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조 한 쌍을 자택에서 키우려면요

무라카미 씨, 당신을 파티에 초대합니다

by 쏭마담


사람들은 꿈이 실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 말이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참 이상하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잠을 자고 꿈을 꾸는데, 꿈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고, 사람들은 꿈이 실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거다. 정말 그랬다. 나는 꿈을 잘 꾸지 않았다. 어렸을 땐 그것이 유용한 것이 아니어서였고, 지금은 꿈꾸는 법을 잃어버려서다. 그런 내가 요즘 자꾸 꿈을 꾼다.




어젯밤 꿈을 꾸었다.


'나'는 늦깎이 대학생. 마지막 학점 하나를 채우지 못해 캠퍼스 근처 자취방을 전전하는 중이었다. 강의실을 찾지 못하고 학점을 놓치고 유급할 위기에 처하고... 뭔가 때늦은 후회를 하고 쫓기는 그런 꿈은 늘 꾸던 꿈. 그런데 어젯밤 꿈은 좀 달랐다. 기본적인 세팅은 분명 '불안'이어야 하는데, 그 꿈을 관통하는 나의 정조는 '안락'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내가 물속에 깊이 잠겨 있다가 솟구치는 장면이다. 나와보니 그곳은 자취방 한쪽에 있는 수영장. 옷을 입은 채 뛰어든 나는 물에 젖은 옷이 거추장스러워 수영복을 갈아입으러 집으로 들어온다. 집에 들어오니 방 서너 개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진 않지만 방과 거실 역할을 동시에 기능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들이었다. 방과 방 사이는 낮은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게 연결되어 있었고, 벽은 비스듬한 땅의 지형을 이용해 높낮이를 달리하며 자연스럽게 안과 밖을 나누고 있었다. 독립적이면서도 몇 개의 계단을 통해 다른 방으로 넘어갈 수 있는 아기자기함. 에셔의 그림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공간이 참 맘에 들었다. 수영장 반대쪽에는 넓은 거실이 있었는데, 통창 너머로 과수원의 나무들이 보였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사계절이 다 보일 것 같았다. 아, 이쪽 창에는 사과나무가 있으니 봄에 하얀 사과꽃을 볼 수 있겠네. 그럼 저쪽 창에는 물고기처럼 반짝반짝 배를 드러내는 계수나무를 심을까. 가을에 볼 단풍나무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럼 자작나무는...? 그러다 잠이 깼다.


새벽녘. 그 꿈이 참 좋아 깬 채로 한참 동안 눈을 뜨지 않았다. 옆자리를 더듬어 보니 어젯밤 함께 잠든 댕댕이의 부드러운 머리털이 느껴졌다. 내 손길에 몸을 일으킨 그것이 뒤로 몸을 주욱 늘어뜨린 후 하얀 털을 부르르 떠는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보니 어느덧 앞발을 오므리고 그 위에 고개를 얹은 채 나를 말갛게 쳐다보고 있다.


아하, 하루키 때문이었구나. 연말연시 가볍게 집어 든 수필 중에 하루키의 수필이 있었고, 그곳에 샴고양이가 있었고, 내 안 깊은 곳을 잠시 설레게 하는 한 장면이 있었다. '파티는 괴로워'라는 단편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파티란 다 합해서 열 명에서 열다섯 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직한 목소리로 얘기하고, 누구도 명함 교환 따위는 하지 않고, 일 얘기도 하지 않고, 방 저쪽에서는 현악 4중 주단이 모차르트를 단정하게 연주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샴고양이가 소파에서 기분 좋게 자고 있고, 맛있는 피노 누아르를 따고, 밤바다가 보이는 발코니 위로 호박색 반달이 떠오르고, 산들바람은 향기롭고, 실크 시폰 드레스를 입은 지적이고 아름다운 중년 여성이 내게 친절하고 정중하게 타조 사육법을 가르쳐주는-그런 파티다.

"타조 한 쌍을 자택에서 키우려면요, 무라카미 씨, 적어도 500 제곱미터의 부지가 필요해요. 담은 적어도 2미터 정도는 돼야 하고요. 타조는 장수 동물이라 여든 살 넘도록 살 수도 있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점점 우리 집에서도 타조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지. 그런 파티라면 기꺼이 가겠다. 괜찮다면 누가 한번 열어주지 않겠습니까?

