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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훈 Dec 31. 2023

00년생 김라경

여자야구 불모지에서 던지는 희망의 공


  “솔직하게 현실적으로 말해주세요. 여자야구팀을 꾸려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중계할 생각이에요. 이거 될 것 같아요?”

  “라경아, 미안한데 나라도 안 볼 것 같아.”


  21년도 여름, 운동장에서 우연히 라경을 만났다. 1년 반만에 만난 라경과 근황을 공유하던 중, 라경이 갑자기 물었다. "여학생들은 마땅히 야구할 곳이 없다, 사람들이 여자야구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자기같이 고생하는 후배가 없었으면 한다, 그래서 여자 학생 야구팀을 만들어 유튜브로 경기를 생중계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성공하겠냐, 솔직하게 말해달라.” 나는 그녀의 예상보다 더 가감 없이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조차도 안 볼 것 같다, 경기력이 좋지 못해서 재미도 없다, 프로야구 시청률도 낮은데 여자 사회인야구는 더더욱 안 볼 것이다, 사람들은 ‘여자야구’나 ‘후배들’이 아닌 ‘김라경’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래서 결국 너의 선한 의도와는 ‘김라경과 아이들’이 될 것이다”. 

  라경이 반문했다, “여자 V-리그는 성공한 편 아닌가”. 나도 말했다, “여자배구에서 이슈가 되는 선수는 보통 외모가 빼어나거나 극소수의 슈퍼스타라고 생각한다. 네이버 댓글창에 성희롱이 얼마나 많은지 너도 알지 않은가, 반면 김연경 선수의 페네르바체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느냐, 나는 네가 악플에 고통받을 것이 매우 걱정된다.” 라경의 표정이 굳었다. 나의 대답들은 조금 모질었던 듯하다. 라경은 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말하며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해 9월, 라경은 서울대학교 스포츠경영학회 동아리, 28만 유튜버 ‘프로동네야구 PDB’, 그리고 야구를 사랑하는 중고등학교 여학생들과 함께 여자야구팀 ‘JDB(Just Do Baseball)’를 창단했다. 나의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들은 남성 사회인야구팀과 대결하여 1승 6패를 기록했지만, 이들의 아름다운 도전에 JDB의 경기 하이라이트 클립은 매 경기마다 평균 20만 조회수 상회했다. 여성에 대한 무시성 발언이나 성희롱성 댓글 대신 응원의 댓글들이 가득했다. 그녀들의 도전은 스포츠 기사란을 꽉 채웠다. 그리고 22년 5월, 라경의 얼굴은 “한국 여자야구를 이끄는 인물”로서 세계야구소프트볼총연맹 아시아 공식홈페이지의 메인을 장식하였다. 하지만 그해 라경이 부각될수록 라경의 후배들은 잊혀갔다. 응원의 초점은 ‘김라경과 후배들’이었고, WBSC의 메인과 나이키 광고모델은 JDB가 아닌 ‘김라경’ 한 명이었으며, 라경이 일본 실업리그로 진출하자 JDB는 사라졌다. 결국 라경이 이끌었던 22년도의 여자야구는 한 명의 슈퍼스타에 의지했던 ‘김라경과 아이들’이었으며, ‘모두의 운동장’은 환상에 불과했다. 씁쓸한 현실이었다.

  시속 115km를 던지는 여고생, 여자야구 국가대표 에이스로 이미 소문이 자자했던 라경임에도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국가대표 에이스일지라도 훗날 운동을 계속 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한국에는 여성이 야구를 배울 곳도, 성인이 되어 지속할 수 있는 곳도,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그래서 라경은 반드시 서울대학교에 입학해야만 했다. 2016년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을 감독을 맡던 이광환 감독이 서울대학교 야구부를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경은 학교 공부를 마치고 3시간을 왕복해가며 리틀야구단에서 훈련을, 사회인 야구리그에서 경기를 했다. 어렵사리 내신을 유지해가며 국제대회 출전까지 했다. 여성성이란 고정관념과도, 여자가 왜 야구를 하고 여자가 야구해서 뭐 먹고 사냐는 시선과도 맞서야 했다. 라경의 두 번의 자기소개서에는 후배들을 위해 길을 닦고 싶다, 스포츠행정가가 되어 남성중심의 스포츠 문화를 개선하고 싶다는 문구가 토씨 하나 달라지지 않은 채 똑같이 적혀있었다.


