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말을 네가 정리하지 마! 말의 주도권을 되찾은 벼락같은 꺠달음
나는 글보다 말이 강한 편이다. 깊이 있고 단단한 사람은 글이 강하다는 걸 잘 알지만, 나는 태생적으로 헐렁하고 가벼운 쪽이라 어쩔 수 없다. 말이 더 빨리 튀어나오고, 말이 더 세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어린 시절, 고만고만한 친구들 사이에서 말빨이 밀렸던 기억은 없었다. 특히 남자들에게 강했다. 보통의 남자들은 보통의 여자들에게 말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다는데 나는 특히 더 그랬다. 남자와의 말싸움에 패배라는 건 내 세계관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꺾는 사람이 나타났다. 어떤 갈등이 있어 대화를 시작하면 분명 첨에는 내가 주도권을 잡는다. 그런데 대화가 끝날 즈음이면 내가 한 말들이 묘하게 뒤틀리고, 논리의 중심도 사라지고, 급기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뭐… 그런가?” 내가 했던 정당한 말들이 그의 페이스에 말려 스스로 부정하는 기묘한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가스라이팅의 대가였다. 정확히는 말의 주도권을 탈취하는 데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기술을 소환해 보면 이렇다. 내가 말한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슬슬 예열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정리’를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내 말은 그의 뇌 속을 한 바퀴 돌고 나온다. “그니까 네 말은… 요약하자면… 결국… 그러니까…” 돌아올 때면 이미 원본이 아니다. 말은 감쪽같이 ‘리폼’이 되어 있다. 내 문장에 그의 꼬롬한 생각이 찐득하게 엉켜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가 말한다. “왜 매번 늦어?” 그는 내 말을 재가공한다. “결국 네 말은, 이렇게 사람 많고 차 밀리는 동네에서 만나는 게 싫다는 거지?” ……? 내가 말한 건 ‘성의 없는 지각’인데 돌아온 건 ‘복잡한 시내에서 약속을 잡은 내 탓’이었다. 이쯤 되면 신내림 수준의 리폼 아닌가.
그런 대화가 반복되던 어느 날, 내 깊은 곳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내가 하는 말을 매번 네가 마무리하고 정리해! 내가 한 말을 네가 정의하지 마!”
그 순간, 내 인생에서 잠시 빼앗겨 있던 주도권이 벼락같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잠시 눈이 똥그래졌지만, 순순히 물러설 사람도 아니었다. 싸움이라는 건 원래 끝까지 하는 사람이 이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끈기로 밀어붙이는 힘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끝까지 듣지 않기’로 전략을 바꿨다. 그때부터 말싸움의 패턴이 바뀌었다. 그가 또 정리하려 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수긍으로 받아들이지만 나는 그만하라는 뜻으로 끄덕인다. 소통의 회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러니 관계가 개선될 리 없었다. “어제 네가 고개 끄덕였잖아.” "글쎄, 지루해서 딴생각했나? 기억이 안 난다." 사람이 가장 허무할 때 중 하나가 내가 필사적으로 했던 노력이 한순간 물거품이 될 때다. 우리 관계는 진전 없이 팽팽해졌고(과거처럼 밀리지 않음) 이 기질을 알고도 관계를 이어가면, 삶이 괜히 피곤해지겠구싶어 거리를 두고 천천히 멀어졌다.
그는 내게 상처도 줬지만 그보다 더 큰 선물을 남겼다. "말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법"을 실제 경험으로 가르쳐 준 고마운 사람이다. 그 뒤로는 누구와 언쟁을 하든 나는 한 가지를 잊지 않는다. 상대가 나를 향해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긍할 수 없는 문장이라면 그 문장의 마침표는 내가 찍는다. 마침표를 찍는 사람이 말의 의미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말은 곧 힘이다. 말의 방향을 쥔 사람이 대화를 이끌고, 말의 끝을 쥔 사람이 관계를 결정한다. 누군가 내 말을 반복해서 정리하고 요약하고 정의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엔 배려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도권을 가져오는 기술일 뿐이다. 누군가 내 말을 대신 정리해 주면 잠깐은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내 생각 내 해석 내 자존을 서서히 남의 손에 잠식당하게 된다. 지금 나는 누구와 이야기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누가 나를 비난하거나 훈수하면 그대로 받아들였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말을 지키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것이다.
가스라이팅하는 상대를 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글을 적는 것이다. 말로는 얼마든지 돌려 말하고 비틀고 덮을 수 있지만 글은 남는다. 그리고 '기록된 말’ 앞에서는 그들의 기술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글을 보며 여전히 곡해하겠지만, 그걸로 끝이다. 논리 있는 문장을 글로 뒤집을 능력이 그들에겐 없다. 말로 이길 수 있다면 글로도 이겨야 하는데 정작 그들은 자신이 가진 허술한 논리를 굳이 기록해 둘 이유가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말이 많은 사람치고 글 쓰는 사람은 드물다. 말은 순간의 감정이지만, 글은 의식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말수는 조금씩 줄고, 대신 글이 조금씩 는다. 예전엔 말이 칼처럼 앞질러 나가 내가 나를 베어버릴 때도 많았는데 요즘은 문장을 한 번 더 곱씹고, 의미를 한 번 더 내려다보는 ‘간격’이 생겼다. 그 간격이 사람을 만든다. 드디어 인간이 조금 되어가는 중이구나... 싶어서 스스로 가끔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