한테 넷플릭스의 세계를 소개해준 다음에는 엄마는 킹덤 시즌1,2를 정주행하셨다. 책 두 권과 공항 면세에서 산 와인 두 병이 다 비워질 때쯤 격리의 끝이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사히 호텔 격리가 끝났다고 기뻐하기엔 이르다. 홍콩 도착 후 9일차와 12일차, 즉 호텔 격리가 끝난 후 2일차와 5일차에 PCR 검사를 또 받아야 한다. 설령 홍콩에 도착하기 전에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던 자더라도 자유를 만끾하는 이 5일이란 기간 동안 조심하지 않으면 홍콩에서 돌아다니면서 코로나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내가 바로 그런 조심성 없는 사람 혹은 더럽게 운이 없던 사람이었다.
모든 PCR 검사를 음성으로 무사히 넘겼던 나는 12일차 검사를 앞둔 전날 목이 살살 간지럽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PCR 검사를 아침 일찍 받았지만, 24시간 내에 결과를 보내준다는 문자는 내내 안 오더니, 결국 점심을 훌쩍 넘긴 오후에 양성 확진 결과 문자를 받았다. 지역 검사 센터(주민센터 격)에서 한 검사였기 때문에 빼박 정부에 양성 신고가 됐다. 부랴부랴 5일 후 다시 출국 예정이었던 비행기표를 12일 뒤로 미뤘다. 10일 안에 코로나 음성이 뜨길 희망하며. 불행인지 다행인지, 같이 사는 모든 가족들이 다 함께 양성이 떴기에 격리 시설로 이송되지 않고 같이 집에서 격리할 수 있었다.
홍콩 정부 지침에 따라, 온라인으로 양성 확진 신고를 하니 당일 저녁 보건국 직원이 집으로 파견됐다. 아파트 매니지먼트 관리자와 함께 방역복을 입은 직원 한 명이 신속항원검사 키트와 코로나 약, 체온기 등이 가득 든 봉투 여러 개를 전달해줬고, 전자 팔찌를 직접 채워줘 StayHomeSafe 앱에 등록 해줬다. 전자팔찌를 찬다고 하니 한국의 성범죄자 전자 팔찌가 연상되어 기분이 묘했다. 이 팔찌를 채우면서 다시 나의 7일간의 격리는 리셋이 되었다. 호텔 격리를 마치고 6일 만에 다시 격리가 시작됐다.
집에서 하는 격리는 당연한 말이지만 호텔에서 한 격리보다 훨씬 좋았고 수월했다. 불편한 점이라면 음식을 직접 해 먹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좁은 호텔방에 비하면 집에서 하는 격리는 천국에서 하는 격리였다. 호텔방보다 넓었고, 화장실도 두 개고, 요리나 음식을 배달시키기도 편하다. 호텔에서는 좁아서 침대 협탁에 도시락을 놓고 밥을 먹었지만, 집에서는 넓은 식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내 집에서 격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새삼 행복했다.
마음은 행복하지만 몸은 그렇지 못했다. 간질간질했던 목은 이틀 후부터 목감기를 걸린 것처럼 침을 삼킬 때마다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다르게 증상은 뚜렷해졌다. 약간의 미열은 곧 38도를 넘어서 고열로 이어졌고, 침을 삼킬 때 이젠 아팠다. 콧물에 마른기침과 가래 끼임도 시작됐다.
다행히 인터넷에서 흔히 봤던 후각, 미각 상실, 두통과 같은 심각한 증상은 없었다. 단지 겨울철 심하게 목감기에 걸린 정도였기 때문에 약을 먹으며 일을 할 수 있었다.
증상은 4만 정도 지속되었고, 대부분 호전됐다. 마른기침만 남았다. 하지만 홍콩 자택 격리는 기본 7일 격리며, 6일과 7일차에 신속항원검사가 연속적으로 음성이 나와야 한다. 만약 양성이 뜬다면, 그 이후 매일 검사를 해서 연속 이틀 음성이 뜨면 격리가 해제된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놈은 일주일이면 내 몸에서 없어질지 이주일이 걸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일주일이면 음성이 뜰 줄 알았는데 7일차 아침인데도 희미한 양성 두줄이 떴다. 검사를 하면 처음엔 한 줄이었는데 한 10분 지나니 희미하게 또 한 줄이 더 떠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 3일을 갔으니, 하루하루가 피가 말랐다. 나 출국해야 한다고! 다행히 그날 저녁부터 완벽한 음성이 떴고,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음성이 떠 무사히 격리 해제가 됐다.
바로 징글징글한 이 전자 팔찌를 잘라냈다. 비행 여정만 없었더라면 느긋하게 자택 격리를 즐겼겠지만, 비행기 일정을 미뤄가면서까지 하는 격리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제발 코로나 이전, 바이러스 걱정, 감염 걱정, 격리 걱정 없는 여행을 하길 격렬히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