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았지만, 함께 책임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한 집에 살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아이들을 키우고,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직감했다.
나는 이 집에서 철저히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신혼 시절, 우리는 각자 벌어 각자 관리하는 부부였다.
그 방식이 합리적이라 믿었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삶의 구조가 바뀌었다.
나는 일을 멈추고 양육을 맡았고, 생활비는 남편이 담당했다.
주어진 금액으로 보험료와 통신비, 식비와 육아용품을 해결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우리의 배는 그럭저럭 순항하는 듯했다.
균열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폐업했고, 그는 출근해야 할 시간에 주식 모니터를 마주하기 시작했다.
수입은 들쑥날쑥해졌고, 생활비 입금은 점점 불규칙해졌다.
어떤 달은 줄어들었고, 어떤 달은 아예 건너뛰었다.
미리 상황이 공유되거나 대안이 함께 제시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부족한 액수가 아니었다.
앞날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공백을 당연하게 내가 메워야 한다는 공기였다.
"앞으로는 생활비를 못 줄 것 같아."
그의 담담한 선언에 나는 그저 "응, 알겠어"라고 답했다.
충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당장 눈앞의 생존이 더 급했다.
나는 그 길로 돌이 갓 지난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세상으로 나갔다.
당장 내 몸을 써서 구할 수 있는 건 식당 일뿐이었다.
그 사이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점점 달라졌다.
나는 매일매일 '생존 모드'로 움직였고, 그는 그런 내게 왜 웃지 않느냐고 물었다.
문제의 본질은 생활비의 공백이었으나, 대화는 자꾸만 내 표정과 말투로 흘러갔다.
그때 알았다.
'같이' 산다는 것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라는 걸.
같은 지붕 아래 있어도 각자의 책임과 불안을 따로 짊어지고 있다면,
그건 이미 각자 사는 삶이라는 걸 말이다.
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은 설명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과, 감당하지 않기로 한 것을 선명하게 구분하기 시작했다.
'한 집에 살면서 각자 살았다'는 이 문장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화살이 아니다.
내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정확히 기록하기 위한 좌표다.
이 글은 결론이 아니다.
이 지점까지 오게 된 경로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
그리고 이 기록은 다시는 같은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
내가 나에게 남기는 최소한의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