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밭에서 자란 어린 배추가 식탁 위에서 ‘봄’이 되는 순간
봄이 가까워지면 식탁에도 작은 변화가 생긴다. 겨울 내내 단단하게 여물어 있던 식재료 대신 잎이 부드러운 채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최근 눈에 띄게 자주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봄동이다.
요즘 식당과 SNS를 둘러보면 ‘봄동 비빔밥’이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봄동은 오래전부터 남해안과 서남해 지역에서 먹어 온 겨울 채소다. 배추와 같은 종이지만 일반 배추처럼 단단히 결구하지 않고 잎이 바닥에 납작하게 퍼지며 자란다. 그래서 잎이 훨씬 부드럽고 풋향이 강하다. 김치보다는 겉절이나 나물, 국에 더 잘 어울리는 채소다.
‘봄동’이라는 이름 자체는 비교적 최근에 널리 쓰이기 시작했지만, 어린 배추를 봄철 채소로 먹는 문화는 조선 후기 문헌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와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겨울에도 재배할 수 있는 채소와 배추 재배법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임원경제지』는 추운 계절에도 밭에서 채소를 생산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다. 또한 『규합총서』에서는 어린 채소를 바로 무쳐 먹는 겉절이 방식이 소개된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봄동과 정확히 같은 이름은 아니지만, 결구되지 않은 어린 배추를 봄철 신선 채소로 소비하는 문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셈이다.
봄동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계절성과 영양이다. 배추류 채소는 비타민 C와 베타카로틴이 풍부하고 식이섬유 함량이 높다. 특히 겨울을 지나며 천천히 자란 잎 채소는 항산화 성분이 비교적 높게 축적되는 경우가 많다. 칼륨과 엽산 역시 풍부해 겨울 동안 부족해지기 쉬운 신선 채소의 영양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봄이 시작되는 시기에 나물과 어린 채소가 식탁에 등장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지금, 봄동이 다시 주목받는 걸까.
아마도 이유는 단순하다. 제철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요즘 외식 시장에서는 ‘로컬’과 ‘계절’이라는 키워드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셰프들은 특정 지역의 식재료를 강조하고, 소비자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메뉴를 기대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봄동은 자연스럽게 ‘봄을 알리는 채소’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비빔밥이라는 형식이 더해지면서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비빔밥은 한식에서 가장 유연한 음식 중 하나다. 특별한 조리 기술이 없어도 만들 수 있고, 제철 재료를 쉽게 담아낼 수 있다. 봄동 역시 가볍게 무치거나 생채로 넣어도 충분히 맛을 낸다. 참기름과 깨를 더해 비비면 풋향이 살아나고, 간장이나 된장 양념을 더하면 풍미가 깊어진다. 어떤 식당에서는 들기름을 더해 향을 강조하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제철 해산물을 곁들여 새로운 메뉴로 변주하기도 한다.
최근 외식업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마이크로 시즌 트렌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정 식재료가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소비되는 흐름이다. 미나리, 달래, 냉이, 제피처럼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식재료들이 대표적이다. 봄동 비빔밥 역시 이 흐름 속에서 등장한 메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유행은 오래 지속되기보다는 계절과 함께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봄이 끝나면 봄동도 식탁에서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대신 다른 채소가 그 자리를 채운다. 달래가 올라오고, 미나리가 향을 내고, 냉이가 국을 만든다.
그래서 봄동 비빔밥의 유행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든다.
한식의 가장 큰 매력은 어쩌면 ‘계절을 먹는 문화’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특정 식재료가 잠시 식탁에 나타났다가 계절과 함께 사라지는 것. 그리고 다음 계절이 오면 또 다른 재료가 등장하는 것. 그런 흐름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봄동 비빔밥이 지금 인기를 얻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봄이 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식탁에서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머지않아 또 다른 식재료가 우리의 그릇 위에 올라올 것이다. 미나리가 될 수도 있고, 달래가 될 수도 있고, 아직 우리가 이름을 부르지 않은 어떤 채소일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또 새로운 봄의 맛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음식 너머에 머무는 속삭임, 두부의 이야기( ˶˙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