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감태

겨울 바다가 남겨둔 마지막 식재료

by 두부

처음 감태를 먹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향이었다. 김처럼 바삭한 식감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입안에 넣자 얇은 해조가 부드럽게 풀어지며 은은한 바다 향이 퍼졌다. 짠맛이 강하게 앞서기보다 감칠맛이 천천히 올라왔고, 씹을수록 바다의 풍미가 길게 남았다.

PhotoshopExtension_Image_1.jpeg

[사진=바다숲 홈페이지]

김과는 분명히 다른 질감이었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대신 부드럽게 녹아내리듯 풀어지고, 향도 훨씬 섬세했다. 그래서인지 해산물과 함께 먹었을 때 그 맛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감태가 왜 요리에서 자주 사용되는지, 그때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감태는 겨울에만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해조다. 보통 12월 중순 서해안에서 채취가 시작되고 겨울 동안 이어지던 채취는 3월이 되면 끝을 향해 간다. 많은 어민들이 말하듯 감태는 시즌의 마지막이 가장 좋다. 겨울을 충분히 견디며 자란 감태는 잎이 조금 더 두툼해지고 향도 깊어진다. 특히 2월 말에서 3월 사이의 감태는 질감이 부드러우면서도 풍미가 가장 농축된 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감태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더 이상 채취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태는 사계절 언제든 만날 수 있는 해조라기보다 겨울 바다가 잠시 허락하는 식재료로 여겨진다.

감태는 녹조류에 속하는 해조로 학명은 Capsosiphon fulvescens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서해안에서 자라며 특히 충남 서산 가로림만 일대가 대표적인 산지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모래와 펄이 섞인 갯벌이 넓게 펼쳐진 곳이다. 겨울철 차가운 수온과 빠른 조류 속에서 감태는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김이나 미역처럼 양식 기술이 발달한 해조류와 달리 감태는 자연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일정한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안정적으로 생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태는 지금도 상당량이 자연 채취 방식으로 생산된다. 채취 시기도 겨울 한 철에 집중되어 있어 생산량 역시 많지 않다.


감태는 원래 전국적으로 널리 소비되던 식재료라기보다 서해안 지역의 겨울 음식 문화 속에서 이어져 온 해조였다. 충남 서산과 태안 일대에서는 겨울철 채취한 감태를 밥에 싸 먹거나 무쳐 먹는 방식이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다. 또 감태를 말려 얇게 눌러 김처럼 먹는 ‘감태김’도 지역 식문화 속에서 자리 잡았다.


감태가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과거에는 생산량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 지역 안에서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컬 식재료와 계절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감태 역시 새로운 미식 재료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감태는 종종 감태김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김과 같은 해조로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두 식재료는 꽤 다르다. 김은 홍조류로 양식 기술이 발달해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하다. 한국이 세계적인 김 생산국이 된 것도 이러한 양식 산업 덕분이다.


반면 감태는 녹조류로 자연 환경 의존성이 강하다. 김처럼 체계적인 양식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량이 제한적이고 채취 시기도 겨울 한 철에 불과하다. 질감과 향에서도 차이가 있다. 김이 바삭하고 고소한 풍미를 지닌다면 감태는 훨씬 부드럽고 은은한 바다 향을 지니고 있다. 입안에서 천천히 풀어지며 감칠맛을 남기는 질감은 감태의 특징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감태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식재료가 되었다. 셰프들이 감태를 선택하는 이유는 향과 질감 때문이다. 감태는 바다의 향을 지니면서도 향이 과하지 않아 해산물의 풍미를 방해하지 않는다. 얇고 부드러운 질감은 재료를 감싸거나 접시 위에 얹어 사용하는 데에도 적합하다.


그래서 감태는 성게나 전복 같은 해산물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얇게 펼친 감태로 해산물을 감싸거나 접시 위에 감태를 깔아 은은한 바다 향을 더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감태를 튀일 형태로 만들어 식감 요소로 활용하거나 가루 형태로 만들어 소스에 풍미를 더하는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감태는 단순한 해조류라기보다 바다의 향을 요리에 더해주는 재료에 가깝다. 그리고 그 재료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3월이 지나면 감태 채취는 대부분 끝난다. 그래서 지금의 감태는 겨울 바다가 남겨 둔 마지막 식재료라고 할 수 있다.


계절이 바뀌기 전, 잠시 만날 수 있는 바다의 풍미. 감태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그 짧은 시간 때문일지도 모른다.


음식 너머에 머무는 속삭임, 두부의 이야기 ( ˶˙ᵕ˙˶ )□

매거진의 이전글스위시(swicy) 시대의 고추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