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쩌면, 추억 이야기
오래된 건물이 늘어선 거리에 동네 주민이 아니라면 찾기 힘든 장소에 위치한 작은 책방이 있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여럿 지나면 나오는 조그만 책방은 하루에 손님이 대여섯 올까 말까 할 정도로 조용하다. 누군가에겐 작고 낡은 책방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추억이 담긴 가장 소중한 장소이다.
[이 이야기는 책방이 선물해 준 그리움이자 추억이다.]
그 사람은 하루도 빠짐없이 책방을 들르던 손님이었다. 몇 사람 살지 않은 한적한 동네인지라 책방을 찾아주는 얼굴은 다 외울 정도로 단골손님들만 방문을 해 주는 장소였기에 처음 몇 차례 동안은 그녀에 관해서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매번 흰 티를 입고 와 다른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밝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책방에 들어오면 인사를 했고 천천히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다가 돌아갔다. 워낙에 작은 책방이기에 자신이 찾는 책이 없을 것을 인지하고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었기에 보통은 나에게 찾는 책의 유무에 관해 물어보거나 포기하고 다른 책을 읽기로 마음먹어버리기 일쑤였지만 그녀는 인사를 제외하고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일방적인 인사말이 아닌 대화를 하게 되었던 날은 비가 왔다는 점을 제외하고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은 길고양이들을 위해 책방 문을 슬쩍 열어놓곤 한다. 그럼 종종 문틈으로 들어와 잠을 청하고 사라진다. 빗소리가 유난히 거센 날이었다. 잠귀가 밝은 나로서는 도저히 깨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 뛰어가면 별로 비를 맞지도 않을 거리에 있는 책방이지만 우산을 챙겨 들고 새벽 1시쯤 책방으로 향했다. 비바람에 책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한달음에 달려간 책방 앞에 새하얀 털에 검은 점박이 무늬의 옷을 입은 고양이 한 마리가 비를 피해 졸고 있었다.
- 왜 안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에 앉아 있어.
고양이가 놀라지 않도록 나지막이 속삭인 후에 우산을 책방 문 옆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개의 책장과 소파 하나... 음?”
소파 위에 고양이라기엔 거대한 실루엣이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조심스럽게 카운터 옆에 위치한 스위치를 더듬더듬 찾아내서 불을 켰다. 익숙한 얼굴이 소파에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새벽에 고양이가 아닌 다른 손님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던 탓에 자리에 얼어붙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그녀의 옷이 젖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얀 셔츠가 비를 맞아 은은하게 그녀의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민망함에 시선이 갈 곳을 잃었다. 카운터에서 담요를 가져왔다. 민망함에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을 모른 채 할 정도로 인류애가 말라버린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를 덮어 주고 의자를 끌어와 앞에 앉았다. 의자 소리가 조금 컸던 탓인지 밝아진 조명 탓인지 그녀가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일으켰다. 빛에 적응해 고개를 들자 눈을 마주쳤다. 그러지 않아도 큰 눈이 더 커졌다. 표정을 보니 그마저 남아있던 잠도 달아나버린 모양이다.
- 아... 저기... 죄송합니다. 생각나는 곳이 여기밖에 없어서...
그녀는 내가 비 오는 날 책방 문을 열어 놓으리라고 알고 있지 않았나 싶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횡설수설하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소파에서 일어나 실례했다며 고개를 숙이는 그녀를 겨우 진정시켰다.
- 아뇨. 괜찮아요. 아침이면 비가 그친다고 했으니 그때 가셔도 돼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졌고 후에 고개를 들었다. 담요를 끌어안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 불 꺼드릴까요?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한 마디를 던지곤 불을 끄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났다.
- 혹시... 이 책 읽어보셨나요?
그녀는 고개를 들고 언제부터인지 품에 끌어안고 있던 책을 내밀며 말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책을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방에 들어오는 책은 모두 본인의 취향이 담겨있었기에 나의 눈을 거치지 않은 책이 없었다. 나지막이 감상평을 묻는 그녀의 물음에 당황했다. 좋아하는 책만 들여오기는 하나 수많은 책의 내용이 전부 머릿속에 남아 있을 리는 없었다.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을 더듬어 책의 내용을 찾아 이내 목을 가다듬고 답했다.
- 남자 주인공의 짝사랑 이야기 맞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말을 이었다.
- 주인공의 변화를 무의식이 계속해서 나타내는 부분이 특이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론 신기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끌어당기는 힘이 강했던 거 같네요.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중 하나라 다행이라며 속으로 하는 안도와 함께 말을 끝마쳤다. 대답을 들은 그녀는 서글픈 눈을 하고 책을 내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 제가 쓴 책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다른 작가님들처럼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많은 감정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쉽지 않네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속에 차오르는 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끝내 그녀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뺨을 적셨다. 나를 보며 서럽게 우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려다 이내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렸다. 대신 흘러내린 담요를 그녀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