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읽은 건축
이번주부터 내가 보고읽은 것들을 그리기로 했다.
오타쿠로 인생을 시작해서 그런지 몰라도, 초등학교 때부터 주변엔 항상 그리기에 특출난 친구들이 많았다. 공부와 취미와 일상이 모두 그림으로 귀결된 사람들의 열정 가득한 결과물들을 옆에서 보며 나는 다의 덜된 오타쿠 마인드를 그냥 '그림에 재능이 없다'로 결론지었다.
다소 일찍 내가 그림에 재능이 없다고 결론 내린 이후로, 그림과 관련된 다짐을 한 건 처음이다. 차라리 내가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미술학원을 다니거나 그림을 더 그려보았을 텐데, 내 주변에는 미술에 진심인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예를 들면 우리 엄마. 초등학교 만들기 과제에 젯소칠하고 유화그리고 바니시 바르는 사람이 어딨어? 여기 있습니다. 유치원부터 8년 간 그걸 당연히 여기는 엄마를 두고 보조하는 삶을 살아 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고 조차도 생각도 못했다. 나는 엄마의 진심에 약간 뒷걸음질 치고 당황하는 역할이었다.
게다가 나는 예쁜 것들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전시나 잡지, 옷, 공연 등 보기 좋고 예쁜 것이라면 사족을 못썼다. 주변에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존잘력'으로 내 눈을 에베레스트로 올려뒀고, 나는 만들 수 없다면 소비한다,는 마인드를 이어오게 됐다.
그림에 대한 갈망을 소비로 충분히 채우며 제작에 관심없는 나를 고등학교 때까지는 나름 수월하게 데려왔지만, 대학을 잘못 골랐나보다. 하필이면 예쁜 것 중에도 건물이 가장 좋았다.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다는 게, 말도 안 되게 큰 덩어리들을 하나의 언어로 귀결시킬 수 있다는 게 무작정 건축학과에 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건축학과는 만들고 싶지도, 그리고 싶지도 않은 나를 가만두는 곳이 아니었다.
특히나 나를 괴롭게 했던 건 서양미술사 과목이었다. 안일하게 연혁을 훑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목은 매시간 스케치와 에세이 작성하여 토론하는 것이 수업의 일부였다. 내 그림과 글을 보여주고 이야기까지 해야한 다는 게 나한테는 정말 도망가고 싶은 일이었다. 실제로 몇 번 도망도 갔다. 하지만 난 졸업을 해야하는 사람이기에 도망가지 못하는 날이 더 많을 수 밖에 없었고 뻔뻔하게 그려서 수업을 듣기로 했다. 마음을 버리고 들은 수업이라 그랬던 건지, 너무 기대가 없던 수업이라 그런지 몰라도 이상하게 그리다보니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할 때와 다르게 시간이 흐르는 것도 좋았고, 볼 때는 매스에 압도당해 전혀 보지 못했던 부분들까지도 보고 그릴 수 있다는 게 좋게 다가왔다. 내가 가장 회피해왔던 방식이 예쁜 것을 소비하는 최고의 방식이었단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조악하지만 시작하기로 했다. 울며 겨자먹기의 심정으로 더 나은 소비를 위해, 예쁜 것들에 대한 극심한 과소비를 위해 스케치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오늘 그린 두 곳은 마드리드 왕립 식물원과 가가묘묘의 공간이기도 한 묘각형 주택이다.
마드리드 왕립 식물원은 서른 살에 스페인에 그려진 그림을, 묘각형 주택은 오늘 올라 온 공간지 아티클의 사진을 참고했다.
이상하게 건축에 관심을 가질수록 사람보다 반려식물이나 동물에 더 눈길이 간다. 두 공간도 사람의 이야기만큼이나 동식물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만들어진 공간이다. 사람을 가장 우선시해서 만든 공간이라고 해서 우리에게 가장 매력적이라거나 필요한 건물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두 공간처럼 사람만의 편의를 후차적으로 미룬 공간이 더 안락하게 느껴지고, 예기치 못한 행복을 건넨다.
식물과 건물의 시작점이 너무 다르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 대조적인 둘이 항상 같이 가게 된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아리송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손으로 키워내고, 이들이 사람을 다시 키워낸다는 맥락에선 둘의 공통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둘 모두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