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야 하나ㅠㅠ
현재 나는 지방의 한 대학에서 일주일에 3일, 점심시간 포함해서 하루에 6시간씩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 대기업은 아닐지언정 한때는 나도 과장, 팀장을 달고 1년에 한 번씩 내 돈 내고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사고 싶은 옷도 척척 사 입고, 여기저기 출장도 다니고, 업무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교육도 골라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하던 나름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이었답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이 놈의 회사 지긋지긋해서 못살겠네.'
그랬더랬지.
팀장이라는 직책이 때로는 부담스러워 오히려 같이 일하던 파트타임의 어린 친구를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그때는 나 자신이 '이직의 여왕'이라고 허세를 부리며 언제나 좋은 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맞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가고 자칭 타칭 아줌마가 되면서부터 나는 내가 생각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구나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애매한 나이에 무작정 사표를 던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육아를 하기에 딱 맞는 행정원 자리를 하나 꿰찼는데 이거 이거 대우라고는 가지고 있는 거 뺏기지나 않게 조심해야 하는 처지라니. 출근 첫날부터 내 책상도 마련되지 않아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서성였다. 다행히 대학이라 남는 책상은 많았던지라 강의실에 있는 책상 하나를 어찌어찌 끌고 와서 자리에 앉았다. 일하러 왔는데 컴퓨터도 없단다. 아직 주문도 하지 않아 그 후로 나는 한 달 동안이나 내 노트북을 가지고 출근해야 했다.
아 20대 때 같았으면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 콧물 흘리며 서러워 못살겠네 목메었을 일인데 이제 나는 세파에 흔들리다 못해 반 보살이 된 어엿한 아줌마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업무에 충실히 임했다.
오늘은 10시부터 회의가 있었다. 내 출근 시간이 10시인데 아이를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출근하면 9시 55분쯤 되었다. 어제 미리 말씀도 드리고 회의 자료랑 테이블 세팅을 마치고 와서 어느 정도 안심은 되었지만 하필이면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비가 오는 와중에도 도로가 공사 중이다. 어쩔 수 없이 빙 돌아가다 보니 딱
10시다. 이런….
조용히 문을 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들어갔으면 좀 나았을 텐데 헐레벌떡 뛰어들어가 벌컥 문을 열었는데 8개의 눈이 나를 쳐다본다. 여보게, 좀 더 우아해질 수는 없었느냔 말이다!! 뻘쭘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했지만 아무도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더 민망해진다. 나의 위치가 이런 것인가. 인사해도 아무도 괘념치 않고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눈치껏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참석자들을 로비에서 만나 제대로 자리에 앉혀 놓고 보니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보다 한 살 어린 나의 보스가 말한다.
"선생님 회의자료 좀 잘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짜증은 났지만 입사할 때부터 나이 어린 상사한테도 잘해야지 하고 몇 번이나 나 자신을 타일러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노려보지 않고 최대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돌아봤다.
"아 왜요?"
"여기 오타가 있네요"
'아 그 표 부분은 니 보스가 작성한 거예요. 최종 자료 검토해 달라고 보냈을 땐 입 다물고 있었잖아요. 물론 제가 잘 봤으면 좋았겠지만 네가 좀 더 잘 보시지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휴 그래. 내가 프로페셔널이 한 스푼 부족했다. 내가 한번 더 꼼꼼히 쳐다봐줬어야 했는데.... 이거 이거 오타 지적을 받아본 지가 언제적 일이었냐.'
갑자기 현타가 왔다.
그래 뭔가 잘못됐다. 지금 이 상황은 10여 년 전에 데자뷔다. 지금도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는 건 아니지 않냐 싶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래 이건 아니지. 다시 내 나이에 맞는 직업을 찾아야 한다. 아직은 내려올 때가 아니란 말이다. 내려오더라도 좀 더 해 먹고 내려와야지. 나는 지금부터 열심히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거다. 물론 연초부터 계획했던 일이긴 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빨리 탈출 계획을 세워야겠다. 정말 모든 문이 닫히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