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4차 산업혁명 중심국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독일이 4차 산업혁명 중심국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사람 중심의 규제, '자동화'와 '플랫폼' 투자 이끌어
글. 한덕희 독일 레인지인터내셔널
Idea in Brief
인더스트리 4.0과 첨단 자동화 설비들. 독일은 4차 산업혁명이 가장 빠르게 발전한 나라로 평가 받는다. 왜일까. 친환경 정책과 EU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계획 때문일까. 거시적인 계획은 말 그대로 ‘거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 안에는 수많은 ‘미시적인’ 무엇인가가 있다. 독일의 4차 산업혁명은 ‘사람을 위한’ 규제가 촉발했다. 사람 중심의 규제는 기업의 시스템 개발과 R&D를 강제했다. 4차 산업혁명은 한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을 외치는 한국 정부가 참고할 것이 있지는 않을까.
독일은 4차 산업혁명이 가장 빠르게 발전한 나라로 평가 받는다. 그 시작은 EU에서 시작한 호라이즌2020(Horizon 2020) 프로젝트부터라고 한다. 호라이즌2020이란 네트워크 기반 연구개발 7대 과제를 선정하여 사람과 사물의 연결을 대비한 인프라 구축과 액션플랜 수립을 목표로 지난 2009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다. 유럽물류 경쟁력을 강화하여 세계시장에서 무역과 산업 발전을 도모한다는 대전제가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폭 절감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독일의 4차 산업혁명 발전이 이런 거대한 계획으로 인한 것일까. 거시적인 계획은 말 그대로 거대한 느낌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독일 현지에서 기업을 운영하면서 필자가 느끼고 있는 것은 ‘미시적인’ 영역이다. 미시적인 영역에서는 거대한 그 느낌이 시시각각 ‘실행’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독일에서 찾을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단초도 이 ‘실행’,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있다.
독일은 EU 국가 중에서도 물류비가 비싼 나라로 평가 받는다. 특히 내륙운송수단의 비용은 다른 국가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5배 가까이 비싸다. 이렇게 물류비가 비싼 이유는 정부의 법적규제로 화물 운전자들의 권리가 철저하게 보장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규제 안에서 물류비용을 효율적으로 절감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독일에서 화물트럭 운전기사는 법적으로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운행이 금지돼있다. 운전자가 4시간 이상 운전할 경우, 한 시간 이상의 휴식시간은 의무다. 여기에 더해 이 휴식시간의 장소에 대한 규제가 더해진다고 한다. 지금까지 화물 트럭운전기사들은 휴식시간을 대부분 ‘차 안’에서 보냈으나, 휴식장소를 차 안이 아닌 ‘정식 숙박시설’을 이용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한다는 내용이다.
운전기사의 보수지급의 투명성을 만드는 법안도 논의되고 있다. 여기에는 누구든지 동일 직무를 수행한 자라면 동등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즉, 운전자의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운전자에 대한 비용을 정확하게 산출하여 원가를 반영하겠다는 독일정부의 의지다.
때문에 향후 독일의 물류비용은 더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에서는 2018년 하반기부터 독일 고속도로에서 화물트럭이 지불하는 통행료가 올라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화주는 당연히 통행료 인상정책(정확히 말하면 그에 따른 물류비 인상)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런 마찰을 풀어나가는 것은 물류업체의 몫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더 비싸지는 물류비는 당연히 제조업체의 원가 상승에 기여할 것이다.
이커머스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주문량 증가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택배 물량이 크게 늘어난다는 것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 독일 업체들은 오래 전부터 ‘플랫폼’ 구축에 집중했다. 사람이 직접 관여해야 하는 일을 최소화시키고, 물류시스템 발전을 도모했다. 비싼 인건비가 몰고 온 변화다.
독일 업체들은 한국과는 달리 ‘고객’ 중심으로 시장에 접근하지 않는다. 효율적인 물류망에 초점을 맞춘 후 모든 프로세스를 ‘사람’에 맞춰 시스템을 개선시키는데 집중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란 사람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영역과 사람이 없어도 기계를 통한 ‘효율화’로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을 구분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자동화’라 부르는 그것이다.
때문에 창고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설비투자’, 그리고 자동피킹 등 ‘시스템’에 대한 투자는 최소한 독일에서는 이커머스가 발전하기 이전부터 꾸준히 진행돼왔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 최대의 쇼핑몰 중 하나인 잘란도(zalando)다. 잘란도 창고(warehouse)의 하루 평균 물동량은 10,000 박스라고 한다. 주문 물량은 모두 자동 피킹된다. 모든 상품은 ‘각자의 바코드’를 가지고 있고, 주문과 동시에 해당 제품은 1.4m/s 속도로 빠르게 분리해주는 자동분류 라인에 올라가게 된다.
