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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ckuism Apr 23. 2018

나는 취준생이다.

상반기 취업시장, 나는 내가 원하는 취업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욕심을 내며 한 번 더 도전해 보고자, 잠시 시간을 가지며 큰 회사를 준비해보고자 했다. 어느새 2달가까이 지나고, 졸업식이 되었다.


요즘은 취업이 되지 않으면 졸업을 미룬다. 졸업 요건을 일부러 제출하지 않거나, 휴학을 하는 식이다. 주변에도 이런 식으로 졸업을 늦추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당시 내 눈에는 조금 비겁해보였고, 굳이 그럴필요까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나는 그런 공백기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취업 때문에 졸업을 미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졸업 신청을 했다. 졸업 조건은 이미 다 갖춰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금방 승인이 되었다. 


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 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는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뜻이고, 거자필반(去者必返)은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또 다른 인연이 온다는 뜻이다. 비단 사람 관계에서뿐만이 아니라, 인생에서의 기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난 항상 어떤 과정의 끝을 참 좋아했다. 내가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항상 어떤 과정의 끝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염두해두고 살았다. 알바를 그만 둘 때도 다음에는 어떤 다른 알바를 해볼지, 아니면 새로운 목표를 세워 공부를 해볼지, 다른 일들을 할 지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근래 몇 년 동안은 새로운 한 해에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 너무 기대되었고, 그런 기대에 부풀어 힘든 일정도 소화하며 긍정적으로 내 자신을 가꿔왔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는 좀 달랐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았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을 놔주어야했던 연애도 그러했고, 내가 하고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도전했던 취업도 그러했다. 예전에 철학 공부를 하면서 불교를 참 좋아했다. 나의 종교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의 많은 일들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을 항상 나에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깐 감정에 휩싸이다가도 이내 다시 내려놓고 평정심을 찾곤 했다. 지금은 불교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일까? 자꾸 감정에 휩싸인다. 그런데 이 감정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다. 자꾸 나쁜 생각들이 내 마음을 좀 먹는다.


나는 지금까지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았고 그런 나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좋아했다. 그런데 그 끝에 서 있는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보다 늦은 졸업때문에 같이 웃고 떠들며 졸업 할 동기가 없었고, 다른 선택을 하면서 살았기에 후배들과 많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졸업식 날, 후배들끼리 오순도순모여 사진을 찍고 있는 곳에 비집고 들어가 그들의 기쁨을 나와의 어색함으로 바꾸기 싫었다. 하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이 앞에서 환하게 웃고 계셨기에, 내 우울함과 비참함을 보여드릴 수 없었다. 속은 그렇지 않은데, 부모님을 위해 사진을 찍으며 웃고 또 웃었다. 지나가는 후배들에게도 인사하며 기쁜 듯이 웃어보였다.


그날 하루 종일 괴리감이 들었다. 마치 기분이 안 좋아도 웃어야만 하는 서비스업 일을 하던 때 처럼 '과연 지금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내가 진짜 '나'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작은 내 자신을 어디에서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 나를 감쌌다.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 있고 싶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내 우울함을 숨기기도 싫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억지 웃음을 짓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그냥 지금의 내 우울함과 비참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좌절감에 빠져있고 싶었다. 그리고, 그 좌절감에 푹 빠졌다가 다시 나와 내 자신을 찾고 싶었다. 그 때의 좌절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나를 채찍질하고, 다독이고 싶었다.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곳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브런치를 찾았다. 누군가는 보겠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는 보지 않을 이곳에 내 감정을 남기고 싶었다. 


몇 년에 한 번씩, 가끔은 이렇게 우울하고 힘들 때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나는 항상 멈춰서 내 주위를 둘러봤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힘든 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힘들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우두커니 서서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 누군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누군지 둘러봤다. 


먼저 가족. 내가 나쁜 생각이나 극단적인 선택 자체를 생각하지 않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나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준다. 힘들다고 하면 마음으로 느끼며 받아주는 나의 소중한 가족.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다. 우리 가족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이런 감정 속에서도 한 발 한 발 내딛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으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행복이고 축복이다. 만약 이런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그리고 친구. 나는 대인관계가 나쁘지 않은 편이고,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던 편이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힘들 때 남는 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농담을 던지며 주고 받는 동네 친구들이더라. 힘들다고 하면 소주 한잔 하자고 나와주는 그런 친구들에게만 내 속내를 털어놓게 되더라. 매일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진심으로 내 감정을 공감해주며 내 얘기를 들어준다. 너무 고맙고 또 고맙다. 그리고 앞으로 이 친구들이 힘든 일이 있다고 하면 내가 꼭 옆에 있어주겠노라 다짐한다.


지금 힘든 내 곁을 지켜주는 애인은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 내 미래를 같이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거꾸로 나는 과연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었는지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외로움을 느끼는 건,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되어보는 것. 그것도 필요한 것 같다. 취준생이 되어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진짜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내 주위를 둘러보며 내 감정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다. 우울하고, 힘든 걸 감추는 것이 능사는 아니더라. 오히려 그냥 표현하고 털어놓으며, 내 감정에 솔직한 것이 나를 위한 길이더라. 사실 이미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도 그 감정이 사그라드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그 감정이 무뎌질 때까지 나를 다독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석가모니 같은 성인(聖人)이 아니라 그냥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니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힘들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모르겠고, 지금 내 길이 옳은 길인지를 모르겠다. 그래도 이 우울함을 다 짊어지고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보려고 한다. 한 발 한 발 걷다보면, 이 어둠 속에서 내 자신을 찾게 해줄 빛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 빛줄기 속에서 행복해 할 내 자신을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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