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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새 Jan 01. 2022

잘 참는 아이와 참지 않는 아이가 자라서 부부가 됐다.

마시멜로우 이야기

남편과 나는 올해 여름인가부터 중국어를 공부중이다. 우리 아버님은 아침마다 EBS 오디오 어학당에서 중국어부터, 일본어, 베트남어 방송으로 언어 공부를 하는 분이고, 남편은 어릴 때 그런 아버지를 따라 중국어 학원도 다녔다. 하지만 당시 남편은 워낙 다른 관심사가 많아 중국어 공부에는 소홀했다고한다. 물론 언어학자로서 최소 3개 언어는 해야하지 않겠냐며 본인 스스로도 해야한다고는 생각했지만 기타, 자전거, 스케이트 보드 등 그에게 재미있는게 너무 많았다.


중국어는 나에게도 관심사는 아니었다. 중학교 때 적성검사하면 언어적 지능이 상위 2%로 나온 나였고, 언어를 금방 배우고 잘 따라하기 때문에 영어나 스페인어를 금방 배웠지만 “내가 5개 국어가 목표여도 중국어는 안배울거야”라고 말하곤 했었다. 이유는 한자가 어려워서. 한자 6급까지만 배우고, 5급에서 중단한 나에겐 한자로만 이루어진 중국어가 막연히 너무나 어려웠다.


그러다 우리가 결혼했고, 내가 중국, 대만인들과 일하면서 대만에  기회가 생겼다.  점이 남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던  같다.


남편은 나와 달리 즉각적인 만족을 찾는 유형이다. 마시멜로 이야기로 따지면, 나는 최대한 많은 양의 마시멜로를 받기 위해 자제력을 발휘하는 교과서적인 아이이고, 남편은 어른이 떠나기도 전에 주어진 마시멜로를 모두 먹고, 그것도 모자라서 “ 주세요!” 라고 외칠 아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 대학원, 직장 생활에서 언제나 모범생이었고, 칭찬만 받아왔다. 남편은 공부든 뭐든 스스로가 관심이 생겨야만 열심히하다보니 모든 방면에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관심이 있는 분야에서는 뛰어났다. 나의 원동력은 자제력을 바탕으로한 목표 지향성이라면, 그의 원동력은 강력한 지적 호기심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남편은 서점에 달려가더니 중국어 책을 골랐다. 중국어와 한자에 거부감이 컸던 나에게는 만화로 시작하는 첫걸음 책을 골라줬다. 각자 2권씩 챙겨서 그 길로 길 건너편 아무 카페에나 들어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후 한 두달은 정신나간 사람들처럼 중국어 공부만했다. 주말에도 눈 뜨자마자 중국어, 자기 전까지 중국어를 공부했다. 캠핑을 가도 중국어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EBS 중국어 방송을 켜놨다.


한참 공부할 때 “다른 책도 읽고 싶은데, 중국어가 너무 재밌어. 억지로라도 멈춰야하나?” 라고 걱정하는 나에게 남편이 “재밌을때 그냥 해, 어차피 나중에는 이렇게 못해”라고 쿨하게 말한 적이 있다. 뭐든지 비교적 꾸준히 해온 나에게는 이런 급작스레 몰려오는 지적 호기심의 파도가 낯설었고, 나는 이 파도를 타야하는지, 무시하고 해야할 일들을 해야하는지 어쩔 줄 몰랐다. 남편은 평생을 새로운 분야, 주제에 대해 솟아오르는 지적 호기심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파도를 탈 준비가 되어있었다.


예상했듯이 그 파도는 한 두달 후 잠잠해졌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른 활동에도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공부 시간을 줄였지만 틈틈히 공부 중이고, 남편은 또 새로운 관심사를 찾았다. 코로나 백신, 허리 디스크 등을 거쳐 이제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해 하루 몇시간씩 공부하고 훈련하고 있다. 그래도 일주일 2번, 20분씩 전화 중국어를 하기 때문에 아예 중국어를 끊진 않았지만 공부를 안하다보니 말할 수 있는 표현에 한계를 스스로 느끼는 중이다.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알아서 공부하겠지 싶어서 (내가 엄마도 아니고..) 공부하라고는 안한다. 대신 계속 공부 안하면 “전화 중국어 그만할래?” 라고는 물어볼 예정이다.


이렇게 나와는 다른 사람과 살면서 내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게된다. 처음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다음엔 서로를 이해했고, 이제는 가끔 서로의 방식으로 살아보면서 닮아가는 너와 나를 발견한다. 너를 닮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면 좋은 관계라고 하던데, 나는 너를 더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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