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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Mar 18. 2024

70. 내가 만난 100인

친구가 될 용기와 똘끼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저는 경산에 사는 김국진이라고 합니다.
뜬금없는 음성에 미친 여자가 아닐까?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진짜 친구가 필요합니다. 저는 지금 친구가 없거든요.
혹시 이 음성을 들으시고 저랑 친구 하실 마음이 있으시다면 음성메시지와 함께 번호를 남겨주세요.


간밤에  낯선 누군가가 남긴 음성 메시지로 아침부터 뒤숭숭했다.

다시 듣기 버튼을 눌러 또 듣고 또 들었다. 처음에는 간절하지만 조금은 무심한 듯했고 계속 들을수록

발끝이 닿을 듯 말 듯한 긴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조금만 도와달라는  목소리로 들렸다.


꼬박 하루를 망설였다. 그녀는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근해 보이지도 않았다.

하필 이름도 개그맨이름과 같아서 가명이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진짜 친구가 필요한 걸까? 나와 나이도 같은데 얘는 왜 친구가 없을까? 학교에서 왕따인가?'


나는 그녀의 용기에 지고 싶지 않은 똘끼를 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에 사는 이기영입니다. 국진 씨와 같은 학년입니다.

우리 친구 해요. 번호를 남깁니다."


이렇게 실컷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난 후에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런데 왜 내 번호를 남겨 달라고 하지? 자기가 먼저 전화를 했으면서? '

'아! 뭔가 잘못 낚인 거 아니야?'


그리고 몇 시간 후 그녀의 음성메시지가 와있었다. 수업시간에  내내 그 메시지를 확인해보고 싶어 발을 동동 굴렸다. 종이 울리자마자 학교 1층 공중전화박스까지 쏜살 같이 달려갔다.


"이기영 씨, 저랑 친구 해줘서 고마워요. 우리 나이도 같은데 말 놓을까요? 저는 포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취업반이라 실습을 하러 경산에 와 있어요. "


일단 그녀가 왜 친구가 없는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래! 국진아 만나서 반갑구나! 그런데 넌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니?"


"난 처음부터 네 번호를 몰랐어. 그날밤엔 내가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그냥 아무 번호나 막 누르고 음성메시지를 남긴 거야. 그래서 내가 너한테 번호를 같이 남겨 달라고 부탁하 거야."


"나 말고 몇 명이 연락이 왔어?"


"한 세명쯤 번호를 눌러댄 것 같은데 연락이 온 건 너와 남원에 사진 남자애 한 명, 이게 전부야."


"그래? 우리 그럼 펜팔친구부터 시작할까? 주소를 말해주면 내가 먼저 편지를 쓸게."


그렇게 가명이 아닌 본명인 국진인 그녀와 1년의 펜팔친구와 삐삐친구로 지내게 되었다. 내가 수능을 치를 때 국진이는 아주 큰 소포박스를 보내왔다. 그 안에는 엿과 찹쌀떡 그리고 초콜릿 등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리고 두루마리 휴지에는 '잘 풀어!'라고 쓰여있었다. 그렇게 입시를 끝낸 어느 겨울날 우리는 드디어 첫 만남을 가졌다.


167센티의 마른 몸을 가진 국진이는 생각보다 가리는 음식이 많아서 장소를 정하는 게 순탄치 않았다. 결국 우리는 롯데리아에서 만나 각자 먹고 싶은 걸 주문해서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 국진이는 얼마 전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했다. 모솔에다 연애를 드라마로 배운 나는 국진의 연애설을 듣는 게 신기하고 또 재미가 있었다.  그해 국진이는 정식취업을 하고 나는 대학을 갔다. 그리고도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며 인연을 계속 이어왔으며 우리의 첫 만남을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생겨났다.

 스무세 살, 국진이는 첫 연애설의 주인공인 남자친구와 결혼까지 했다. 그리고 현재 세 딸을 키우며 여전히 경산에 살고 있다. 세 딸 중 첫째와 둘째는 쌍둥이이다. 그리고 나와는 다르게 운전을 아주 잘해서 학원이나 유치원 통학 버스의 기사님으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용기 있고 씩씩한 아줌마이다.


엉뚱하지만 용기 있는 자

무모하지만 똘끼 있는 자

 지금도 우리는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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