  20년도 2월, 라경은 서울대학교 야구부에 들어왔다. 라경의 대학리그 출전을 방해한 것은 부상만이 아니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연맹의 경기인 등록규정 제14조 1항에 따라 혼성으로 팀을 꾸릴 수 없었다(23년 현재는 해당 조항의 혼성 등록 규정이 개정되어 삭제되었다). 해당 문제는 이광환 명예감독이 나서서 조율해줌으로써 일시적으로 해결되었지만, 남성 중심의 운동부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였다. 서울대에 왔음에도 여성이 야구할 수 있는 여건은 열악했고, 라경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은 부족했다. 이런저런 제약으로 라경은 1년 만에 그토록 고대하던 야구부 생활도 접었고, 다시 여성 사회인 야구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JDB를 창단했고, 일본 여자야구리그의 제도와 행정, 인프라를 배우기 위해 실업리그로 향했다. 그러나 라경은 일본에 간지 얼마 안 되어 부상을 당했고 다시 국내로 복귀했다. 여성 야구선수 최초로 토미존 수술을 받았으며, 기나긴 재활 끝에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스물넷 김라경이 혼자 짊어졌던 세상의 무게였다. 


   나의 필력으로는 라경이 겪었을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글에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을 듯하다. 그리고, 여자야구의 슈퍼스타 라경도 이러했을 진데, 라경의 선후배들이 겪었을 고충은 더더욱 심했으리라. 그녀들이 이 무게를 감당하게 된 까닭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저 ‘야구가 하고 싶어서’였다. 라경이 말하길 일본에서도 여자야구는 생소하다. 그러나 상업적으로는 큰 가치가 없을지라도 그것을 즐기는 여성 인구는 꽤나 많다. 제도권 교육에서 여성이 야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라경의 말이 맞다면, 일본에서 여성은 야구를 매개로 젠더관념에 저항하는 것과 더불어, 야구를 야구 자체로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라경에게 일본에서 여성이 야구를 향유하는 또 다른 이유를 찾아봐달라고 덧붙였다. 불운하게도 조기에 귀국했지만, 힌트를 찾았기를 바란다.


  사실 재작년의 나는 라경이 일본에서 여자야구 노하우와 행정을 배워오더라도, 일본에서 성공하여 한국에서 이슈가 되더라도, 이것이 정말 한국 야구계의 변화로 이어질지, 라경의 경험이 개인적 체험에 그치지 않고 ‘대의’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을 품어왔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별로 중요치 않아 보인다. 라경의 도전이 대의를 위함이든, 후배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든, 자신이 사랑하는 야구를 지속하기 위한 개인적 열망이든 간에 라경의 매 발돋움은 여자야구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편견에 저항하고 고착화된 젠더관념을 깨려는 시도일 테니까. 또, 라경의 시도로부터 제2의, 제3의 김라경이 나타나 차별적 시선에 저항할 테니까.


  20년 11월,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메이저리그 최초로 여성 단장이 탄생했다. 22년 1월 뉴욕 양키스는 산하 마이너리그 싱글 A팀의 신임 감독으로 여성을 선임했고, 같은 해 같은 월 호주에서는 호주 프로야구리그에 첫 여성 선수가 데뷔했다. 그리고 23년도 MLB 야구규정의 157쪽 ‘Definitions of Terms’은 아래와 같은 서술로 끝난다. (반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규정집에는 이와 같은 서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야구에 ‘she’는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여전히 등장할 수 없고, 등장을 위해서는 갈 길이 아직 멀다. 라경의 시도도 지금의 스포츠 문화를 당장 바꾸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세상은 한 명에 의해 변하기도 한다. 라경을 시발점으로 박주아 선수가 나타났듯이, 안향미 씨를 모티브로 20년 영화 <야구소녀>가 개봉했듯이, 22년도 여자야구 연구집 외인구단 리부팅이 발간되었듯이, 이 세대에서 ‘she’들이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3년 전 여름 라경이 반발했던 나의 예상이 모두 틀리기를 바란다. 관중석이 아닌 그라운드에서 ‘she’들이 주목받기를 바란다. 24년도, 스물다섯 00년생 김라경, 불모지를 개척하며 굵은 땀을 흘리고 있을 그녀를 멀리서나마 응원한다.




*  본 내용은 필자가 17년도 2월부터 19년도 12월까지 김라경의 입시를 도우며, 대학 입학 후부터 지금까지의 ‘야구선수’ 김라경의 삶을 지켜보며 느낀 점들로, 라경의 동의를 구한 뒤 서술하였다.

* 아래 링크는  외인구단 리부팅 : 야구장 속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가를 발간한 프로젝트팀 '턱괴는여자들'의 인스타그램 홈페이지다. 여자야구에 대한 이들의 문제의식은 아래와 같다.

 2019년 750만 명을 기록한 프로야구 관중의 48%, 한국야구위원회(KBO) MD 상품(텀블러) 구매자의 78.8%는 여성이다. 그러나 프로야구 존립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국 여성들은 응원석과 관중석이 아닌 마운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https://www.instagram.com/tuck_on_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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