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구리 Oct 06. 2021

최선의 집

2020.09.22

저는 요즘 이케아에 자주 갑니다. 이케아에 가면 다양한 생활 방식을 간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가구 샘플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으면 각자의 라이프스타일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 듯합니다. 아이패드보다 종이책을 좋아하는 학생, 자로 잰 듯한 일상을 보내는 직장인, 넉넉하고 포근한 인상의 노부부가 각자의 방식대로 꾸며 놓은 것 같습니다. 집은 자기를 표현할 방법으로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잖아요?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집은 저에게 바깥일에 지친 몸을 뉘는 곳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시간을 바깥에서 보내다 보니 집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제가 이케아도 가보고 편집숍도 다니면서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을 집에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 만난 친구의 집을 방문하고 나서부터 집에 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거든요.


새해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교환학생 신분으로 만난 브라질 친구, 루이지로부터 홈파티 초대를 받았습니다. 루이지가 사는 셰어하우스에는 8명의 플랫메이트들이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반려동물 기니피그의 방,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는 방, 책상 8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부방, 애인과 성관계를 하는 방 등으로 활용하면서 각자의 취향과 생활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루이지네 셰어하우스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멋있었습니다. 비싼가구로 채워진 호화스러운 집은 아니었지만 플랫메이트들이 정말 사랑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죠. 낡은 복도 한편에 쌓여있는 보드게임들, 집안 곳곳에 퍼져있는 기니피그 냄새, 어두운 조명 아래 벽면을 매운 LGBT 문구가 한데 모여 여태껏 본 적 없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루이지에게 어떻게 이토록 스페셜한 집을 만들었냐고 물어봤더니 처음부터 취향에 편견 없는 입주자를 모집했다고 했어요. 취향에 편견이 없다는 것은 독신이지만 아이가 있을 수도 있고,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는, 어떠한 규정 없이 사랑을 줄 수 있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남들 시선이 배제된 공간에서 자신들의 취향과 가치관을 맘껏 드러내고 그 가치관을 존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삶이 무척이나 풍족해 보였습니다. 루이지 집을 보니 나에게 좀 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밖에서 충분히 다른 사람들 취향에 나를 맞췄으니 집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그래서 최근에는 CD플레이어와 좋아하는 음반 몇 장을 샀습니다. 음반 속 트랙을 한꺼번에 들으면 소설책 한 권을 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책도 몇 권 샀습니다. 좋아하는 영화 잡지와 좋아하는 작가님의 에세이집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펼쳐봅니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로 찍어두었던 흑백 사진을 꺼내 잘 보이는 곳에 여러 장 붙여 놨어요. 고생해서 찍은 만큼 사진을 볼 때마다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겉으로 봤을 때 아직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해서 나를 위한 최선의 집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월세는 오르지 않더라도 집의 가치를 올릴 방법을요! 여기서 집이 더 좋아지면 집에만 붙어 있을까 봐 걱정이긴 하지만요.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 없이 현대사회 살아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