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왕립미술관은 고전미술관(Old Masters Museum)과 마그리트 미술관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벨기에의 옛 화가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데, 16세기 화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의 작품은 본 적이 있다. 다른 옛날 그림들처럼 경직돼 있지 않고 자유롭고 친근했던 느낌이 있어서다.
역사적 사건이나 권력자를 많이 그리던 시대에 브뤼겔은 서민의 생활을 그렸다. 사회 비판이 숨어 있긴 하지만 영리하게 그린 덕인지, 그림은 주로 귀엽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계절 속에서 살아가는 농민의 모습이 많았는데, 어떤 인물도 강조하지 않고 모두 조그맣게 그렸다. 어디서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듯 화폭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니, 마치 벨기에판 ‘월리를 찾아라’ 같았다. 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과 동작들이 생생해서 다들, ‘땡’ 하고 외치면 바로 ‘얼음’에서 풀려나 움직일 것만 같았다.
“와, 짜식들 재미있게 노네,”
큰통수가, 어른들 일하는 틈새로 팽이를 치고 썰매를 타는 아이들을 보며 웃었다.(*1)
어릴 때 큰통수도 한 놀이하는 아이였다. 동네 친구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 놀았는데, 잘 논다고 신문에도 나왔다. 오징어놀이,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16세기 벨기에 농촌 그림에서 비슷한 아이들을 만나니, 고심이도 반가웠다.
물론 이들은 거칠고 힘든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림에서나마 따뜻한 한때를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참 바라보았다.
연결 통로를 따라 르네 마그리트 관으로 갔다.
“어 파이프다! 이 작가가 그 작가였어?”
큰통수가 파이프 그림을 보더니 ‘가가 가가?’하는 경상도 밈처럼 말했다. 고심이도 유명한 파이프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색연필 톤으로 그려진 게 조금 달랐다.
Ceci n’est pas une pipe
파이프 아래 글귀를 보자 큰통수가 구글이를 불렀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엥?”
파이프가 아니라는 말을 파이프 바로 밑에 정성들여 써 놓았네. 고심이도 의아했다.
“어 파이프 또 있다.”
고심이가 다른 쪽에서 파이프 그림을 찾아냈다. 이번엔 흑백 스케치 톤이다.
Ceci continue de ne pas être une pipe.
“이것은 계속해서 파이프가 아니다? 아 장난하나, 그럼 뭔데.”
큰통수는 약이 오른 얼굴이었다.
“무슨 홍길동의 파이프냐고.”
“그러게. 파이프를 파이프라 부르지 못하고...”
고심이도 허탈하게 낄낄거렸다.
첫 번째 그림에는 <선율과 노래 The Tune and also The Words>, 두번째에는 <이미지의 배신 The Treachery of Images>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파이프가 직접, 나는 파이프가 아니다, 라고 노래하는 건가?”
“생긴 것만 파이프고 사실은 파이프가 아니니, 그림이 우리를 배신했다?”
둘이 머리를 맞댔지만 뾰족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시침이를 불렀다. 대체 파이프가 파이프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벨기에)가 말했단다.
파이프인 줄 알았슈? 저걸로 담배 피울 수 있슈? 연기 나유? 저건 걍 파이프의 이미지일 뿐이유. 물감덩어리일 뿐이라구유. 말이나 이미지를 너무 믿지 마슈. 거기 집착하믄 진짜배기를 못 봐유.
마그리트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스페인)와 함께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란다.
초현실주의라... 현실을 초월한다?,라기보다는 눈으로 보는 현실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못 보는 ‘그 너머’까지가 현실의 잃어버린 반쪽이다, 그러니 보이는 것만 보면서 뻔하게 살지 말자...
할 말이 많은 화가였다. 화가라기보다는 철학자에 가까운 것 같았다. 실제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자주 인터뷰도 하고 글도 썼단다.
모든 그림들이 특이했다. 사물과 인물은 아주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배치가 남달랐다. 전혀 엉뚱한 자리에 두거나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끼리 짝을 지워놓았다. 나무 안에 큰 공이 들어 있거나, 거북이가 공중을 떠다니거나, 거실에 거대한 손가락이 세워져 있었다. 새의 몸을 깃털 대신 구름으로 채웠고, 깜깜한 밤 풍경을 환한 낮 하늘과 연결해 놓았다. 묘하고 낯선 기분이 들었다.
