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어느 봄, 혼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생각했다. 사람들 앞에서 다시 노래하고 싶다고. '하고 싶으면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팀을 꾸렸고 이후로 반년 간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것이 2019년 이었으니 공연을 한 지 4년 만이었다. 그렇게 긴 공백 끝에 무대의 막이 올랐고, 그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공연은 금방 끝이 났다.
뒤풀이 자리에서 동료들과 술잔을 부딪혔다. '이건 이랬고 저건 저랬지'라며 공연에 대한 평가와 아쉬운 마음들을 쏟아내다 결국은 '잘 끝냈으니 되었다'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잘 끝낸 만큼 후련하고 시원한 마음이었으면 좋으련만.. 뭔지 모르게 스멀스멀 찾아오는 묵직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옆사람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곳에 있다 와서 인지 집안을 가득 채운 고요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자다 일어난 고양이가 다가와 몸통을 비비적거렸다. 한참 털을 쓰다듬다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나왔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5시.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저 공연이 하고 싶어서 사람들을 모았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5년도 더 전에 각자가 스무 살 무렵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인연들이었다. 그들은 '같이 공연하자'는 나의 제안에 두말 않고 함께 하겠노라 답해주었다. 그렇게 20명이 넘는 이들이 모여 팀을 꾸리고, 곡 리스트를 뽑고, 세션들이 함께 모여 6개월 간 합주를 했다.
단순히 음악이 좋고, 서로가 좋아서. 그 좋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공연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좋아서 하는 공연'이라 붙이고 그저 좋은 마음으로 준비했다. 그러나 공연이 다가올수록 멋진 무대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 맘 편히 즐길 수 없었다. 동료들은 좋자고 시작한 공연을 즐기지 못하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 듯했다.
공연을 향한 마음의 크기
지난 반년 간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6곡만이 담겨있었다. 똑같은 노래를 1000번 가까이 듣고 200번도 넘게 불렀다. 노래 속에 담긴 의미를 찾고, 영어 가사 한절 한절에 숨은 뜻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나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을 넘어 관객에게 그 곡에 담긴 의미와 감정까지 전달하고 싶었다.
공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잘할 수 있을까, 실수하면 안 되는데, 누구 하나 코로나에 걸려서 공연을 못 올리면 어떻게 하지...' 공연 일주일 전부터 하루 8시간씩 운동에 매달리며 몸을 혹사시켰지만 매일 늦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밤마다 공연을 망치는 악몽을 꾸고, 하루종일 머릿속으로 공연을 수천번도 넘게 돌려봤다.
공연 전날 밤 오프닝 멘트를 적기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나는 이 공연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시작한 이 공연을, 우리가 좋아해서 부른 당신들과 함께 즐기고 싶다는 말이 하고싶었다. 간단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진심을 꾹꾹 눌러담아가며 공연 당일 아침 눈을 떠서부터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수십 번도 넘게 되뇌고 또 되뇌었다.
행복과 공허 그 사이 어딘가
무대에 올라 홀로 수백 개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를 보러 온 이들의 애정이 담긴 눈빛을 받는 것은 가슴 뛰게 '벅찬 일'이기도 했다. 무사히 2시간 30분 간의 공연을 마치고 내려와 나를 찾아온 이들을 마주하니 그간의 고생이 모두 잊혀지는 것 같았다.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속 내 표정에서 내가 느끼는 행복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사진 속 나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해 하고 있는지.
