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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영잉 Feb 16. 2024

부라노 섬 같이 가실 동행 구합니다

내일 당장이요!

부라노 섬에 가기 전날 밤. 문득, 혼자 가기엔 아쉬운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찍는 대로 인생샷이 나온다던대...'

배낭여행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어가도록 동행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부라노 섬이라면 경우가 달랐다.


부라노 섬은 베네치아의 여러 섬들 중 하나인데, 숙소가 있는 본섬과 더불어 무라노 섬과 함께 유명한 섬 탑3 안에 든다. 물론 본섬에도 많은 볼거리가 있고, 베네치안 글래스의 산지인 무라노섬도 충분히 좋아 보였지만, 부라노 섬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재밌는 풍경을 가진 섬이었다. 

곤돌라가 떠다니는 좁은 물길 양 옆으로 파스텔 팔레트를 세워놓은 것 같은 알록달록한 집들이 늘어섰다. 도시가 '귀엽다'라고 느끼긴 처음이었다. 




유럽 여행객 명불허전 커뮤니티, 유랑 카페에 가입했다. 

'동행을 구해볼까..?'


새내기 게시판에 '안녕하세요!' 한 마디로 가입 승인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동행 게시판을 기웃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동행을 구하는지 일종의 양식을 파악한 후, 짧고 간결한 첫 게시물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자구요. 동행에 성별은 상관없지만 여성분이시면 더 좋아요! 저는 본섬에 숙소가 있습니다! 부라노섬에서 예쁜 사진 서로 찍어주실 분 쪽지 주세요!'


한 분이 바로 댓글을 남겼다.

'카톡 000으로 연락 부탁드려요ㅠ'


속으로 생각했다. '왜 우시지?'

자기 전에 카톡을 주고받으며 내일 아침 부라노로 가는 배를 함께 예약했다.



배에서 만난 내 동행은 7살이 더 많은 수줍음 많은 언니였다. 어쩌다 보니 혼자 여행을 오게 됐고, 부라노 섬 동행을 급하게 구하던 찰나에 내 동행 모집 글이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했다. 

"우리 오늘 같이 재밌게 여행해요 언니!"



아침 배로 도착한 부라노 섬은 아직 흐렸다. 아침 햇빛이 구름을 쫓아낼 만큼의 힘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텔 색의 집들은 상상과 다를 것 없이 귀엽고 재밌는 풍경을 만들었다.


안갯속 색색의 집들을 보니 미리 찾아봤던 부라노 섬의 역사가 생각났다. 옛날 이 섬사람들의 직종은 대부분 어업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고기잡이를 하고 집에 들어올 때면, 자욱한 안개에 집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집집마다 눈에 잘 띄는 색의 페인트를 칠해, 집으로 잘 돌아올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다 보니, 안개가 걷히고 집의 색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인생샷을 남겨주겠다는 일념하에 서로의 휴대폰을 바꿔 들고 다녔다.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부라노 섬에는 딱히 맛집이랄 음식점은 없었기에 우리는 아무 가게를 골라 들어갔다. 

"여기 이탈리아잖아~"


정말 그랬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특별할 것 없는 파스타 피자 메뉴도 감칠맛이 남달랐다. 역시 이탈리아였다.  





섬을 산책하며 많이 가까워진 우리는, 본섬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본격적인 수다가 시작됐다. 언니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의 에피소드들을 풀어내는데,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언니의 표정도 다이나믹하게 변했다. 

"민영아 지금 너랑 같이 기차를 타고 온 것 같아!"


특히, 시베리아 횡단 열차 같은 칸에서 함께 했던 북한 아저씨들과 헤어지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카페 동행 모집 게시물에, 카톡으로 연락 달라며 울던 언니의 댓글이 떠올랐다. 참 귀여운 언니다.



본섬에 도착한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며 서로의 남은 여행을 응원했다.

낯선 사람과의 동행에 걱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언니를 만나, 부라노 섬에서 좋은 기억만 담아갈 수 있게 됐고, 마음에 드는 사진도 꽤 많이 생겼다. 나도 언니의 즐거운 하루에 조금이라도 일조했길 바라본다. 

함께 했기에 더 다채로웠던 부라노섬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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