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밥상
오랜 시간 밥상 기록을 못 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나와 우리 모두가 많이 변화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다니는 동안 밖에서 먹는 음식은 거의 없어지고 모든 끼니와 간식을 집에서 해결하고 있다. 다행히 힘들지 않을 정도로 집밥을 해 먹고, 가끔 포장해온 남에 해준 음식을 먹으며 보내고 있다.
최근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서울에서 벗어나 경기도로 이사를 하면서 직장을 잃고 어린이집도 잃었다(?)
나는 워킹맘 졸업하고, 생산성에 대해 고민하는 전업맘이 되었다. 서울에 많고 많았던, 국공립어린이집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름 모를 민간어린이집이 난무하는 경기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직장을 잃은 김에 '입 짧은 삼식이'와 함께 24시간 함께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침을 먹고 돌아서서 점심이며, 간식을 준비하는 나에게
"엄마 또 밥 먹어요?"라고 묻는 우리 딸.
그래서 최대한 간소하게. 영양가 있게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이마저도 안 먹으면 개빡ㄱ..
간식을 좋아하고, 먹는 양이 적은 우리 딸은 변.비로 고통받고 있다. 유독 힘들어하는 날이면 아침 사과. 를 준비한다. 어떤 날은 사과와 낫또. 어떤 날은 사과와 빵.
유산균은 어릴때부터 유일하게 챙겨 먹이는 영양제(?)이다. 몸 속 유익균이 없는 삶을 알기에..
밑반찬에 자신도 없고, 만들어두니 잔반 처리만 하게 되는 내 모습이 처량하여 끼니때마다 요리를 만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그릇 요리가 많고, 반찬은 3가지를 거의 넘지 않는다. 카레는 즐겨하는 요리 중에 하나인데. 언제부터인가 딸이 카레이 질린 것 같다. 이미 눈치챘지만. 모르는 척 또 만들었다.
보통은 양파를 버터와 기름이 짙은 갈색이 되도록 볶은 다음, 야채와 고기를 넣고 카레를 만들지만 이 날은 야채 볶을 때부터, 토마토를 넣어 토마토 향이 가득한 카레. 뭉글뭉글하게 끓일 때 온전한 토마토도 몇 개 넣어 같이 익혀준다. 역시나. 딸은 안 먹고 나랑 남편만 먹는... 슬픈 사연. 카레는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 내가 참 좋아하는데(...)
비빔국수에는 꼭. 콩나물을 같이 삶아서 넣어준다. 아삭한 씹히는 맛이 좋다. 같은 계열로 보면 쫄면에도 무조건 콩나물. 분식집에서 쫄면 시켰는데, 콩나물이 있다면! 거긴 맛집. (ㅋㅋㅋ)
점심시간이 지나 어중간한 날에는 국수를 먹는다. 나는 고춧가루와 고추장. 그리고 고추기름을 한두 방울 뿌려 매콤하게 비비고, 딸은 간장과 참기름. 설탕으로 맛을 냈다. 토마토 고명과 낫또를 곁들여 먹으니 든든하니 좋다.
대도록이면 제철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 제철 음식이 주는 힘이 고스란히 몸에 전해지길 바라며, 3월이 되자마자 냉이를 구입했다. 냉이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비타민 그리고 무기질이 많아 기력 회복에 좋다고 한다. 겨울 내내 웅크렸던 잎이 피어나듯 기지개를 켜고 냉이 솥밥, 냉이 된장찌개를 먹었다.
향이 강하면 딸이 먹지 않을 것 같아. 작게 다지고 당근과 버섯을 넣어 씹는 맛을 더했다. 별도의 간장은 따로 만들지 않고, 밥 지을 때 참기름과 간장만 조금 더했다.
시래기는 겨울에 사다 두고, 삶아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반찬 없을 때 하나씩 꺼내 솥밥을 해먹기도 하고 된장국을 끓이기도 한다.