공연 후 집에 돌아오자 그 행복이 있던 자리에 허무와 공허가 찾아왔다. 허무함은 무언가에 최선을 다한 뒤에 맛보았던 류의 것이었고, 공허감은 함께 있다 혼자가 되었을 때 종종 느껴봤던 감정이었다. 홀가분하고 만족스러워야 할 지금, 이토록 마음이 가라앉는 이유가 뭘까. 나는 나를 찾아온 이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한참 동안 그 감정에 가만히 머물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관객으로 불러 모으고,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며 공연을 준비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 답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애정 어린 눈빛, 네가 최고다 정말 잘했다는 말들, 그들의 선물과 포옹까지. 내가 그들로부터 받은 모든 것들이 모여 나를 가치 있고 괜찮은 사람이라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혼자가 된 순간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꽤 괜찮게 느껴졌던 나 자신조차도 덩달아 희미해져 버리는 듯했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변함없이 같은 나인데, 외부의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나 자신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도, 방구석에 홀로 앉은 나도, 나 자신에게는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라는 걸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대 위에서 바라본 그들과 그들이 바라본 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내가, 사랑하는 나에게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무언가 대단한 성취를 해내지 못하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지 않나?', '타인의 인정과 환호가 당장 눈앞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지금껏 받아온 사랑들로 이미 차고 넘치게 충분히 행복한 거 아닌가?' 나는 머릿속에 피어나는 여러 가지 질문들 속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나의 마음을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스스로 채울 수 있다면 더 이상 공허하지 않을 것 같았다. 타인은 말 그대로 타인이기에 언젠가 나를 떠날 수밖에 없지만, 나는 언제 어디서든 나와 함께 해 줄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계속해서 나를 안정시키고 충만하게 채워줄 사랑은 다른 어느 누군가로부터가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지난 4년은 내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상실했던 시간이었다. 노래를 지우고, 사람을 비우고, 나를 잃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통해 나는 4년 간 잃었던 것들을 모두 되찾은 기분이다. 공연 덕분에 사랑해 마지않는 노래를 원 없이 불렀고, 나를 사랑해 주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났으며, 그 덕에 조금 더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좋아서 하는 일들은 항상 그랬듯 내게 좋은 것들을 가져다준다.
기꺼이 불행을 마주할 용기
아침부터 정신없이 울리는 벨소리에 눈을 떴다. 직장에서 온 전화였다. 학교에서 일이 터졌고 학부모가 나를 찾는다고 했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대며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연락하겠노라 양해를 구한 뒤 급히 전화를 끊었다. 목이 부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온몸은 밤새 두들겨 맞은 듯 욱씬거렸다. 아무래도 그간 무리를 한 탓에 몸이 단단히 고장 난 것 같았다.
정신차릴 새도 없이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 큰일이 생겼다고 했다.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지만 울고 있는 그녀를 달래며 담담한 척했다. 원치 않는 삶의 변화가 시작되리라는 예감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한숨을 내쉬며 폰을 확인했다. 한 친구로부터 장문의 카톡이 와있었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올라왔지만 쉬이 답 할 수 없었다. 나는 쉴새없이 몰아치는 상황들 속에서 몇 번이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절망과 자조를 머금고 중얼댔을 것이다. '그래.. 그럼 그렇지. 어쩐지 행복하다 했어. 이래야 내 인생답지'라고.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참 낯설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올라왔다. '그래.. 이만큼 행복했으면 됐지. 이제 이 정도의 불행은 받아들여야지' 하고. 다가올 불행이 두려워 현재의 행복조차 밀어내던 내가, 현재의 불행을 기꺼이 맞이하게 된 것은 어쩌면 어제 경험한 아주 큰 행복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행복 심리학자가 말했다.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그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만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것을 행복이라 정의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살아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으며, 대신 삶에서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을 행복으로 정하고 그것들을 계속해서 경험해야 그 행복을 연료 삼아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전에 나는 대단히 행복해지기 위해 살았다. 그러나 행복은 언제나 먼 곳에 있었고, 잡힐 듯 왔다가 다시 또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래서 과거의 나는 도저히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계속해서 크고 작은 행복들을 누리고 있다. 행복은 여전히 자주 나를 찾아왔다 떠나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원하면 언제든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살면서 지금껏 경험한 크고 작은 행복들 덕분일까? 지금껏 충분히 행복했으니 이제는 나의 불행들을 기꺼이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마음이 단단해진 만큼 앞으로 삶에서 찾아올 행복 뿐만 아니라 불행마저 두 팔 벌려 맞이 해볼까 한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도, 삶에서 누리게 될 행복도. 이번 공연을 통해 얻게 된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젠 그 모든 것들이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