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유 노우 캠쟤면?
“우와 여기 감자면도 있어!"
감자면이라고 들어보았나. 쫄깃한 면과 구수한 국물이 일품인 감자면은 웬만한 한국 마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녀석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하겠거니 하며 잊고 살았는데, 한국보다 7시간이나 느리게 흐르고 있는 독일에서 재회하게 될 줄 몰랐다. 베를린도 아니고 인구 20만 명이 옹기종기 살아가는 작은 마을 골목 모퉁이에서 만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감자면을 판다는 건, 없는 게 없다는 것. 아시안마켓에는 하남의 맛을 담은 하남쭈꾸미부터 안동의 맛을 담은 안동찜닭까지 있었다. 한참을 서서 고민하다가 오늘은 감자면과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붕어싸만코만 사기로 했다. 계산하려고 보니 사장님이 한국 분이셨다. 무척 반가웠다. 나를 포함한 교환학생 4명 외에 다른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과 한동안 포기해야 할 줄 알았던 식품들이 있다는 사실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독일로 오게 된 건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커지는 취업에 대한 부담감을 잊고 싶어서였다. 꾸준하게 한 분야에 매달린 사람이 유리하다는 선배의 말에 뭐든 빨리 시작해야 할 것 같았지만,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기에 나를 돌아볼 시간을 벌고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낯선 환경에 내던져지면 여태껏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도 품었다.
도피성 유학길 위에서 알게 된 것은 새로움은 불편함과 항상 동반된다는 것이다. 독일어가 익숙지 않아 물건 하나 계산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까 눈치를 보게 되었다. 교환학생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쌓고 싶었지만, 내 생각과 어느 정도 뜻이 통하는 말을 고르기가 힘들어 대화 대신 침묵을 택했다. 붙임성 좋은 글로벌 인싸가 되고 싶었는데 왓츄어네임? 이름만 열심히 쌓는 아싸가 되었다. 누군가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보기라도 하면 말실수했나 걱정이 될 만큼 작아졌다. 음식도 입맛에 맞지 않았다. 양식집에서 리조또만을 고집하는 밥순이에게 짜고 느끼한 밀가루 식단은 아주 고역이었다. 여행이고 나발이고 어학 수업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가고 싶어졌다. 샐러드 보울 속에 섞이지 못하고 끝끝내 철저한 이방인으로 남을 것 같은 내게 이질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필요했다.
감자면의 진가를 공유하는 한국인 친구와 곧장 집으로 와서 감자면을 끓였다. 부엌을 메운 익숙하고도 낯선 매운 향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감자면은 독일에 도착한 지 2주 만에 생겨버린 향수병을 달래주었다.
“이야~ 감자면 독일에서 먹으니까 더 맛있네~” 친구가 말했다.
확실히 한국에서 먹을 때와는 색다른 기분이었다. 감자면 봉지에 영어로 적힌 Potato noodle soup이 특별함을 더했나, 아님 젓가락이 없어 사용한 포크가 특별함을 더했나 모르겠다. 오랜만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으니까 단순한 글로벌 아싸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익숙해지기 전에만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며 긍정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독일에서 지냈던 시간이 그리워질 날이 올 거야. 감자면 먹고 힘내서 낯선 만큼 귀한 이 시간을 소중하게 써보자. 새로움에 피로가 쌓이면 아시안마켓 가서 주인아주머니도 만나고 라면도 끓여 먹으면서 익숙함을 찾으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