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1)
"작년에는 현중이가 조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올해는 깨어있는 걸 본 적이 없네"
미적분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때 상당히 피곤하기도 했고,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게 잠들어서 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말을 듣고 생각이 복잡해졌다. 뒤이은 수업 시간에도 힘이 풀리고 맥이 빠진 채로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찾아온 번아웃이었다.
무기력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3학년 생활을 돌아보며 왜 내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우선 난 작년과 변한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카페인 근절을 선언하면서 아침마다 챙겨 먹던 커피를 끊었던 것 정도. 그래서 조금 더 피곤할 수는 있겠다 싶었다.
단지 카페인 금단현상으로 이렇게 피곤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다른 이유가 없을지 고민해 보았다. 그러다가 최근 일주일간의 무계획적인 삶이 그 원인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3학년이 된 이후로 좀 더 효율적인 공부 방법을 찾기 위해 플래너도 바꾸어 보고, 태블릿으로 일정 관리를 해보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는데,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무언가를 계획하는 것에 질려버렸다. 그래서 일주일 정도 무계획으로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 해야 할 공부는 산더미처럼 밀렸고 의욕을 가질 수 없었다.
공부에 의욕을 잃다 보니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노래만 듣다 날려 보내기도 하고, 옆자리 친구와 포스트잇으로 장난을 치며 놀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유튜브를 보다 늦게 자고, 아침에는 카페인이 없어 피곤한 거라며 합리화하며 쉬는 시간마다 잠을 잤다. 어쩌면 작년하고 다른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건 나 뿐이었을지 모른다. 오히려 선생님 눈에 내가 자는 모습만 보인 것이 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원래 오늘 무엇을 해야 하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항상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간 무계획으로 살다 보니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고, 점점 나태해졌다. 내 안에서는 내게 "제발 뭐라도 좀 해 봐" 라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계획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1학년 때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공부했었다. 그리고 2학년 때부터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 알고 "이유 있는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공부 방법 또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분명히 있었지만, 나는 이유가 있는 공부를 한다는 사실에 충분히 만족했다. 그렇지만 무계획적으로 살았던 최근 일주일 동안,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란 단순히 공부 계획, 시험 계획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를 찾고, 그 이유에 맞춰 내 미래를 조각해나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내가 계획을 손에서 놓는다는 건, 내 삶의 이유를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내 비전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이정표를 시야에서 놓쳐 버렸으니, 무기력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고민 끝에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라는 자기합리화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계획을 세우는 방식을 아무리 바꾸고 개선해도, 그러한 자기합리화에서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내 삶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쉽고 별 탈 없이 살아와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자기합리화는 내게 일종의 방어기제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자기합리화는 내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충분히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현재에 안주하려고 한다. '번아웃인 것 같으니 오늘은 쉬자'라고 계속해서 속삭인다. 이런 유혹은 상당히 강력해서, 쉬어야 할 상황이 아님에도, 아직은 더 달려야 하는 상황에도 내게 긴장을 풀고 자리에 앉게 한다.
하지만 번아웃은 마냥 쉬어가라는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똑바로 달리라는 경고에 가깝다. 어디로 뛰는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달리기만 하던 내게, 어디로 뛰는지는 똑바로 보고 달려가라는 경고. 내 비전을 잃지 말고 뛰라는 일종의 피드백인 셈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는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나도 내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다시 되짚어보았다. 내가 지금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그런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선, 내가 원하지 않는 과목의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다는 증명을 보여야 한다. 내 이정표는 대학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는 내 모습에 있다.
당장은 발전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내가 가는 길이 이정표가 있는 방향이라면 전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발전은 항상 계단식이고, 그 긴 텀을 채우는 것은 내 노력이다. 이정표를 보고 열심히 달려가다 보면, 한 계단씩 오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내 고민을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이런 고민을 겪는 건 당연하고, 단지 그 고민의 시기가 조금 늦었을 뿐이라 말씀하시며 조언을 해 주셨다.
"한 걸음이 어려울 때는 일단, 일어서는 것부터"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내 몸에 자리 잡은 나태한 습관이 내 노력을 방해한다면, 바른 자세로 앉아 심호흡하고 책상을 정돈하는 것 부터 시작하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자. 일어선 상태에서는 그렇게 쉬운 한 걸음이, 앉아 있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것 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일어서는 것 부터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