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하면 나는 따뜻한 손난로, 두껍지만 포근한 겨울옷,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반짝이는 장식, 함박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생각난다. 만 한 살이 채 되기 전 홍콩으로 이민을 오게 된 나는 사실 눈을 본 해가 손에 꼽힐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떠올릴 때면 아름답고 낭만적이고 마음이 마냥 설렌다.
홍콩 겨울의 기온은 평균 15도 전후로 눈이 내릴 정도로 춥진 않지만, 유난히 추울 때는 10도 아래로 기온이 뚝 떨어진다. 습해서인지 시멘트 벽 두께가 얇은 탓인지, 아니면 한국처럼 바닥 난방이 없어서 그런지 저녁이면 으슬으슬하게 춥다. 간혹 유난히 추웠던 해들이 있는데, 지난 2016년 겨울에는 기온 3.3도까지 떨어져 약 60년 만에 가장 추웠던 겨울로 대서특보 됐다. 따뜻한 온도에 익숙한 도시다 보니 이렇게 한파가 심한 해에는 추위로 인한 안타까운 사망 소식도 들려온다. 그 해에 얼마나 추웠으면 우리 집 발코니 근처 대리석 바닥이 한파에 깨져버렸다. 우리 집처럼 대리석 바닥이 깨진 아파트들이 많아서 매니지먼트에서 수리해주기까지 몇 달을 대기했던 기억이 겨울만 되면 생각이 난다.
어릴 적 나의 크리스마스는 여느 영화나 크리스마스 카드 속 모습처럼 눈과 함께하지 않았지만, 즐거운 기억들이 많다. 11월 말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와 온 집안을 장식했고, 오빠와 나는 양말 주머니를 걸어놔 주머니가 두툼해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빨간 모자를 쓰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또 고대하던 선물을 받는 날로, 부모님의 애정 어린 사랑을 듬뿍 받는 날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나이가 든 지금은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나눔의 날이다. 11월 초가 되면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고, 손수 카드를 준비한다. 12월이 되면 매년 크리스마스 어드벤트 캘린더를 준비해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는 재미를 더한다. 지인들에게 줄 조그마한 선물과 카드로 지난 한 해의 무탈함과 그간의 감사함을 전한다.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트리 밑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면 내 마음도 같이 풍성해진다.
눈이 내리지 않은 홍콩에서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기 힘들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그 어느 때보다도 도시가 화려해진다. 마치 누가 누가 더 화려하고 멋지게 장식했는지 겨루듯, 모든 쇼핑몰과 아파트 단지,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장식된다. 으슬으슬하게 추운 겨울 저녁,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괜스레 두근거린다.
홍콩의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더 많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홍콩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된다. 디즈니랜드, 오션파크 테마파크들은 일제히 크리스마스 스페셜 테마 장식과 쇼들을 준비하고, 레스토랑들은 크리스마스 시즌 메뉴들을 선보인다. 쇼핑몰들은 크리스마스 특별 세일 행사와 다양한 크리스마스 액티비티 이벤트를 진행한다. 또 11월 말부터 스탠리, 디스커버리베이, 사이쿵 등 곳곳에서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과 축제들도 개최돼 재밌는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 이미 집에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넘치게 많지만, 귀엽고 예쁜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들을 보면 손이 안 갈 수가 없다.
크리스마스라는 이 단어는 국가불문 남녀노소 모든 이에게 설레는 단어다. 가족과 지인, 이웃들에게 사랑과 따뜻함을 전하며 추위를 녹인다. 올해도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무탈하고 건강한 한 해를 보내 감사하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