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한쪽, 정년퇴직과 함께 받은 33년 근속 공로패가 놓여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성실함 하나로 버텨온 훈장이다. 하지만 퇴직 후 맞이한 첫 아침,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공로패가 아니라 책상 위에 놓인 요양보호사 문제집이었다. 33년의 경력은 박수와 함께 과거가 되었고, 당장 내 앞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차가운 현실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퇴직 후 내게 닥친 여러 상황은 나를 가만히 쉬게 두지 않았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경제적 문제였다. 공직에서의 경험은 명예로웠으나, 그것이 은퇴 후의 수익을 즉각적으로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나는 막연한 기대를 버리고 가장 현실적인 길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이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가장 수요가 확실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빠르게 현업에 뛰어들 수 있는 ‘생존의 도구’였기 때문이다.
도전은 치열했다. 낮에는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온종일 이론과 실기 수업을 들었고, 해가 저물면 다시 자리를 옮겨 실버인지 활동 지도사 과정을 이수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틈틈이 온라인을 통해 병원 동행사 자격증 공부까지 병행했다. 33년 동안 행정 업무를 보던 머리를 다시 깨워 새로운 전문 지식을 집어넣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 공부는 단순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나를 지탱해준 것은 오현호 작가와 함께한 ‘굳이 프로젝트’였다. 매일 주어지는 작은 미션들을 수행하며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굳이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들 때마다, 함께하는 동기들과 미션을 공유하며 이겨냈다. 혼자였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정이었지만, 함께하는 이들의 존재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젊은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했던 습관은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방대한 요양보호사 이론 내용은 낯설었지만, 문장을 읽고 핵심을 파악하는 일은 내게 즐거운 놀이와도 같았다. 강사님은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력이 탁월하다며 수업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33년 동안 ‘관리자’나 ‘공무원’으로 불리던 내가, 강의실에서 “우등생”이라는 칭찬을 들으며 만점대상자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묘한 쾌감이었다. 그 작은 칭찬 한마디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책상 앞에 앉게 만드는 비타민이 되었다.
이론 교육을 마친 후 이어진 2주간의 실습은 이론보다 훨씬 더 묵직한 가르침을 주었다. 요양원과 주간 보호센터, 그리고 실제 가정을 방문하며 마주한 현장은 ‘돌봄’의 무게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타인의 생을 돌본다는 것, 누군가의 마지막 계절에 동행한다는 것의 숭고함을 몸소 체험했다. 기저귀를 갈고, 거동을 돕고, 식사를 챙겨드리는 모든 과정이 처음에는 낯설고 몸은 힘이 들었지만, 실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묘한 뿌듯함이 차올랐다.
마침내 시험장에 들어섰을 때, 나는 33년 전 임용시험을 치르던 그때보다 더 간절했다. 그리고 당당히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내 손에 쥐어진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얇은 종이 한 장에 불과했지만, 내게는 그 어떤 훈장보다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 자격증은 누군가 내게 부여한 직급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자립의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직장을 다니며 취득했던 여러 자격증이 ‘조직 내에서의 역량’을 위한 것이었다면,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사회 속에서의 생존’을 위한 첫 번째 갑옷이었다. 초고령사회의 파도 속에서 이 자격증은 내가 언제든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33년의 세월을 견딘 훈장은 서랍 속에 소중히 보관하기로 했다. 대신 나는 오늘, 파일 속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새로 딴 자격증을 꽂는다. 이것이 바로 60세의 내가 다시 시작할 용기이자, 나를 지켜줄 가장 값진 첫 번째 무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