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여자가 20대 남자에게 말 거는 법 5

10일에 도착한 곳에 9일에 묵다(?)

by 리영

뿌듯한 마음으로 비행기와 숙소 예약증을 프린트해서 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7월9일 인천 공항에서 오후 8시에 출발하는데, 같은 날 벨기에 브뤼셀에 숙소 예약을 해 놓은 거다. 처음에는 그게 왜 이상해, 벨기에는 우리나라보다 시간이 늦잖아 하고 생각했다. 늦은 시차+비행기 타는 시간, 해서 밤늦게 도착하나보네. 그런데 도착이 오전 8시 10분이다. 오잉? 이건 아무리 시차 때문이라도 지구를 거꾸로 돌리지 않는 한 불가능한데.

비행기 예약을 찬찬히 봤다. Departure 09 July 20:00, Arrival 10 July 08:10. 그럼 그렇지 9일 출발, 10일 도착이네. 아니 그럼 그렇지, 할 때가 아니었다. 10일에 도착하는데 어떻게 9일에 숙소에 묵어?

성수기에 요금을 아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환불 불가’non-refundable 상품을 구입하는 거다, 비행기든 숙박이든. 고심이는 둘 모두를 그렇게 해버렸다. 20프로, 많게는 50프로까지 할인 받을 수 있었다. 고심이네는 남는 게 시간이라 예약 상황에 어떻게든 맞출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10일에 도착한 곳에 9일에 묵을 능력(?)이 없으면, 비행기나 숙박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골고루 짠다고 짰는데도 브뤼셀은 하룻밤밖에 묵지 못하는 스케줄이었다. 크루즈 탑승이 2번 있는 바람에 이동 시간이 길어져서 그렇다. 브뤼셀의 하룻밤을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비행기 표를 포기해야 하는가.

혹시 몰라서 비행기 표의 변경을 시도해 보았다. 취소가 아니라 날짜 변경이니 같은 항공사 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을 안고서. 웬걸 변경이 가능하단다.(반가움) 변경 수수료가 원래 값의 3/4이 넘는단다.(놀라움) 안 된다는 말과 뭐가 다르지.(의아) 또 혹시 몰라서, 밑져야 본전이지 하는 마음으로 브뤼셀 숙소에 어필해 보았다. 정중하게 ‘규정상 취소가 안 된다‘고 했다. 밑졌다. (환불불가가 이렇게나 무섭답니다.)

결국 브뤼셀 숙소를 포기하기로 했다. 비행기 표는 3장이지만 숙소는 1개니까. 가격 면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나니까. 브뤼셀이라는 작은 도시를 반쯤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럼 왜 고심이는 애초 예약을 잘못했을까. 스카이스캐너Skyscanner로 다시 들어가 봤다. 출발지 인천/도착지 브뤼셀/편도/출발일 7월 9일,을 입력했다. 고심이가 예약한 항공편을 찾아냈다.

‘오후 8:00 (ICN)-->오전 8:10 (BRU)’

앞의 것은 출발 시간이니 당연히 7월 9일일 테고, 뒤의 것은 도착 시간인데 어디에도 날짜가 안 나와 있었다. 그럼 보통 같은 날짜로 알지 않나. 뭐지? 하며 바라보다가 ‘오전 8:10’의 오른쪽 위, 작게 ‘+1’이라는 숫자가 있는 걸 발견했다. 아주 작게, 약 올리듯 가느다란 글씨체로 쓰인. 오전 8시 10분에 도착하는 건 맞는데 +1일 후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10일.

허탈했다. 왜 그때는 안 보이고 지금은 보이냔 말이다. 예약 초반이라 긴장해서 그랬던 걸까. 폰트 디자이너가 이런 일을 겪어 보면 저 글자가 커질 수 있을까, 아니면 시간 표시 앞에 날짜라도 명확히 넣어 줄 수 있을까?


여행도 하기 전에 숙박비용을 시원히 날린 고심이가, 오늘은 유로화가 조금 올랐네, 120 덴마크 크로네면 얼마야? 하며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고개를 들면 밖이 희부얘지곤 했다. 가로등인가 하고 내다보면 동이 트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때 자리에 누워도 쉬 잠이 오질 않았다. 여행은 준비 단계에서부터 설레는 거라더니 정말 가슴이 두근거렸다, 걱정이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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