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남편이 대통령이 됐잖아. 그거 2~3백만 원 밖에 안 하는 백 아니야? 집에 명품백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걸 받는 건데? 당신은 이게 이해가 돼?
정치에 대해서라면 이해 안 되는 게 한 두 가지도 아니고, 우리가 평상시 정치에 대해 잘 이야기하는 집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 집 식탁에서 말이 나올 정도면 어지간히 언론이 떠들어댔다는 얘기다.
"이미 집에 비슷한 명품백이 수도 없이 있을 거잖아. 돈 몇 백이 없어? 그것도 아니고. 역대 대통령과 영부인이 공금을 다른 곳에 유용하고, 받지 말아야 할 것을 받았다 해서 쓸데없이 구설수 오른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왜 굳이 스캔들을 자초해? 뇌가 없어? 바보야? 내가 보기엔 아무 이유가 없어. 그러니 나는 이게 정말 물욕으로 밖에 안 보인다고. 아무리 가져도 만족이 없거든. 물욕이란 게 그렇잖아. 그 많은 명품을 가지고도 보면 또 갖고 싶은 거잖아. 이것마저 내 것으로 만들어야 채워질 것 같은. 하지만 절대 채워지지 않지. 나는 그 욕망이 너무 자본주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오히려 순수할 지경이야. 이미 가진 권력을 잊을 만큼 그녀의 명품에 대한 욕망은 순수하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그게 아니야. 그 백이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야. 백이 목적이 아니라는 거지. 그 백은 자기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다는 걸 증명하는 표시인 거야. 내가 권력이 있기 때문에 저것들이 내게 이런 것을 가져오는 거다, 나는 이런 것을 받을 만한 권력자다. 그러니 내가 이것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와, 권력의 속성에 대한 남편의 분석은 확실히 나와 스케일이 다르다. 몇 년 전 성범죄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전 S교회 목사에 대해서도 우리는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우리는 젊은 시절 S교회에서 만나 함께 신앙생활을 했고, 그 교회에서 결혼했기 때문에 그 목사의 인간적 면모를 비교적 가까이서 지켜봤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 목사님, 일중독이었잖아. 목사님 본인은 매순간 스스로 자신했다고. 진짜 열심히 살았잖아. 거리낄 게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 인터넷에 올리며 사생활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치우쳤다고. 나는 그게 균형을 잃고 판단을 마비시켰다고 생각해.
스캔들이 있고 나서 나는 그가 평상시 즐겨했던 이 말이 떠올랐다. "나는 한 주라도 설교하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아." 그는 구태의연한 설교가가 아니었다. 다독가에 귀에 쏙쏙 들리게, 설교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그가 강단에서 선포한 말은 한국 교회에 늘 일침이 되며 회자되었다. 모든 사람이 그를 차세대 한국교회를 책임질 멘토라 부르며 추종했다. 일중독은 그를 권력에 정점에 서게 했고, 그게 결국 균형을 무너뜨리고 그를 삼켰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랬기에 그가 처음에 성추행에 대해 인정하고 교회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인간이니까 실수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피해자에게 충분히 사과하고, 노회에서 내린 징계를 제대로 받고 충분히 자숙한다면, 언젠가 다시 재기할 수도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성범죄를 밝히고 징계를 요청한 이들을 무더기로 고소했다. 몇 년도 되기 전에 서울에 다시 교회를 개척했다. 나는 그때 실망했다.
"잘못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벌 받으면 되잖아. 권력만 잡으면 왜 다들 판단을 잃고, 비상식적이 되는 거야?"
남편은 그때도 이렇게 말했다.
"아마 본인은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걸? 권력의 정점에 오르면 '자기가 하는 것 자체가 옳은 일이고 상식'이 되는 거야. 나는 옳은 판단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도자로 세운 것이다~. 그러니 지도자인 나의 생각이 옳고 나를 향한 사람들의 지적질은 바보들이나 하는 생각이 되는 거지."
권력은 그렇게 한 인간을 정점에 올린 뒤에는 그의 귀를 막고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권력을 잡은 이들이 상식적이지 않은 판단을 하고 제멋대로 날뛰어도 본인은 그게 틀린 줄 모른다. 자기가 하는 건 다 옳은 일인 줄 안다.
상식적인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독재자가 되고, 그 똑똑하던 인간들이 정치권에만 들어가면 개가 되는 이유다. 처음엔 자기가 힘을 얻은 것 같지만, 나중엔 권력이 인간을 삼키는 거지. 힘이 일개 인간보다 큰데, 그걸 모르는 것 같다. 권력에 취하고 중독된다. 처음엔 사람이 술을 먹지만, 나중엔 술이 사람을 먹는 것처럼. 권력을 가질만 한 깜냥도 안되는 인간들이 힘을 가지니 결국엔 늘 걸려 넘어지는 것 같다.
권력은 하늘이 잠시 너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그걸 잊는 순간 너는... 순식간에 왕 놀음 하는 광대로 전락하는 거야. 이 오만한 인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