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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새 Sep 23. 2022

바다가 보이는 집이 낭만적이지 않았던 이유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집이 지어진 후, 아직 물도 안나오고 에어컨도 없지만 우리는 선풍기 하나 들고 내려갔다. 하루라도 빨리 욕지도 삶을 즐기고 싶어서 "어떻게든 죽진 않겠지"하는 마음으로 강아지, 고양이까지 데리고 일단 내려갔다. 6월 말, 한참 더울 때 나무 하나 없이 땡볕 아래 지어진 작은 집에 살겠다고 네 식구가 움직였다.


이사도 만만치않았다. 집이 작지만 있을건 다 있다보니 전자레인지, 그릇 등 살림살이들이 꽤 많이 들어갔다. 이사 견적을 받아보니 섬이라서! (앞으로 섬이라서 발생할 수 많은 어려움들의 시작이었다) 100만원 견적을 받고 직접 이사하기로했다. 집에서 먹던 음식들, 이불 등 총 8박스는 택배로 보내고 나머지 살림은 먼저 자동차에 가득 가득 실었다. 지금까지 캠핑으로 쌓아온 테트리스 실력을 총 동원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가장 고난이도는 화분들. 지난 2년동안 아파트 베란다에서 애지중지 키워왔는데 새 집이 생겼다고 내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이미 짐으로 가득 찬 차에 줄기를 꺾지 않고 넣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우린 서울에서, 그것도 서울 최북단에서 대한민국 최남단 욕지도까지 두번을 왕복하기로했다. 그렇게 욕지도에 우리 살림이 모두 모였다.


욕지도 집에서 보낸 첫날 밤은 그렇게 낭만적이진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그 예쁜 바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좋아질 때까진 시간이 꽤 걸렸다.


이사한 직후에는 물도 안나오고,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침대, 심지어 배개도 없었다. 집도 검은색이라 모든 열을 흡수해서 문을 닫아놓으면 실내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렇게 더운 날에 하루 종일 씻지도 못하고, 밤이 되어서야 현관문 열어두고 선풍기 하나 돌리면서 맨바닥에 배개 없이 잠을 청했다. 더위를 우리보다 많이 타는 강아지 춘구는 새벽에 너무 덥다고 우리를 깨울 정도였다. 계속 밀어내도 돌아와서 깨우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너무 더워서 죽겠다고, 밖에 나가자는 표현이었다.


그렇게 몇일 후엔 주변 공중화장실을 발견해서 세수라도 간단히 해결하기 시작했다. 찬물로 씻고 밖에 나와서 욕지도의 바닷바람으로 물기를 말리는 그 순간은 우리 둘만 공유하는 (웃기지만)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 되었다.


다행히 몇일 간격으로 물이 나오기 시작하고, 냉장고가 도착했다. 에어컨, 세탁기, 건조기는 7월 중순이나 되어 설치되었지만 물만 나와도 대부분의 생활이 가능했다. 더우면 씻으면 되고, 빨래는 일주일에 한번 배타고 나가서 코인 빨래방에 가거나 빨래를 핑계로 엄마 집에 갈 수 있었다.


바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건 에어컨이 설치된 후였다. 에어컨 설치 전엔 별일 아닌 일에도 화가 여러번 치밀었고 남편과도 싸웠고, "괜히 왔어! 우리 망했어!"하면서 울었다. 그런데 에어컨이 설치되고, 집 안이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해지자 내가 가장 먼저 한 말이 "어머, 오늘 바다가 너무 예쁘다!"였다고 한다. 바다는 그 전이나, 그 때나, 언제나 예뻤을텐데.  


그렇게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에어컨을 빵빵 틀면서) 점점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밤에는 가장 좋아하는 호텔 침구에 누워 별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매일 매일이 여행이었다.


도시에서만 살아본 부부가 처음으로 섬 생활을 하면서 동네 어르신들께 이것 저것 배우고, 바다에 나갔다가 잡아주시는 문어, 우럭, 갈치, 전갱이도 먹어보기 시작했다. 면사무소에 가서 체력단련실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헬스장도 등록하고, 도서관도 가서 책도 빌려 읽었다.


하루는 일 할 때 쓰는 모자나 호미 등을 사러 자주 가는 선구점에 갔는데, 평소 우리 부부를 예뻐해주시는 사장님 부부께서 급하게 우리를 부르셨다. 가보니 할머니께서 갑자기 심장이 안좋아져서 숨이 넘어갈 듯해서 보건소로 급히 가야했다. 사장님 트럭은 너무 높아서 할머니가 탈 수 없었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그랬겠지만 당연히 우리 차에 짐을 치우고 할머니를 모시고 보건소로 달려갔다.


다음날 괜찮으신지 찾아뵀더니 다행히 그날 긴급 조치를 취했고, 아침에 바로 큰 병원으로 가셔서 회복 중이셨다. 사장님께서는 우리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했다며 우리를 볼 때마다 손을 잡아주시고 제철 생선을 주셨다.


그렇게 욕지도 생활을 즐기는 시간도 오래가지 못했다. 주택에 살면, 그것도 시골에, 그것도 섬에 살면 끊임없이 할 일이 생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집이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하고, 차를 돌리기 쉬운 길목에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집 주변에 멈춰서 구경하고, 바닥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심지어는 당당하게 마당으로 들어오기까지 했다. 집에서 늦잠 자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려서 출렁다리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정말 섬뜩하다.


그래서 우리는 울타리 공사를 무조건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견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기가 섬인데요, 울타리 50m정도 치려고하는데 견적이 어떻게될까요?"

"가장 저렴한걸로 하면 한 천만원 나오겠네요."


섬에선 모든게 비싸다. 뭐 좀 하려고하면 천만원이 넘어간다. 고작 (그 땐 고작 이라고 생각했다) 울타리에 천만원을 쓸 순 없었다. 그래서 우린 또 셀프로 하겠다는 엄청난 결심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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