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어의가 건넨 다정한 위로, 어만두

치유의 음식에서 연회의 미식으로, 고조리서가 기록한 겨울의 숨결

by 두부

만두를 떠올리면 으레 정겨운 하얀 밀가루 반죽이 생각나곤 합니다. 고기와 야채, 당면이 꽉 찬 속을 감싸 안은 탄수화물의 든든함 말이지요. 저 역시 어만두를 처음 접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한식조리기능사를 준비하며 마주한 어만두는 제가 알던 만두의 공식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밀가루 피 대신 싱싱한 생선 살을 포 떠서 소를 감싸는 이 음식은, 탄수화물이 주가 아닌 단백질 중심의 고결한 보양식이었습니다.


생선의 포를 뜨고 그 살을 조심스레 두드려 부드럽게 만든 뒤, 정성껏 준비한 고기와 야채소를 넣는 과정. 그 일련의 흐름 속에서 저는 문득 배려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만드는 사람의 편의가 아닌, 먹는 사람의 안녕을 가장 우선에 둔 마음. 생각해보면 궁중음식부터 반가의 상차림, 그리고 사찰음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전통 음식의 뿌리는 늘 먹는 사람을 향한 지극한 배려에 닿아 있었습니다.


1450년경, 세종부터 세조에 이르기까지 세 임금을 모셨던 어의 전순의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조리서인 산가요록을 남겼습니다. 2001년 청계천의 낡은 고서점가에서 기적처럼 발견된 이 책은, 음식이 곧 약이라는 식치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한복려 원장의 손길로 재현된 이 어만두 한 그릇은, 6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2월의 끝자락, 바다의 생명력을 입히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교차하는 2월은 기력이 가장 쉽게 소진되는 시기입니다. 선조들은 이때 백어의 왕이라 불리는 숭어나 도미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추위를 이겨내려 살을 찌운 겨울 숭어는 담백하고 찰진 식감이 일품입니다. 숭어 살을 손바닥만 하게 얇게 저며 피로 삼는 어만두는, 귀한 밀가루를 대신한 지혜로운 대안이자 소화가 어려운 이들을 배려한 고도의 영양 설계였습니다.


어만두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해 왔습니다. 17세기의 음식디미방 속 어만두가 제철 생선으로 몸을 보하는 소박한 치유의 음식이었다면, 19세기 시의전서에 이르면 연회 상차림의 격을 높이는 연회의 미식으로 정교해집니다. 실제로 정조 임금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위해 차린 봉수당진찬 상차림에도 이 어만두가 올랐다고 하니, 그 품격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시대를 앞선 배려, 글루텐 프리의 지혜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밀가루 속 글루텐에 민감하거나 알러지로 고통받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알러지를 그저 예민하거나 유별난 취향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알러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몸의 불편함을 견디며 음식을 섭취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어만두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600년 전의 어의는 이미 밀가루 없이도 충분히 훌륭하고 품격 있는 음식을 제안했습니다. 탄수화물 과잉과 글루텐 알러지로 몸살을 앓는 현대인들에게 어만두는 가장 진보적인 식단의 대안이 되어줍니다. 생선 살의 풍부한 아미노산과 소고기, 표고버섯, 미나리의 균형 잡힌 만남은 환절기 우리 몸의 근본을 튼튼히 세워줍니다.


나를 귀하게 대접하는 사유의 장


어만두의 진짜 가치는 그 번거로운 조리 과정 속에 숨어 있습니다. 생선을 손질하고 포를 뜨고, 만두소를 볶아 두 번씩이나 쪄내어 찬물에 헹구는 수고로움. 이는 효율과 속도를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는 잊혀가는 감각입니다. 하지만 정성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이 요리를 통해, 선조들은 식탁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아끼는 사유와 질서의 장임을 보여주었습니다.


2월의 마지막 추위가 가시기 전, 600년 전 어의의 지혜를 빌려 나를 위한 한 끼를 빚어보는 건 어떨까요. 제철 생선의 생명력을 빌려 몸을 보하고, 정성스러운 손길로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 어만두는 결국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조들의 다정한 대답입니다.

[사진=궁중음식연구원]

산가요록 어만두 레시피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 재현)


재료 숭어 1마리(살 300g), 소고기 200g, 표고버섯 3장, 숙주 100g, 미나리 30g, 찹쌀가루 5큰술, 녹말가루 8큰술, 소금, 식용유 약간


양념 준비 생선 양념 : 소금 1작은술, 흰 후춧가루 약간 고기 및 버섯 양념 : 간장 1큰술, 소금 1작은술, 다진 파 2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만드는 법


숭어 손질하기 내장을 제거한 숭어의 살만 떠서 껍질을 벗깁니다. 숭어 살을 손바닥 크기로 아주 얇게 포를 뜹니다. 포 뜬 살에 소금과 흰 후춧가루를 뿌려 밑간을 합니다.


만두소 만들기 소고기는 곱게 다지고, 물에 불린 표고버섯은 채 썰어 다집니다. 고기와 버섯을 양념하여 팬에 기름을 약간 두르고 볶아냅니다. 미나리와 숙주는 끓는 물에 데쳐 찬물에 식힌 후 물기를 꼭 짭니다. 송송 썰어 면포에 넣고 남은 물기까지 완전히 제거합니다. 볶은 재료와 채소를 합쳐 고루 섞어 만두소를 완성합니다.


만두 빚기 포 뜬 숭어 살 한 면에 찹쌀가루를 고루 뿌립니다. 가루를 묻힌 면 위에 만두소를 놓고 양끝을 접어 동그랗게 맙니다. 어만두 겉면에 녹말가루를 고루 묻히고, 풀리지 않게 손으로 꼭꼭 눌러줍니다.


만두 익히기 및 마무리 김이 오른 찜통에 젖은 면포를 깔고 어만두가 붙지 않게 놓아 15분 정도 찝니다. 투명하게 익은 만두를 꺼내 즉시 냉수에 가볍게 헹궈 식힌 후 물기를 닦습니다. 다시 한번 녹말가루를 묻혀 찜통에 쪄낸 뒤 다시 냉수에 헹궈 물기를 없앱니다. 이 과정을 통해 피가 더욱 쫄깃해집니다. 완성된 어만두를 따뜻한 장국이나 시원한 장국에 띄우고 초간장을 곁들여냅니다.


음식 너머에 머무는 속삭임, 두부의 이야기( ˶˙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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