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마지막 퇴근길
1. 가방은 가벼워졌으나 마음은 무거웠다.
33년이란 시간 다녀온 직장을 그만두는 마지막 출근길, 마음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았다. 퇴직을 한 달 앞두었을 때도, 일주일 전 마지막 업무를 정리할 때도 하루 전인 어제도 그냥 담담했었다. 3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짊어지고 온 ‘공무원’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옷. 이제는 그 낡고 빳빳한 외투를 벗어던질 수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시원함. 그것이 내가 느낄 감정의 전부라고 믿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은 그렇게 훌쩍 다가와 나의 마음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었다.
사무실 책상 위, 내 손때와 세월이 묻은 펜과 다이어리를 하나둘 상자에 담기 시작했을 때였다. 33년이 넘는 기간, 일수로 치면 12,000일이 넘는 그 거대한 세월이 고작 종이 상자 한 개에 다 들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이상한 허전함에 사로잡혔다.
“이게… 정말 다인가?”
"내가 지금까지 의지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왜 이렇게 허전한 거지?"
짐을 옮기던 나는 잠시 손길을 멈췄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짐을 덜어낼수록 몸은 가벼워지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찬 바람이 휑하게 새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시원섭섭하다는 상투적인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이 생소한 무게감 같은 걸 뭘까. 분명 개운해야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지탱해 온 ‘정체성’과의 이별 때문이었을 것이다. 매일 아침 나를 깨우던 알람 소리, 나를 증명해 주던 작은 명함,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던 사무실의 긴장감. 그것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오롯이 ‘나’라는 벌거숭이 사람뿐이었다.
사실 나의 33년은 단순히 ‘출퇴근’의 반복이 아니었다. 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공공기관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요구를 우선시해야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특히 민원인을 대하는 일은 내게 말을 할 수 없는 침묵 수행(修行)과도 같았다.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며 억지로라도 지어 보였던 미소, 상대의 무례한 화를 묵묵히 받아내던 인내, 그리고 나의 상활과 관계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친절해야 한다.’라는 강박. 이런 것들 때문에 항상 나로 살기보다는 공공의 이익과 서비스와 인내 속에 참아냄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살도록 강요받고 살아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그 강박은 어느덧 내 심장을 타고 흘러 온몸의 혈관 구석구석을 채웠고, 딱딱한 뼛속까지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은 업무 매뉴얼이 아니라, 내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살아내고자 하는 생존 본능이었다. 친절은 나의 가장 신뢰받는 옷이었고, 가장 안전한 가면이었으며, 때로는 나를 지키는 유일한 갑옷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사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 그 빳빳하게 굳어있던 ‘친절의 갑옷’이 일순간에 해체되는 기분이 들었다. 혈관을 흐르던 긴장감이 빠져나가고, 뼈 마디마디를 누르던 책임감이 증발하는 느낌. 그것은 기대했던 개운함이라기보다 차라리 나의 존재가 사라진 느낌처럼 비워냄이었다. 33년 동안 나를 정의하고 지탱해온 가장 큰 퍼즐 조각이 떨어져 나갔기에, 그때 비로소 내가 얼마나 무거운 것을 들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깃털처럼 가벼워야 했다.
사무실 문을 닫고 나오며 마지막으로 내가 속해 있던 곳을 돌아 보았다. 33년 전, 서툴렀지만 열정이 있었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사회 초년생의 젊은 내가 그곳에 서 있었다.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그리고 33년을 버텨온 지금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고생했어. 이제 우리, 진짜 너의 원하는 길을 가보자.”
그날의 퇴근길은 평소보다 유독 길게 느껴졌다. 발걸음은 여전히 묵직했고, 아직 다하지 못한 마음의 부채가 그 상자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는 조금씩 확신했다. 이 허전함은 무언가 끝나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빈자리’라는 그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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