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밭의 식탁에서, 감귤을 다시 이해하는 방식

즉흥과일클럽 X 시트러스, 피어나는 새싹처럼, 만감류의 향이 열리는 순간

by 두부
KakaoTalk_Photo_2026-03-31-05-22-13-2.jpeg [사진=즉흥과일클럽X시트러스]

제주에서 감귤을 먹는 일은 익숙하다.

하지만 그날 벗밭에서의 경험은, 감귤을 ‘먹는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식탁 위에는 금귤, 청견, 레드향, 팔삭, 블러드오렌지, 한라봉이 놓여 있었다.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한 자리에서 비교하며 먹어본 적은 많지 않다.
비슷해 보이던 감귤들은 입에 넣는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펼쳐졌다.


이날의 시작은 자기소개였다.
다만 이름 대신, 식탁 위 만감류 중 하나를 골라 별칭으로 삼는다.
그 이후로는 서로를 그 이름으로 부른다.
낯선 방식이지만, 대화의 온도가 자연스럽게 낮아지고 관계가 부드럽게 풀린다.


이후에는 만감류에 대한 설명을 한 줄씩 돌아가며 읽는다.
누군가는 단순한 정보 전달로 볼 수도 있지만, 이 과정이 의외로 중요하다.
읽은 내용이 곧바로 입안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미각이 바로 연결되는 구조다.


이날 자리에는 제주 시트러스의 최희선님께서 함께했다.
제주 신례리 농민들의 마음이 ‘함께(혼디)’ 모여 만들어진 시트러스 양조장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단순히 감귤을 가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 농민들의 방식과 시간이 모인 결과물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사진=시트러스 신례명주]

소개된 술은 두 가지였다.

‘신례명주’는 원액에 물을 거의 타지 않고 오크통에서 숙성한 술이다.
제주 감귤의 싱그러운 향이 먼저 올라오고, 뒤에서 은은한 오크 향이 따라온다.
과일 향이 중심을 잡고, 숙성에서 오는 깊이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마셔블랑’은 ‘마시다’와 ‘블랑’을 결합한 이름의 만감류 화이트 와인이다.
껍질을 벗긴 제주 감귤과 한라봉을 100% 착즙해 발효시키고, 감귤꽃꿀을 더해 숙성한 술이다.
한 모금 마시면 달콤함과 약간의 쌉싸름함이 함께 느껴지고, 끝에서는 꽃향에 가까운 여운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가볍고 편하게 마시기 좋은 구조다.


이 술들은 만감류와 함께 페어링됐다.
과일을 따로 먹을 때와, 술과 함께할 때의 인상이 확연히 달라진다.


산미는 더 또렷해지고, 향은 길어진다.

각 만감류의 인상도 분명했다.


블러드오렌지는 가장 복합적인 맛을 보여줬다.
단순히 달거나 시지 않고, 여러 층의 향이 겹쳐지며 구조를 만든다.
기존 감귤류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방향이다.


팔삭은 쌉싸름함이 중심이다.
처음에는 거칠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입안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뒤에 남는 산미까지 포함해 균형이 맞는다.


금귤은 껍질에서 오는 향이 분명했고,
청견은 전체적인 균형이 안정적이었다.
레드향과 한라봉은 당도가 분명해 밀도감 있는 인상을 남긴다.


한편, 식탁에는 감귤을 활용한 다양한 양념도 함께 놓였다.
귤식초, 만감류 소금, 비건 마요, 미소와 귤을 섞은 드레싱.
같은 재료지만 가공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한다.
직접 곁들여 먹어보는 과정에서 그 차이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노지에서 재배된 감귤, 즉 ‘노지밀감’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자란 감귤은 균일하지 않지만, 그만큼 계절과 지역의 영향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날 경험을 정리하면, 감귤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단순히 맛보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붙이고, 읽고, 비교하며 이해하는 구조였다.


비슷해 보이던 만감류는 각자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감귤은 익숙한 과일에서 벗어나 하나의 소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음식 너머에 머무는 순간, 두부 ( ˶˙ᵕ˙˶ )

https://cooknchefnews.com/news/view/106559245869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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