(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p.27)


하루키 수필은 모임과 강연과 파티의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어느덧 이런 정도의 파티라면 좋겠다, 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던 나도 점점 우리 집에서도 파티를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타조를 키우는 법을 설명하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중년 여성은 영화 <주키퍼스 와이프>에 나오는 제시카 차스테인을 연상하면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못 보신 분은 한번 시청하셔도~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300여 명을 비밀리에 빼돌려 자신의 동물원에 숨겨준 폴란드 바르샤바 동물원장 부부의 실화를 바탕을 한 영화다) 한쪽으로 넘어올 듯 말 듯 한 단발 웨이브를 한 제시카 차스테인이 우아한 자태로 파티 손님들을 챙기고 있다. 동물에 대한 이야기라면 귀를 쫑긋한 채. 난산한 코끼리 새끼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달려갈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말이다. 물론 파티를 열기 위해 꼭 그녀들처럼 하늘하늘한 시폰 드레스와 동물에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몇 개의 계단만 오르내리면 또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아기자기한 방 몇 개와 은은한 향초, 몇 가지 음식만 준비해도 충분하다.


카나페와 와인과 가벼운 디저트와 음료들. 한쪽에선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한해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묻는다. 오는 길에 눈이 내려 늦었다며 어깨에 묻은 눈을 털고 누군가 현관에 들어서면 먼저 도착한 손님들이 따듯하게 환대한다. 모두 다 아는 사람일 필요도 없을 거다. 조금 멋쩍어하는 싱글들이 있다면 가볍게 서로 소개해줄 수도 있겠지. 그도 아니면 맥주 한 캔을 따라가지고 조용히 한쪽 서재에 들어가 맘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라 읽어도 된다. 다른 한쪽에선 누군가 뒤늦게 배웠다는 피아노로 캐럴 한곡을 소박하게 연주하고, 기타나 색소폰이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간다. 우리 집 댕댕이는 새로운 손님이 올 때마다 거실을 붕붕 날아오르고, 꼬리를 팔랑거리고, 코를 킁킁 대며 애교를 부리겠지. 그렇게 안부를 나누는 일이 조금 무르익고 우리 집 댕댕이가 샴고양이마냥 소파에 앉아 졸기 시작하면 사람들을 가장 큰 거실로 불러 모으는 거다. 누군가 미리 준비해온 종이 한 장을 상의 주머니에서 꺼내 들고, 조금 상기된 얼굴로 시를 낭송한다.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좀 오래된 단편이어도 좋을 것 같다. 서로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내다 판 젊은 부부가 서로의 선물을 확인하는 장면 즈음에선 서로의 눈가가 조금 촉촉해지기도 하겠지. 그렇게 거실 유리창 너머로 소복소복 눈이 쌓이는 밤이면, 한 해를 보내는 일이 그리 서글픈 일이 아니게 될 수도.


크리스마스이브는 늘 특별한 밤이었다. 적어도 아이들이 아직 산타클로스를 믿던 그 시절까지는. 새벽녘 긴가민가 하며 트리 아래 놓은 선물을 뜯어보고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던 너. "엄마, 산타 할아버지는 어떻게 내가 원하는 선물을 이렇게 딱 알고 계실 수 있지?" 그런 너의 들뜬 목소리가 듣고 싶어 며칠 전부터 숨죽여 준비하던 크리스마스. 하지만 둘째 아이까지 산타클로스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 우리는 더 이상 크리스마스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타조 한 쌍을 자택에서 키우려면요, 무라카미 씨..."

오늘부터 꿈꾸어 보려고 한다. 우아한 중년 여성이 되어 파티 초대장을 보내는 꿈. 무라카미 씨, 당신을 파티에 초대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알 게 될 것이다. 왜 이전 몇 해 동안의 크리스마스가 늘 크리스마스 답지 않았는지를. 꿈은 늘 기다리고 준비한 자들에게 특별해지는 것이란 사실을. 오늘부터 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