그림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고심이와 달리 큰통수는 보는 둥 마는 둥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톡이 왔다.
‘예술의 언덕에서 쉬고 있을게. 천천히 나와.’
고심이는 머리로 이해하면서 가슴으로 인내(?)하면서 작품들을 보다가 짜증이 밀려왔다. 아 그림이란 게 맘 좀 편하게 해주고 위로도 해 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계속 사람 긴장시키고 불편하게만 하네. 좋고 싫고를 떠나 아주 피곤혀. 결국 고심이도 나머지 그림들을 빠르게 훑어보고 미술관을 나왔다.
어쩌면 마그리트의 그림은 앞뒤 따져가며 이해하는 머리로가 아니라. 순간적인 느낌으로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인스타 감성처럼. 가볍고 생뚱맞고 이상하면서도 재미있는 것들...그리고 그에 열광하는 댓글과 좋아요처럼.
<금지된 문학 Forbidden Literature, (La Lecture défendue)>
-아니 거실에 누가 엄지척 박아놨냐고 ㅋㅋㅋ
-흐미... 잠은 다 잤네
-계단 끝이 벽이라니, 출구 없는 내 처지 같아요ㅜ
<예상치 못한 대답 The Unexpected Answer (La Réponse imprévue)>
-이 문, 열린 거예요, 안 열린 거예요?
-이런 게 ‘문’제적 작품인가요?
-나도 내 방 문 뚫은 적 있다. 그랬더니 아예 문짝을 떼버리더라ㅜ
<뜻밖의 행운 The stroke of luck (La Bonne Fortune)>
-세련된 양복에 돼지 얼굴이라... 진정한 믹스매치네요
-이거 퍼가도 돼요? 우리 사장님 프사로 딱이네ㅋ
<귀환 The Return (Le Retour)>
-속이 탁 트여요! 새랑 같이 날아가고 싶어요
-낮을 품은 밤... 신비로워요
-와 색감... 바탕화면으로 퍼갑니다
탁 트인 예술의 언덕(Hill of The Arts) 광장에 큰통수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이래.”
고심이가 앉자마자 큰통수가 툭 말했다.
“뭐가?”
“그렇게 엉뚱한 데 배치하는 거. 낯설게 보라고, 궁금해하라고.”
“그런...거였어?”
“엄만 그림 별로였어?”
“난 뭔가 뒤죽박죽인 거 같아서 불편했어.”
“난 그래서 좋던데. 앞뒤 안 맞아서, 뻔하지 않아서.”
“아...”
후루룩 보고 나가는 것 같더니 의외로 그림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고심이는 내내 사물들이 제자리를 못 찾고 있는 것 같아 불편했다. 어색한 곳에 놓인 사물들을 죄다 자연스러운 자리로 돌려놓고 싶었다. 그때마다 그림이, 왜 나를 바꾸려고 해, 너가 틀렸다는 생각은 안해? 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고심이가 제자리라고 생각한 것은 제자리가 아니었던 건지, 애초에 제자리라는 것 자체가 없는 건지, 평온하게 잘 살고 있는데 덜컥 시비가 걸린 기분이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고심이는 지금 이대로의 세상 배치가 편하다. 다시 뒤집어지고 파헤져지는 게 싫다. 그 차이일까. 큰통수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으니, 지금이 고정되는 게 싫을 수도 있겠다. 쌓아놓은 게 별로 없어서 다시 새 판이 짜지길 기다릴 수도 있겠다.
“난 어른들 그런 게 싫어. 자기네들 다 가져놓고 우리보고 뭔가를 하래. 젊은놈들이 왜 무기력하게 있냐고. 아무것도 없었을 때 뭔가를 해내는 건 쉬웠겠지. 뭐라도 하면 뭐가 됐으니까. 근데 다 만들어진 세상에서 깝쳐봤자 표시라도 나겠냐고.”
어떤 말 끝이었는지 큰통수가 불만을 터뜨린 적이 있다. 그때 고심이가 어떻게 대꾸했더라.
“너만 그래? 다들 그렇게 살아. 시대가 바뀌면 그 시대에 적응해서 살아간다고. 제대로 노력이나 해보고 그런 소릴 해.”
참 후졌다, 대답.
세상의 주인이 우리,라는 시건방지고 오만한 인식이 필요한 세대에게, 그 오만함으로 뭐라도 깝쳐보고 싶어하는 세대에게, 상황 탓 하지 말고 작은 거부터 하나씩 쌓아가라는 말,
급 떨어진다.