원래는 고춧가루, 고추장을 넣은 고깃집 스타일 된장찌개를 좋아했는데. 딸이랑 같이 먹으려 된장국에 가까운 찌개를 주로 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싱겁고, 자극적이지 않아 어색했지만. 어떤 재료를 넣는 냐에 따라 맛이 달리지고, 부드러운 된장찌개에 푹 빠졌다.
떡볶이를 좋아하지만, 4세 어린이 딸과 함께 먹기 위해 짜장 떡볶이를 자주 해 먹었다. 춘장만 있으면 일반 고추장 떡볶이보다 더 쉽다. 양파와 고기를 볶고 춘장을 넣어 물로 농도를 맞춰 준다. 전분물이 없어도, 떡과 어묵이 들어가기 때문에 괜찮다. 손님이 오는 날에는 해산물도 넣어 좀 더 있어 보이게 만들 수 도 있다. 마지막에 채 썬 깻잎으로 고명 올리고, 고춧가루 톡톡 뿌려주면. 그럴싸한 집들이 메뉴가 된다.
밀떡이 맛있지만 설날에 뽑아둔 가래떡으로 만들어보니 쫄깃하니 씹는 맛이 좋다.
마트에서 2,000원대 춘장 하나 사다 두고, 종종 해먹은 짜장 떡볶이. 덕분에 냉동실 가래떡 텅텅비워준다.
무쇠솥을 구매한 뒤에는 솥밥을 자주 했다. 볶음밥보다 기름기 없는 깔끔하고, 고슬고슬한 맛이 있어서 좋다. 가장 쉽고 자주 해 먹은 솥밥은 가지 밥과 콩나물밥. 가지는 좀 크게 썰어서 넣으면 씹는 맛이 있어 좋을 테지만, 딸이 있어 작게 썰었다. 밥이 완성되고 나면 가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그래도 가지를 먹였다는 뿌듯함에. 때때로 해 먹는다. 보통은 가지를 크게 썰고, 다진 고기를 넣지만. 가지가 작은 대신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씹는 맛을 더했다.
우리 집 무쇠솥은 물기 마를 날이 없다. 찜닭도 해 먹고, 전골도 끓여 먹고.
찜닭은 파는 것만큼 까무잡잡하게 나오지 않아서 망했나? 했지만, 맛은 간간하게 잘 되었다. 역시 파는 찜닭에는 엄청난 비법이 있거나, 색소를 쓰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찜닭에는 고구마와 당근을 넣어 달큰한 맛을 더한다. 그리고 당면은 넣을 수 있는 한 가장 많이 넣는다.
미리 넣으면 국물이 다 먹어버리니. 미리 불려둔 당면을 먹기 직전에 넣는다. 당면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먹기 직전에 넣어도, 국물의 짭쪼롬함을 한껏 머금고 있으니 말이다.
배추가 제철인 김장철에는 알배기 배추로 전골이며, 배추전, 배추 볶음밥 등등 골고루 다양하게 먹었다
특히 배추와 버섯, 한살림 어묵을 넣은 전골은 온 마음을 녹인다.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메뉴 중에 하나.
밀폐유나베의 비쥬얼을 선호하는건 아니지만 금방 숨이 죽는 배추를 많이 넣기에 좋은 방법인거 같다.
마치 이불장에 겨울 이불을 우겨 넣듯, 냄비에 넣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배추와 고기를 켜켜이 접어 넣는다.
코로나_19가 온 세상을 위협하는 어려운 시기에. 좋은 식재료로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는 건 어쩌면 나를 위로하는 행위이다. 음식이 주는 힘을 믿으니까. 때로는 남이 해주는 음식이 먹고 싶어 포장을 해온다. 이상하게 배달보다는 직접가서 포장해오는 것이 좋다. 음식이 식기 전에. 차에 음식 냄새가 베기기 전에! 얼른 가서 먹고 싶은 마음을 배달기사에게 뺏기기 싫다. ㅋㅋ
나는 입 짧은 삼식이를 위해 오늘도 냉장고를 들락 거려 본다. 모두의 식탁이 행복하길 바라며. 코로나-19가 얼른 끝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