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진단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패턴’을 읽는 눈
어떤 팀이든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으려 한다. 성과가 떨어지면, 누가 책임을 지지 않았는지, 누가 실수를 했는지, 어디에서 문제가 터졌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해결책은 대개 해당 원인을 제거하거나, 규칙을 만들거나, 책임자를 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방식은 익숙하고, 이해도 쉽다.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 발전시켜 온 인과론적(因果論的) 접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조직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문제를 유발한 사람이 자리를 옮겨도, 매뉴얼을 바꾸고 시스템을 고쳐도, 몇 개월 지나면 다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7번째 사업부장 – 세라믹 사업부의 이야기(2)
기존의 사업 아이템이 성숙기에 접어 들자 회사에서는 향후 사업구조 개선을 위해 3개의 신규사업을 벌였다. 가장 규모가 컸던 세라믹 패키지 사업부는 5년 내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7명의사업부장이 경질되고 새로 부임했다. 사업부장은 각기 전공분야를 갖고 있다. 흔히 회사 내에서 ‘OO통’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다. ‘재무통’, ‘구매통’, 기획통’ 심지어는 ‘일본통’도 있었다. 한 마디로 그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관리자라고 볼 수 있다.
통상 사업부 업무 전반을 숙지하고, 문제점을 파악하는데 최소한 2~3개월이 걸린다. 이 기간이 끝나면 사업부장은 자신 만의 주특기를 발휘한다. 제조현장을 송두리째 바꾸는가 하면, 스텝부서를 들들 볶기도 한다. 원칙과 규율 같은 것을 만들어 시스템 변혁을 시도하기도 한다. 직원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또 시작이군…”
기실 현장의 업무 프로세스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모든 직원들은 원래 하던 대로 일을 열심히 할 뿐, 사업부의 적자개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사업부장의 일련의 조치들은 오히려 실무를 더 번거롭게 만들고 있다며 푸념만 늘어 놓는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철저하지 못한 사업기획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사업개발의 주축이었던 연구소 멤버들로만 구성된 프로젝트팀 - 그 이후 신규사업에서는 재무, 영업인력도 초기 프로젝트에 포함되었다. - 이 기술제휴선을 찾는 과정에서 제품의 트렌드 변화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면밀한 시장 및 수요조사를 하지 못한 채 기술연수에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사업 초년도부터 사업을 최종 철수하기까지 6년간 *Dotting M/C 의 평균 가동률이 5%가 채 되지 않았다. 이미 변화하고 있는 제품 추세를 고려하지 않은 기술도입과 설비구매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사업부는 인원감축, 경비절감 등의 강도 높은 자구책을 강구했지만 결국 6년여 만에 사업 철수를 결정하고 말았다.
문제는 ‘원인’이 아니라, ‘패턴’에 있다. 체계론적 관점에서 문제를 보면, 그것은 ‘누가 뭘 잘못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관계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가’의 문제다.
• A와 B는 항상 같은 주제로 충돌하고,
• 보고 라인은 있지만 소통은 뒤에서 일어나며,
• 팀장은 외부 회의에서 모든 의사결정을 끝낸 뒤 구성원에게 통보만 한다.
이런 흐름은 어느 한 사람의 성격이나 리더십 스타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스템 내에서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관계의 규칙’이 작동한 결과다. 이것을 볼 수 있어야 조직 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언급할 수 있다.
리더가 체계론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상고시대는 ‘미신의 시대’다. 무당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시대였고, 모든 판단의 근거는 경전이었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라고 말한다. 소위 ‘과학적’이라는 것은 **DEFC적 해결 방식을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며 비즈니스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과학적 접근에도 한계에 봉착했다. 지금은 복잡계(Complex Adaptive System)의 시대이다. KTX의 고장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과론적인 어프로치를 하는 이유는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인과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모델이다. 그러나 조직에서 여전히 인과론만 답습한다면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
나는 시스템에 영향을 받고,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체계론적 시선에서 중요한 사실은, 나 자신도 이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이다. 단순히 "저 사람이 문제야"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시스템을 ‘내 바깥에 있는 것’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 내가 말하는 방식,
• 내가 피드백을 주는 방식,
• 내가 회의에서 눈을 피하는 행동 하나까지도,
모두 시스템의 흐름에 영향을 받고,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자각이 없다면, 우리는 계속 ‘바깥’을 고치려 하면서 ‘안’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강화하게 된다.
진단보다 더 중요한 것 : 조직의 역학을 보는 눈
많은 조직에서 진단을 한다. 직무진단, 조직문화 설문, MBTI나 에니어그램, 리더십 스타일 분석 등등. 하지만 이 진단은 ‘상태’를 보여줄 뿐, ‘흐름’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진단의 결과는 멋지게 요약된 보고서로 돌아오지만, 그 보고서가 말해주지 않는 것이 있다. 그 보고서가 만들어질 때, 그 조직에서는 어떤 대화가 오갔고, 어떤 침묵이 있었고, 어떤 갈등이 숨겨졌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조직의 문제를 진단하려면, 문서보다도 ‘관계의 움직임’, ‘역할의 배치’, ‘권한의 사용 방식’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조직의 역학’을 보는 눈이며, 이 눈이 있을 때 표면 아래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흔히 기업 조직에서는 여러 가지 진단을 실시하곤 한다. 대개는 시스템에 대한 진단이며, 취약점 혹은 일종의 문제점을 찾아 내기 위해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인과론적인 접근법이다.
버크만(Birkman)이나 DISC진단도 통상적으로 구성원 개개인에 대해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버크만의 Team Grid 나 Extended DISC의 Shotgun Map 들을 보면 구성원들간의 역동을 읽을 수 있다. 단순히 ‘문제’를 파악해서 개선하려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흐름을 알고, 적절한 방향으로 ‘흐르게’하는 전략을 구사할 때 조직은 더욱 건강해 질 수 있을 것이다.
* Dotting M/C : 세라믹 패키지에 IC회로 접착을 위해 금속화(Metalizing)하는 공정의 설비
** DEFC : Define(정의) – Explain(설명) – Forecast(예측) -Control(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