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시(swicy) 시대의 고추장

세계가 사랑한 것은 극매운맛이 아니라 매운맛의 스펙트럼이었다

by 두부

매운맛은 오랫동안 시험지 같았다. 누군가의 입안에서만 정답이 되고, 누군가의 입안에서는 실패가 되는 맛. 우리는 매운맛을 말할 때 자주 용기를 이야기한다. ‘버텼다’ ‘견뎠다’ ‘도전했다’ 같은 단어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26년의 매운맛은 도전이 아니라 초대처럼 느껴진다.


달콤함이 매운맛의 어깨에 손을 얹고, “여기까지는 함께 와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느낌. 그 달콤함과 매운맛의 결합을 사람들은 스위시(swicy)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단어가 넓어질수록, 매운맛은 더 많은 사람의 일상으로 스며든다. Tastewise는 2026년에도 스위시가 확산 중인 흐름이라고 정리하고, IFF 역시 2026년 북미 풍미 트렌드에서 스위시를 ‘접근 가능하면서도 층위가 있는 매운맛’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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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https://www.traderjoes.com/ 트레이더조에서 판매되고 있는 PB 떡볶이]

이 흐름의 중심에서 유독 자주 불리는 이름이 있다. 고추장. 이제 고추장은 ‘Korean chili paste’ 같은 설명이 아니라, 그대로 고유명사처럼 불린다. 그리고 이것이 단지 기분이나 분위기만은 아니라는 걸 숫자가 먼저 말한다. 케리(Kerry)가 공개한 2026 글로벌 테이스트 차트에 따르면 미국에서 고추장 관련 제품 런칭은 최근 12개월 동안 120% 증가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건, 한식이 사랑받는다는 사실보다 더 흥미로운 장면일지도 모른다. 세계는 이미 타바스코도, 스리라차도, 하리사도 알고 있는데—왜 하필 고추장이었을까.


답은 ‘국적’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고추장은 소스이면서 동시에 페이스트다. 뿌리는 것이 아니라 붙는 것. 액체 핫소스가 혀 위를 빠르게 지나갈 때, 고추장은 음식 표면에 머물러 윤기를 만들고, 코팅이 되며, 끝맛을 길게 남긴다. 그래서 고추장은 글레이즈가 되고 딥이 되고 스프레드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 점도가 “조금 낯설고, 조금 무거운” 질감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 무게가 고추장을 세계의 소스 문법으로 번역하게 만들었다.


그 번역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Shake Shack은 2026년 1월, ‘Korean-Style Menu’를 다시 꺼내며 sesame gochujang glaze를 전면에 내세웠다. 고추장은 여기서 ‘한국을 소개하는 장식’이 아니라, 메뉴를 설명하는 기능의 언어가 된다. “스파이시-스위트”라는 말이 고추장을 대신하고, 고추장은 그 말의 질감과 광택을 실제로 만들어낸다. 치킨에 붙고, 감자에 붙고, 드리즐로 뿌려지고, 마요와 만나 부드러운 딥이 된다. 한 나라의 양념이 다른 나라의 기본 조리 문법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늘 이렇게 조용하다. ‘정복’처럼 요란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여기에도 이게 있네” 하고 발견되는 방식으로 온다.


고추장이 특별한 이유는 맵기만 해서가 아니다. 고추장에는 달콤함과 짠맛, 그리고 발효에서 오는 감칠맛이 함께 들어 있다. 매운맛이 사람을 밀어낼 때 달콤함이 다시 불러들이고, 짠맛이 맛의 윤곽을 잡아주고, 발효의 깊이가 끝맛을 지탱한다. 영국 식품업계 분석에서도 고추장은 달콤함과 감칠맛, 과하지 않은 열감이 공존하는 성장 아이템으로 언급되며, 소스·스낵·레디밀로의 확장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결국 스위시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맵게”가 아니라 “더 오래 먹을 수 있게”라는 균형인데, 고추장은 그 균형을 원래부터 갖고 있다.


고추장의 확산은 레스토랑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확산은 살 수 있음(리테일), 쓸 수 있음(SNS 레시피), 먹어본 경험의 재확인(외식 메뉴)이 서로를 밀어올리는 방식에 가깝다. 제품이 늘어나면 손에 들어오고, 손에 들어오면 섞어 보게 되고, 섞어 본 기억이 다시 메뉴를 더 익숙하게 만든다. 케리의 런칭 증가 지표가 제조 단계의 확신이라면, 대중 브랜드의 재도입은 외식 단계의 확신이다. 두 신호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그것은 바이럴을 넘어 ‘카테고리 편입’에 가깝다.


여기서 감성적인 전환이 하나 더 생긴다. 외국인들이 고추장에 끌리는 이유는 극단적인 매운맛이 아니라, 매운맛의 폭, 스펙트럼에 있다. 순한 고추장은 크림과 마요, 버터와 만나 “풍미”로 둥글어지고, 중간 강도는 글레이즈와 볶음, 비빔의 표준점이 되며, 더 매운 고추장은 달콤함과 결합해 스위시의 쾌감을 선명하게 만든다. 고추장을 산다는 것은 “이 정도 맵기”를 산 것이 아니라, “오늘은 순하게, 내일은 더 맵게”를 가능하게 하는 선택지를 산다는 뜻이 된다. 스위시가 대중화되는 과정 역시 달콤함이 매운맛의 진입 장벽을 낮추며 참여자를 늘린다는 설명과 겹친다.


그래서 매운 고추장에 대한 열광은 ‘극단’이 아니라 ‘튜닝’에 가깝다. 고추장의 열감은 달콤함과 발효 감칠맛의 지지 위에서 설계된 형태라, 같은 체감 강도라도 공격성이 덜하고 맵지만 맛이 남는 쪽으로 기억되기 쉽다. 무엇보다 고추장은 조절이 쉽다. 마요, 요거트, 버터, 오일, 꿀과 섞는 순간 매운맛은 즉시 다른 구간으로 이동한다. 매운맛을 견디는 시대에서, 매운맛을 조율하는 시대로 넘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금, 그 조율에 이상할 만큼 즐거워한다. 매운맛이 더 이상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 아니라, 내 입맛을 내 손으로 맞추는 작은 공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https://www.delish.com/cooking/recipe-ideas/a70463844/tteok-n-cheese-recipe/]


어쩌면 고추장의 세계화는, 한국의 매운맛이 세계를 정복했다는 서사보다 훨씬 조용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다. 2026년의 고추장은 스위시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매운맛을 하나의 강도가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제공하는 조미료로 기능한다. 제품 런칭이 늘고, 대중 브랜드가 다시 고추장을 꺼내 쓰는 것은 이 흐름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관건은 고추장이 달콤-매콤 소스로만 소비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발효의 깊이와 조절 가능한 열감이라는 고유한 자산을 바탕으로 ‘장(醬)의 언어’ 자체를 더 넓게 번역할 수 있는가다.


세계가 사랑한 것은 결국 극매운맛이 아니라, 그 사이의 넓은 폭—그리고 그 폭을 부드럽게 건너게 해주는 고추장의 설계였다.




음식 너머에 머무는 속삭임, 두부의 이야기( ˶˙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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