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있었고, 생활비는 없었다

공백을 메운 사람과, 공백을 설명한 사람

by 산다

생활비가 불규칙해진 뒤부터 우리 집에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하나 생겼다.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는 해결해야 하고, 누군가는 설명하면 된다는 규칙이었다.

나는 해결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는 설명하는 사람이 되었다.


생활비가 줄어들거나 끊겼을 때 미리 상의가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이번 달은 어렵다”는 말은 대개 카드 결제일이 다가와서야 나왔다.

나는 그 공백을 메웠다. 대출을 알아봤고, 리볼빙을 신청했고, 낮에 일하고 저녁에도 일했다.


그는 상황을 설명했다. 주식이 잘 안 풀렸다는 이야기, 대출 상환이 많다는 이야기,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 이상하게도 설명은 늘 충분했지만 대책은 늘 다음으로 미뤄졌다.


가장 힘들었던 건 돈의 크기가 아니었다. ‘왜 이 상황이 당연해졌는지’였다.


생활비가 끊긴 상태에서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말은 없었고, 내가 일을 시작하고 한참 뒤에야 “나도 밤에 일해보려고 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말 뿐이었다. 내가 저녁에도 일을 시작 한 후에야 “네가 저녁에 일해서 내가 못 나가게 되었다”는 말로 돌아왔다.

그때 알았다. 이건 협력이 아니라 책임의 이동이라는 걸.


나는 점점 말을 줄였다. 설명해도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행동으로 메웠다.


왜 말투가 차갑느냐, 왜 다정하지 않느냐, 그마저도 줄어든 대화에서도 문제는 생활비대신 계속해서 내 태도로 흘렀다. 마침내 언성이 높아지고 “그래서 네가 한 게 뭐가 있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나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이미 내 명의로 대출을 받아 상환을 도와주었고, 이미 일도 하고 있었고, 부족한 달은 어차피 내가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처럼 들렸다. 이 사람에게 나는 같이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그때 처음 명확히 느꼈다.


그는 집안일도 했고, 아이들도 잘 돌봤다. 스스로 좋은 아빠, 좋은 가장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가장의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였다.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공백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였다.


이후로 나는 조용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설명을 멈췄고, 기대를 접었고, 감정을 아꼈다.

사랑이 끝난 게 아니라 의지가 먼저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가장은 있었다. 하지만 생활비는 없었다.

그리고 그 공백을 누가 메웠는지는 지금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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