잘란도의 자동분류 시스템은 개개인의 주문 상품을 매우 적은 오차율로 분류한다고 한다. 잘란도가 취급하는 상품은 대부분 패션상품으로, 다양한 종류의 사이즈, 형태를 갖고 있어 피킹이 까다로운 상품에 속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굉장하다. 이 시스템은 1초에 140개의 바코드를 읽을 수 있으며, 소팅이 완료된 재고는 자동으로 고객 수요에 맞춰 공급처에 발주하기도 한다. 즉, 주문관리부터 피킹, 패킹, 재고, 발주관리까지 전 과정이 ‘자동화’되고 있다.
잘란도의 자동화는 값비싼 인건비를 ‘솔루션’이 대체하여 경쟁력을 갖춘 사례라 볼 수 있다. 이처럼 노동력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한 환경은 또 다른 사업영역을 창출한다. 피킹, 패킹, 창고관리를 지원해주는 솔루션 회사들의 숫자는 자연히 증가하고, 독일 이커머스 기업들의 물류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 선순환이다.
잘란도의 자동화 시스템
비단 잘란도 하나뿐만이 아니다. 독일에는 여타 국가에 비해 ‘기술’에 대한 투자를 한 업체들이 특히 많다. 그렇게 등장한 솔루션 기업 중 하나로 ‘비아스토어(viastore systems)’가 있다. 비아스토어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피킹, 패킹 솔루션을 제공한다. 독일 시장에서 많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선택하고 있는 솔루션 중 하나다.
비아스토어의 자동재고 보관시스템(사진 왼쪽)과 피킹 시스템(사진 오른쪽)
독일 최대 슈퍼마켓 체인 중 하나인 ‘레베그룹(REWE)’은 일찌감치 사물인터넷 기술을 적용하여 물류관리 비용을 최대 30%까지 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최근 사물인터넷 기술을 적용하여 독일 각 지역에 있는 슈퍼마켓 거점을 기반으로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했다. 이는 소단위 자체 물류망을 이용하여 효율화를 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 받고 있으며, 물류 서비스에 대한 가격 책정과 상품수요 기반 주문예측 또한 가능하다.
레베그룹이 진출한 쇼핑몰
최근 독일 자동차 업체인 다임러 AG로부터 1,720만 달러를 투자받은 에스토니아 로봇 스타트업 스타쉽(Starwest Technologies)은 상품을 배달과 수거 완료까지의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아직은 직원이 동행할 때에만 작동 가능한 문제점이 있지만 이를 더욱 보완하기 위해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전기를 사용하고 있기에 친환경적인 배달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렇듯 무자비한 개발과 에너지 낭비가 아닌 장점을 강화하며 문제점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독일 기업들의 모습은 우리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왜 독일기업들은 사람이 아닌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을까.
독일 기업은 회계적으로 굉장히 투명한 관리를 강제 받는다. 투명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규제’가 많다는 것이다. 한 예로 정식고용이 아닌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시간당 최소 9.3유로(약 12,000원)의 시급을 지급해야 한다. 최저시급이 끝이 아니다. 이 지급 수당은 한 달에 450유로(약 59만 5,000원)가 넘을 수 없다. 역으로 계산해보면 기업은 한 달 동안 ‘48시간’만 아르바이트 인력을 사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시키고자 하는 독일 정부의 복안이다. 허나 기업 입장에서는 원가 상승을 일으키는 요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독일은 기업이 이익을 냈을 때 이익금에 대한 세금 추징(주별로 다르지만 평균 30% 이상) 또한 높다.
노동환경에 대한 규제와 높은 법인세는 자연스럽게 기업의 인프라 투자와 R&D로 이어졌다. 기업 입장에선 세금을 낼 바엔 차라리 ‘시스템’에 투자를 하겠다는 의지가 생기게 된 것이다. 결국, 독일의 발달한 물류 시스템의 중심에는 사람 중심으로 제정한 ‘규제’가 있었다.
법으로 기준을 세우고 법으로 시스템을 만들어 나간다. 이러한 환경이 지금 독일의 ‘4차 산업혁명’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을 외치는 한국 정부. 독일에서 조금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