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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Mar 10. 2024

69. 내가 만난 100인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20살에 요절할 그녀.


정은이는 중학교 때 내 앞에 앉은 친구였다. 뽀얗고 마른 그녀는 연예기획사 제의를 받을 만큼 예뻤다.

항상 수업시간에  반듯하게 펴진 책 옆에는 더 반듯하게 세워진 거울이 필통 속에 껴 있었다. 공부도 어느 정도 했으며 노는 무리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색색핀으로 앞머리를 뒤로 넘겨 고정하고 다녔는데 얼굴이 작고 깨끗한 그녀였기에 더 예뻐 보였다. 하지만 흔히 십 대 소녀들이 연예인을 따라 하듯 전교에는 그녀의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 또한  혼자 있을 때 그녀처럼 될 수 있다는 착각을 앞세워 앞머리를 뒤로 넘긴 채 핀으로 고정해 보았으나 내 이마는 미운 여드름으로 이미 점령당한 뒤로 오히려 앞머리가 있는 게 고마웠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듯했다.


소풍을 가는 날, 그녀는 한껏 멋을 부린 우리보다 그저 깨끗한 청바지에 흰 티셔츠 그리고  민트색인 남방만 살짝 걸쳤을 뿐인데 훨씬 더 빛이 났다. 같은 교복인데도 그녀가 입으면 우리 학교 교복이 제일 예뻐 보였다. 딱 맞는 수학공식처럼 그녀가 남학생 옆을 지나가면 모두가 한 번씩 뒤를 돌아보았다. 그중 용기 있는 남학생들은 연락처를 주고 가기도 했고 우리는 지질하게도 그중 가장 잘생긴 남학생의 번호를 음료수 하나로 매수 하곤 했다.


그랬던 그녀가  '10년 뒤 자신의 모습'이라는 발표시간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나의 스무 살에는 대학생이 될 것이고 날씨 좋은 어느 날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내 생을 마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모든 걸 끝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굽은 허리에 주름진 못생긴 얼굴로 내 생애최후를 맞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중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수업을 이끈 국어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질문 또한 예외였다.


"정은아! 스무 살에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죽겠다고? 왜 하필 와이키키해변이야?"

"영어책에서 봤는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라고 해서 내 인생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니까 거기가 딱인 것 같아서요."


반 아이들 모두는 폭소를 터뜨렸지만 나는 내심 진짜 궁금했다.

그녀가 또 필통사이에 꽂아놓은 거울을 보면 머리를 매만질 때 반사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왜? 뭘 봐!"

'너 진짜로 죽을 거야? 스무 살에'라고 쪽지를 쓴 뒤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의 답변은 짧고 확고했다.

'응'


점심시간이면 앞뒤로 앉은 아이들끼리 도시락을 먹었다. 그때 정은이는 몸을 살짝 틀어 다리를 꼰 채 깨작깨작거리며 밥을 먹었다. 그녀의 긴 다리는 꼬아도 모델들처럼 일자로 쭉 뻗어있었다.

나는 허벅지에 살이 많아 다리를 꼬으면 한쪽 다리가 반쯤 들려있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 이것 또한 그녀를 따라 해 본 것이다.)


그렇게 정은이는 중학 때 가장 예쁜 아이로 내 안에 박재된 채 남겨져있었다. 가끔 하와이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여겨보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의 생사를 소심하게 궁금해오던 어느 날이 찾아왔다.


대학졸업 후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친구를 따라 백화점 명품관을 들렀다.

우아하게 인사하는 검은정장의 고급스러운 스카프를 한 직원과 눈이 마주쳤고 난 곧바로 그녀의 이름표를 확인했다.

"어! 정은이?"

우리는 단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너 아직 안 죽었어?"

10년 만에 만난 그녀에게 한 첫마디가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왔다.

"응?"

"아니 왜 네가 스무 살에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죽.겠.다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요? 고객님!"

그녀는 눈치 없이 떠들어대는 내게 그만하라는 듯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따로 시간을 가졌다.


"너 진짜 기억 안 나?"

"기억나! 기억난다고."

"그런데 왜 아직 살아있어?"

"넌 지금도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냐? 나 안 예쁘다고...!!"

"하긴... 서울에 오니까 예쁜 사람이 너무 많긴 하더라."

"그리고 와이키키 해변? 하와이는 무슨!!! 카드값 메꾸느라 부곡 하와이도 못 가 봤다."

"어쨌든 살아 있어 줘서 반갑다. 정은아! 혹시 더 예뻐져도 절대 죽지는 마!"

"안 죽는다고 카드값 갚아야 한다고!"


그렇게 내 안에 예쁜 아이로 박재되었던 정은이는 이제 카드값 갚는 정은이로 또다시 박재되어갔다.

당시 정은이는 ' 미인박명'이라는 말에 꽂혀있었다. 자기가 제일 예쁜 줄로만 알았고 그래서 어쩌면 자신도 빨리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게 될 바에야 차라리 가장 예쁠 때 죽자의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서울로 진학을 하고 보니 숨바꼭질처럼 전국에 숨어있던 예쁜 아이들이 다 찾아진 듯 주변에 여기저기 널려있었고 그래서 죽지 않고 열심히 살면서 카드를 긁고 또 열심히 갚으며 살고 있었다.


공주였던 자

그 뒤를 몰래 추종하던 자.

그때는 우리는 둘 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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