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우리들을 위한 변명
우리 교회에서 우리 부부가 제일 뚱뚱하다. 도대체 이노무 교회는 어찌 된 일인지 남자도 여자도 모두 허리춤이 25인치가 넘어가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50세 이상이 전교인의 60%가 넘는 꽤 올드한 교회인데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죄다 시간만 나면 자전거 라이딩을 다니고, 여자들은 요가나 피트니스를 다닌다. 한마디로 다들 열심이 넘치고 부지런히 산다.
주일학교 교사 회식 자리. 분당의 유명한 한정식 집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였다. 열 가지가 넘는 반찬들이 늘어서자 유난히 알콩달콩 깨를 쏟는 부부 교사의 촌평이 시작되었다. 이건 집에서 해 먹어 봐도 좋겠다는 둥, 생선을 좋아하지만 냄새가 나서 집에선 못 먹으니 많이 먹으라는 둥. 이야기의 주제가 '집밥'으로 흘러갔다. 집에서 주로 해 먹는 음식이며, 서로의 입맛이 어떻게 다르고 까다로운지, 부부 사이에 요리 실력은 어떤지... 그러다가 그 자리에 없던 우리 집 남편이 갑자기 화제에 올랐다.
"O 집사님도 음식 엄청 좋아하시잖아요. 집에서 요리도 좀 하세요?"
"아뇨. 저희는 서로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해요. 요리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대충 해 먹고, 남편은 아무 거나 줘도 잘 먹어요. 흰쌀밥만 퍼먹어도 고소하고 너무 맛있다는 양반이니까. 더 맛있게 해 줄 필요도 없고. ㅎㅎ"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깨 부부'가 약간 놀랍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우리 교회에서 제일 잘 먹는 부부가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하다니? 하는 딱 그 표정.
말하고 나서 나도 놀랐다. 아... 우리가 뚱뚱한 건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관심이 없기 때문이어서였구나. 관심이 없으니까 아무거나 먹어서 이렇게 된 거였어! ㅎㅎ
우리가 정말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면 매끼를 정성껏 차려 먹었을 거다. 영양소와 칼로리를 생각하며 식단을 조절해서 먹었겠지. 음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까다롭게 선택했겠지. 먹을 때마다 서로에게 잔소리가 많았겠지.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면 체중이 이렇게 불지도 않았을 것이다. 꾸준히 운동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하루종일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이렇게 식탁에 퍼질 앉아 허겁지겁 풀진 않았을 것이다. 그 모든 선순환의 고리가 우리에겐 없으니... 우리가 음식에 관심이 없어서 뚱뚱해졌다는 사실을 그만 인정해야 겠다. ㅎㅎ
맛있는 음식, 멋진 몸매, 화려한 명품으로 도배한 인스타그램이 불편한 건 아니다. 내가 주류에서 조금 멀리 비껴 나 있다는 사실을 잠시 확인할 뿐이다. 처지는 주름에 보톡스를 맞고, 늘어지는 몸을 일으켜 홈트를 하고, 저녁마다 탄수화물 대신 샐러드를 주식으로 삼아 열심히 관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 달라 신기하고, 그 성실하고 꾸준함이 대단해 보인다. 젊고 예뻤을 때 좀 더 나를 가꾸며 살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고, 지금은 늙고 못생겨졌으니 해봐야 특별히 다를 것도 없겠다 싶어 안 한다. 그뿐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시간대에 다른 가치로 살고 있고, 그들과 나 또한 그저 다른 사람일 뿐이다.
다만, 우리가 뚱뚱하니까 음식에 관심이 더 많을 거라는 자동 등식만은 거절한다.
먹고사는 데 무신경한 우리야말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일지 누가 알겠는가. (우겨본다!) 부자는 늘 나쁘고 가난한 사람은 늘 착한 게 아니 듯, 우리가 뚱뚱하다고 너희들 보다 더 음식에 관심이 많은 건 아니란 말이닷~ 이 날씬한 것들아!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