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보수와 이대남이 만나는 지점
"엄마, 엄마, 대체 4인 가족 수입이 얼마 이하여야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아?"
아침 식탁에서 아들이 묻는다.
마침 궁금한 김에 바로 핸드폰을 검색해 보았다. 저소득층의 최저생계지원비는 4인 가족 기준 180여만 원 정도가 되었다. 거칠게 말해 4인 가족의 한 달 수입이 180여만 원이 되지 못하면 그 정도를 나라에서 지원해 준다는 말이다. 물론 전액을 다 받는 경우는 드물다 월소득과 재산과 부양가족 등등 조건을 까다롭게 따져 인정된 금액의 차액만큼만 지급하니까.
"180여 만원 정도쯤 되는 것 같은데? 근데 이게 기준이 워낙 까다로워서..."
좀 더 자세히 좀 설명하려는데, 이번에도 아들의 성토가 더 빨랐다.
"아니, 내가 한 달에 300만 원 정도를 벌잖아. 4인 가족 중에 한 사람만 벌어도 그만큼을 벌잖아. 그럼, 최저생계비 지원받는 집은 가족 중 아무도 일을 안 한다는 거야?
"그러게... 그러니까. 가족이 4명이 같이 산다 해도 그 안에 노인이나 장애인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이라서 직업 없이 놀 수도 있고... 또..."
"가족 중에 하나만 일해도 벌 수 있고, 아님 한두 명이 하루에 서너 시간만 편의점에서 일해도 벌 수 있는 돈을 그냥 공짜로 준다는 게 말이 돼? 나는 주부습진 걸려가면서 8~9시간을 꼬박 서서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버는 돈을. 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으로 낸 세금을 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줘야 돼? 응? 그게 말이 되냐고~."
내 설명을 듣기도 전에 다다다~ 쏘아붙이는 걸 보니, 이번에도 아들은 사실관계가 궁금해서라기보다 할 말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어디서 또 놀고먹는 친구들을 보고 왔나. 워워. 지가 언제부터 또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다고. ㅎㅎ 1년 전만 해도 방구석에서 영영 안 나올까 봐 걱정이었던 아들이었기에, 나는 아들의 이런 성토가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안 그래도 '드센' 여자들한테 밀려 늘 역차별을 입에 달고 사는 요즘 남자애들이다. 거기에다 자신의 지위를 흙수저로 자리매김하며 살다 보니 '공정'에 대해 유독 예민한 촉을 가졌다. 내가 우려하는 건 이렇게 우리 아들이 대표하는 '이대남' 논지가 우리 아버지 세대의 논지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청년 지원, 노인복지,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무상 지원과 복지여왕 논쟁. 나는 무엇이 불편한가. 이들의 논지 뒤에 숨은, 나와 다른 처지와 환경과 또 뜻하지 않게 경쟁에서 밀려나 사회적 약자가 된 이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 없음이 불편하다.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편의가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과 부양으로 가능했다는 사실, 그 이웃의 수고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성공을 어느 한 개인이나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환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편하다.
그런 논리야 말로 자본주의 호황기를 누린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자신의 성취를 오직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착각하게 했던 논리가 아닌가. 아버지들은 경제적 성장을 주도했다는 오직 그 이유로 군부독재를 지지하고 대기업 독점과 특혜를 옹호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논리로 부동산 한 채 없으면서 민주적 가치 운운하는 우리 자식 세대를 은연중 무시하고, 시대착오적 헤게모니와 종북논리를 고수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신기한 건, 아들은 자신이 흙수저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야기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둔감하다는 점이다. 예전에 아들과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쏠리는 공적과 그것이 야기하는 박탈감, 그리고 그것을 부양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생각해 봐. 너는 하루 8시간 일하면서 10여 만원을 받아. 근데 어떤 사람은 똑같이 하루 8시간을 일하면서 1천만 원이 넘게 받아. 아무리 어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또 사람들 간에 능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 갭이 너무 크면 당연히 보통 사람들 사이에 박탈감이 들지 않겠어? 한 사람이 누리는 풍요가 정말 그 한 사람의 노력 덕분이겠냐고. 한 사람의 성공은 그 뒤에 숨은 많은 이들의 조력과 시스템과, 또 민주주의라는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가치를 위해 헌신한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잖아.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일부 개인에게 너무 많은 부가 편중되지 않도록 그걸 세금으로 조정하고 너무 많이 버는 사람과 너무 적게 버는 사람의 갭을 줄여줘야 하는 거지. 그 중재에 진심일수록 우리는 그런 나라를 가리켜 복지 국가라 하는 거고.
하지만 아들은 능력 있는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지나치게 많은 돈을 버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정작 자신과 부모가 흙수저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아들은 그걸 개인의 문제이지, 구조적 문제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노력하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바꿔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돈'을 가진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고 내 통장을 불려주는 '경제' 마인드를 가진 정책이 정의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논리가 똑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