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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나 DuNa Jan 19. 2023

붉은빛과 금빛의 향연, 홍콩 명절 춘절(春節)

빨간 봉투, 라이씨 이야기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권에서는 음력 1월 1일이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설이라 부르지만, 중화권에서는 춘절*(春節)이라고 부른다. 광둥어로는 ‘천짓’인 춘절이 다가오면 아파트 단지, 쇼핑몰, 슈퍼 등 발길 닿는 어느 곳이든 명절 분위기가 물씬 난다. 곳곳에 금전귤이 보이고, 화려한 빨간 연등이 하늘에 걸린다. 폭죽과 금 모양의 크고 작은 장식과 새로운 해의 십이간지 동물로 꾸며져, 온통 붉은빛과 금빛으로 세상이 물든다. 올해는 토끼해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온통 토끼들로 꾸며졌다.

 

춘절이 다가오면 홍콩 사람들은 대청소를 한다. 새로운 해의 좋은 기운이 들어설 수 있도록 지난 한 해 동안 집안에 축적된 묵은 기운을 몰아낸다. 출입문에는 빨간색 종이에 좋은 문구를 적은 천륜(春聯)이나 복이 집안으로 들어오길 기원하는 복 福자를 거꾸로 붙여놓기도 한다. 꽃시장에 가서 식물을 사서 집안을 꾸미는데 대나무, 복숭아꽃, 귤나무, 작약꽃, 수선화, 갯버들 등이 풍수적으로 집 안에 좋은 기운을 불러들인다 하여 인기가 많다. 우리나라처럼 홍콩의 춘절도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로, 함께 모여 춘절 대표 음식인 푼초이(盆菜, 큰 그릇에 해산물, 고기, 채소 등 여러 재료를 담아 끓여낸 전골), 통윤(湯圓, 달콤한 소로 채워진 찹쌀 새알심), 닌꼬우(年糕, 떡)이나 로박꼬우(蘿蔔糕, 간 무와 쌀가루를 버물린 무떡) 등을 먹는다. 인근 절을 찾아 향을 피워 좋은 기운을 기원하고, 새해 운세를 점쳐보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나 쇼핑몰에는 춘절을 맞이해 온통 붉은색과 금빛으로 장식을 하고, 붉은 연등이 걸린다. 거리 곳곳에서 재물운을 상징하는 금전귤도 많이 보인다. 운이 좋으면 사자춤 구경할 수 있는데, 큰 눈을 깜빡이는 사자의 익살스러운 몸짓이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너무 귀엽다.



어릴 적, 해가 바뀌면 곧 다가올 춘절 생각에 신이 났다. 바로 라이씨(利是) 때문이다. 라이씨는 우리나라의 세뱃돈 격으로, 빨간색 봉투에 담아서 준다 하여 만다린으로는 홍바오*(紅包)라고 한다. 평소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어른들을 만나는 ‘지루한 자리’를 피하려 하지만, 춘절 기간에는 라이씨를 받을 생각에 부모님을 따라 부지런히 어른들을 찾아뵙는다.

 

우리나라처럼 홍콩에서도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라이씨를 주는데, 한국에서는 보통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세뱃돈을 주고, 집안 분위기에 따라 아랫사람의 나이나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보통 기혼자가 미혼자에게 라이씨를 준다. 즉 결혼하기 전까지는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미혼자는 굳이 라이씨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 기혼의 경우 부부가 모두 라이씨를 줘야 한다. 물론 회사에서는 나이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고용주나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라이씨를 준다. 그래서 싱글일 때는 보스에게, 상사에게, 결혼한 동료들에게 라이씨를 받았지만 결혼 후에는 더 이상 결혼한 동료들로부터 라이씨를 받지 않았다.

 

회사나 가족끼리뿐 아니라 아파트 경비원이나 자주 가는 단골집 식당이나 마트 종업원에게도 라이씨를 준다. 나 같은 경우 싱글일 때도 경비원들이나 청소부에게 감사의 의미로 라이씨를 줬고 결혼 이후에는 두 개씩 줬다. 이상하게 춘절 기간만 되면 처음 보는 경비원들까지 총출동을 하고, 평소에는 한 명씩 서 있던 경비원이 이땐 두 명, 세 명씩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식당에서도 잘 웃지 않던 종업원들도 이땐 평소보다 더 친절하다. 이럴 때면 참 속 보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이 풍요로운 명절기간이라 기분 좋게 라이씨 봉투를 건넨다.

 


춘절이 다가오면 아버지께서는 은행에서 HK$20, HK$50, HK$100, HK$500 신권 지폐를 찾으셨다. 그러면서 어린 나에게 금액별로 디자인이 각기 다른 봉투에 담으라고 시키셨다. 신권 지폐를 라이씨에 담아서 주는 풍습 때문이다. 그래서 춘절이 다가오면 은행 앞에 신권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형성되는 진풍경을 펼쳐진다.

 

라이씨 금액은 정해진 건 없지만, 어린 아이나 경비원, 식당 종업원, 청소부에게는 보통 HK$20만 줘도 괜찮지만, 평소에 도움을 받았다고 하면 HK$100까지도 줄 수 있다. 다만 금액을 홀수 또는 4가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맞아 직접 만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라이씨를 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매해 버려지는 빨간 봉투로 인한 환경오염을 줄이자는 의미에서 몇 년 전부터 HSBC, 위챗, 알리페이, 페이팔 등이 전자 라이씨, 전자 홍빠오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제는 멀리 있어도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편리한(돈을 줘야 하는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라이씨는 홍콩 경제의 바로미터라는 말이 있다. 경기가 나쁠 때는 라이씨가 줄고, 호황일 때는 라이씨 봉투가 두둑해지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홍콩의 여러 경제 지표에서 부정적 성과들이 보이면서 아마도 라이씨 봉투가 적은 해가 되지 않을까 마음 한켠이 씁쓸하지만, 묵은 2022년을 보내고 새로운 밝은 2023년의 볕들 날을 기대해 본다.


2023년 계묘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꽁헤이팟초이(恭喜发财), 썬린파이록(新年快樂)!


* ‘춘절’은 한자음, ‘홍빠오’는 만다린 발음으로, 이를 제외한 나머지 단어는 모두 광동어 발음으로 표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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