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있던 조선의 맛을 붙잡다
1939년, 조선의 한 반가 여성이 한 권의 요리책을 펴냈다. 제목은 『조선요리법』. 저자는 조자호다. 일제강점기라는 격변의 한가운데에서, 그녀는 조선의 음식을 기록하는 일을 선택했다. 총칼도, 구호도 아닌 음식이었다. 매일의 식탁에서 사라져 가던 조선의 맛과 형식을 붙잡기 위해, 그녀는 조리법을 쓰기 시작했다.
『조선요리법』은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다. 궁중 음식부터 사대부가의 제례 음식, 평상시 반상에 오르던 까지, 조선의 식문화 전반을 폭넓게 담아낸 생활사이자 문화 기록이다. 책 속의 음식들은 화려하기보다는 단정하고, 설명은 소박하지만 태도가 분명하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보다, 왜 그렇게 만들어왔는가에 대한 인식이 문장 곳곳에 스며 있다.
사진 속 인물은 『조선요리법』의 저자 조자호다. 한복 차림의 그녀는 조선의 전통을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아간 여성 지식인이었다. 오른쪽은 그녀가 1939년에 출간한 『조선요리법』 초판본. 닳고 해진 책 표지에는 그녀가 얼마나 오랜 시간 음식을 기록하고 연구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사진=호원당]
조자호는 양반가의 식생활을 바탕으로 조선 고유의 조리법을 정리했다. 재료를 다루는 법, 불을 쓰는 방식, 음식의 차림과 순서까지. 이 책은 레시피를 나열하기보다 조선 음식이 지켜온 형식과 정신을 함께 기록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그래서 『조선요리법』은 오늘날 한식의 뿌리를 추적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전통을 이상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조자호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 시기에 조선의 요리라 하는 것은 대부분 외국 요리와 혼합된 것이 많으므로 순수한 조선 요리를 찾기에는 고난합니다.”
이미 1930년대에 한식은 외래 문화와 뒤섞여 있었고, 그녀는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전통 한식’이라 부르는 음식들조차, 사실은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결과일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는 단순한 한탄이 아니라, 기록해야 할 이유였다.
그래서 『조선요리법』은 과거를 복원하기 위한 책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한 선언이다. 조자호는 전통 음식이 다시 ‘부활’하고 ‘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사라진 것을 애도하는 기록이 아니라, 이어질 수 있도록 남긴 실천의 문서였다.
그녀의 작업은 책으로 끝나지 않았다. 1953년, 조자호는 전통 병과 전문점 ‘호원당’을 설립한다. 사라져 가던 궁중 떡과 과자를 직접 만들고, 손님들에게 먹이며, 전통을 생활 속으로 다시 불러냈다. 오늘날 ‘두텁떡’으로 알려진 병과 역시 그녀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음식 중 하나다. 조자호에게 전통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만들어지고 먹히는 현재였다.
8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K-푸드의 화려한 외형 뒤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계승하고 있는가. 새로운 해석과 확장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바탕이 되는 질문, ‘이 음식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조선요리법』은 한 권의 조리서가 아니다. 민족의 정체성이 위협받던 시기에, 음식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문화를 통해 조선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한 여성의 기록이다. 조자호가 던진 “진짜 조선 음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식탁 위에 조용히 남아 있다.
음식은 늘 현재형이지만, 그 뿌리는 과거에 닿아 있다.
『조선요리법』은 그 연결을 잊지 말라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유효한 목소리로 들린다.
음식 너머에 머무는 속삭임, 두부의 이야기( ˶˙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