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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새 Jul 19. 2022

욕지도에 집이 생겼다

타이니하우스에 살고 있어요

우여곡절 끝에 욕지도에 타이니하우스가 도착했다. 집 지으면 10년은 늙는다고 하는데… 10년 늙는다는 말로는 내가 겪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다채로운 마음 고생을 충분히 묘사할 수는 없다. 지난 10개월동안 하루에도 몇번씩 감정의 널뛰기를 탔다. 정부 부처에서, 건축회사에서, 설계사에게서, 시공사에게서 전화가 오고, 새로운 소식이 있을 때마다 기뻤고 또 좌절했다. 지금까지도 사방이 바다인 집에 살고 있음에도 때로 몰려오는 심란함에 모든걸 온전히 즐기지 못할 때도 있다.


어찌됐든 우리 집이 욕지도에 있다. 그러니 이제 걱정은 좀 덜어내고 제대로 즐기려고한다. 마당일하느라 아직 코 앞인 바다도 못가봤는데, 마을 어르신들께 통발 낚시도 배우고, 스노쿨링도 집 앞바다에서 해볼 예정이다.  


우리집은 6/24일에 배를 타고 도착했다. 이미 외장재 수급 문제로 일정이 1주일 넘게 밀렸는데, 하필 장마철이라 배가 안뜰 수도 있는 시즌이었다. 도착하는 날 새벽까지도 비 예보가 있어서 배가 안뜰 수도 있었는데, 배가 안뜬다면 굉장히 골치아파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타이니하우스를 옮기는 과정을 잠깐 설명해보자면, 우리집은 길이 10m에 달한다. 그래서 9m 대형 트레일러에 실린다. 경기도의 출고지에서 트레일러에 싣고, 통영까지 6시간 가량 이동한다. 그 트레일러가 그대로 배에 올라가면 좋겠지만, 우리 집은 9m를 초과하기 때문에 트레일러 뒤로 살짝 튀어나와 배에 실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통영에서 10m 이상 트레일러를 추가 섭외했고, 배에 태우기 전에 타이니하우스를 옮겨 실어야했다. 몇톤에 달하는 타이니하우스를 다시 옮겨 싣는다는건 크레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통영에서 크레인도 섭외했다.


이런 상황에서 배가 안뜬다면 섭외한 차량들 일정도 모두 변경해야했고, 이미 작업을 시작한 차량이 있다면 그대로 작업비를 지불해야했다. 또, 다음날, 혹은 그 이후 배가 뜰 때까지 타이니하우스를 내려놓을 공간이 필요했다. 큰 공터 같은 곳에 또 다른 크레인을 섭외해서 내려놓고, 배가 뜰 때 다시 실어야한다. 크레인은 한번 부를 때마다 70-90만원이다.


우리는 야외 결혼식을 했는데, 당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비가 오면 오래된 실내 예식장으로 옮겨야했고, 그건 정말 싫었다. 메이크업 받으러 새벽에 나가면서 비가 오지 않길 바랬는데, 하늘의 뜻에 대해 그렇게 간절했던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땐 그 날보다 더 간절하게 비가 오지 않길 바랬다. 결국 결혼식 2부에서 비가 쏟아진 우리라면 이번에도 비가 내리지 않을까 싶었지만 결국 안개만 잔뜩 끼고 비는 조금만 내려 배는 무사히 출항했다.


그렇게 집이 욕지도에 도착했다. 4일간 마감 공사를 진행했고, 지하수 모터 설치, 토목 마무리 등 1-2주동안 매일 여러 공사팀이 와서 공사를 진행했다.  


지하수 모터 설치가 완료되어도 약 1주일동안은 흙탕물이 나오기 때문에 그 시간동안은 물도 쓰지 못했다. 7월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고, 모든 열을 흡수하는 검은색 집에 살면서 물티슈와 공중화장실에 의존하며 2주를 살았다. 사실 모든게 준비된 후에 들어오면 됐지만 우리가 계속 욕지도에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름이 끝나면 다시 올라와야하니 죽진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이사를 갔고, 사서 한 고생이었다.


그런 생활은 깨끗한 물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물론 아직 에어컨은 없다. 한여름에 배타고 한시간 들어가는 섬에, 그것도 소형 천장형 에어컨 설치해주실 분을 찾기보다 어려운 일은 없어서다. 그래도 욕지도는 해가 쨍쨍해도 바람이 시원해서 찬물 샤워와 선풍기로 여름을 무사히 나고 있다.


아직도 우리를 힘들게하는 문제는 있다. 우리집은 아직 상수도 연결이 되지 않아 지하수에 의존해야한다. 그런데 섬은 물이 귀하고, 우리 집이 있는 지역은 그 중에서도 물이 귀한 곳이라 지하수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극적으로 수맥을 찾아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지만 올해 가뭄의 영향인지 수량이 매우 적다. 도시 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물을 절약하다보니 서울에서 물을 펑펑 쓰고 살던 시절이 전생처럼 느껴진다.


하루에 몇십리터도 나오지 않는 물을 우리 온 식구가 노나쓰고있다. 우리 부부, 13년간 정수기에서 흐르는 물만 마신 고양이, 더위 많이타는 강아지. 여기에 마당에 심은 잔디, 꽃, 나무까지. 모두가 충분한 물을 즐길 수 있도록 알뜰 살뜰한 물 사용법을 익혀가고 있다. 상수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니 내년에는 상수도를 쓸 수 있지 않을까, 마을 사람들과 한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아름다운 뷰를 가진 호텔 뺨치는 집에 급수난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매일이 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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