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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탈멘토 Jan 22. 2024

졸업하기 전에 딱 한 번만 해주세요


6학년 학생 몇몇이 급식실을 지나다 영양실을 노크해 얼굴을 빼꼼 내밀고 살포시 웃는다. 오늘따라 특별히 내 안부가 궁금하진 않을 텐데... 부드러운 미소가 무언가 의심쩍다.


"뭐야?"


"샘 있잖아요. 그게요... 우리학교 급식 진짜 맛있거든요. 급식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구요... 저희 졸업하기 전에 마라탕 딱 한 번만 해주시면 안돼요? 1년에 한 번도 마라탕을 안 주는 건 너무한 거 같아요!!" 


"마라탕? 마라탕 나간 적 있을 텐데?"


"샘 그거는 작년이에요. 제가 3월부터 식단표 다 훑어보고 왔거든요. 올해는 한 번도 안 나왔어요!"


"마라탕 맛에 익숙해지면 다른걸 안 먹어. 미각이 마비되거든. 그럼 다른 맛을 느낄 수가 없으니 마라탕 외엔 다 맛없다고 해"


"샘 우리 밖에서는 진짜 안 사 먹을 테니까 학교에서 딱 한 번만 해주세요."

(그 말을 누가 믿겠니?)




필자는 평소 아이들에게 건강한 급식을 매우 강조한다. 불량식품 천국인 시대라 건강한 음식만 먹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지만 학교급식에 대놓고 불량식품을 많이 자주 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인지 본교 아이들은 급식 희망 메뉴를 적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괜히 적었다가 잔소리 한 바가지로 끝날 확률이 높기에...? 그런데 마라탕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이렇게 찾아왔을까...?  


"그래, 알겠어^^. 대신 저학년도 먹어야 하니 순한 맛으로 먹자 ~ "




마라탕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마라탕은 아이들에게 야채를 가장 많이 먹일 수 있는 요리법이다. 마라를 뒤집어쓰면 그렇게 싫다고 거부하던 팽이버섯과 목이버섯마저도 좋아한다. 아주 맵고 강하지 않으면 급식에서 금지할 메뉴까진 아.




드디어 마라탕이 나가는 날. 아이들이 급식실에 들어오며 싱글벙글 ~ 싱글벙글이다. 많이 주세요. 많이 주세요!!



애호박나물 너무 맛있는데... 안 먹을래요 안 먹을래요!! 



한 아이가 급식을 다 먹고 내게로 와서 양손을 허리에 얹어 따지듯 건의한다.

"샘 ~ 오늘 마라탕 1단계? 담엔 2단계로 해주세요!"


"그렇게 하면 저학년들이 매워서 못 먹어."


수긍한 듯 가더니 다시 동생들 몇몇을 연행해 왔다. 동생들도 2단계 잘 먹을 수 있다고 했어요. 맞지? 아이들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그래. 알겠어^^"




조리사님이 묻는다.

선생님 담 마라소스를 좀 더 넣어야 할까요?

아니요. 똑같이 끓여주고 걍 2단계라고 박박 우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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