“아 덥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갑자기 후덥지근함이 몰려와 고심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좋지.”
큰통수도 카메라를 챙겨 일어났다.
큰통수는 초콜릿의 나라니까 당연히 초코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한다고 했고, 고심이는 어디서나 기본맛에 충실해야지 하며 바닐라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와, 달지 않고 음청 깊어. 씁쓸하기도 하고.”
“그러네. 달진 않은데 음청 부드럽다. 벨기에, 아이스크림 맛집이네.”
달지 않은 걸 좋아하는 면에서는 둘이 통했다.
“근데 이거... 아이스크림 아니다.(쿵)”
큰통수가 장난스레 말했다.
“아이스크림 아니지, 구원이지.(짝) 어쨌든 시원해서 좋다!”
고심이가 받았다.
“시원한 게 아니라니까.(쿵)”
“어머 그러네. 앗 뜨거!(짝)”
낄낄낄. 마그리트에서 벗어나니 마그리트가 편해지는 걸까. 이런 B급 해석이 필요한 건 아니겠지만, 뭐 고정관념을 깨보겠다는 태도는 갸륵한 거 아닌가.
크고 작은 굴곡은 있었지만 마그리트는 예술가치고는 평범하게 산 것 같다. 젊을 때 직업도 가져봤고 첫사랑과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가정을 유지했으며 당대에 화가로서 성공도 했다.
하지만 고심이는 중절모를 쓴 마그리트가 의심스럽다. 어릴 때, 스스로 죽음을 택한 어머니를 지켜봐야 했고, 무엇보다 세계대전을 통과해야 했다. 단정한 모습과 규칙적인 작업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할 순 있어도, 그가 말했듯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다. 진짜 그는 현실이 아니라 그림 속으로 숨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상실감과 침묵, 고통과 허무의 마음들이 여러가지 사물의 모습으로 그림 속에 배치돼버렸는지도 모른다. 중절모와 신사복과 담배파이프는 그를 나타내는 시그니처가 아니라 그를 가장 잘 감추는 장치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너가 데페이즈망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어.”
고심이는 마그리트의 삶을 생각하던 끝에 생뚱맞게 큰통수의 방을 떠올렸다.
“이유?”
“너무나 익숙해서 그런 거 아냐?”
“익숙?”
“네 방 말야. 데페이즈망 기법 그 자체잖아. 신던 양말은 책상 위에, 책들은 방바닥에... ”
가방들은 왜 죄다 침대 위에 올라가 있는 건지, 세탁바구니에 감자칩이 봉지째 들어 있는 건 또 뭔지.
깨끗하고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큰통수의 방을 떠올리는 건 유쾌하지 않았지만, 그걸로 잔소리할 생각은 없었다. 정리정돈과 데페이즈망이 붙으면 정리정돈이 질 게 뻔하니까. 어쩌면 곧 고심이도 전자렌지에 리모컨을 넣으며 데페이즈망에 합류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다만 마그리트 그림을 가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상업 광고나 영화에도 그의 그림이 주는 영향이 꽤 크다고 하던데.
“아 그렇게 생각해 주신단 말이지. 그렇다면야 앞으로도 죽 그 기법으로...”
큰통수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고심이를 쳐다보았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먹는 음식은 아닌 것 같다. 어차피 한 번 들어온 이 녀석들은 이상해서 머릿속에서 쉬 나가지 않을 테니, 떠오를 때마다 곱씹으며 소화해 봐야겠다.
언젠가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 화면 가득 비처럼 내린다는 풍경과(*2),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로를 포옹하는 사람들과(*3), 캄캄한 밤 위로 환한 낮 하늘이 떠 있는 저택(*4)도 직접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미 마음이 기운 건가. 그러고 보니 마그리트, 나쁜 남자 스타일이네. 예측할 수 없지. 불친절하지. 궁금해서 찾아보게 만들지. 그러다 점점 스며들게 되는... 나쁜 남자, 아니 나쁜 화가 맞네.
*1.<베들레헴의 인구 조사 The Numbering at Bethlehem>
*2.<골콩드 Golconda>
*3.<연인들 The Lovers>
*4.<빛의 제국 The Empire of Light> 브뤼셀 소장품이지만 고심이가 갔을 때는 없었다. 다른 곳을 여행하는 중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