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학연수인가
멀쩡히 잘 일하고 있던 내가 갑자기 1년동안 어학연수를 다녀온다고 말했을 때 멋있다며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왜 가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초등교사에게 유창한 영어 실력은 그닥 필요하지 않다.
초등영어가 워낙 기본적인 회화를 다루기 때문이다. 교사가 영어를 막 써봐야 왠만해선 알아 듣지도 못하고 중요한 걸 굳이 꼽자면 또렷한 딕션 정도랄까. 그보단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법한 교수법을 사용하는 것이 초등영어 교육 현장에선 훨씬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비, 거주비만 해서 못해도 몇천만원이라는 큰 돈이 드는 일을 감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게 내 로망이라서이다.
외국에서 지내며 사계절을 지내 보는 것은 어려서부터 나의 로망이였다.
대체 무슨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이런 환상을 키운건진 몰라도 이상하리만치 난 이 일에 큰 미련이 있었다.
대학에 가자마자 편순이로 일하며 번 돈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고서부터는 그 뒤로도 적지 않게 해외여행을 다닌 것 같다. 이런 나를 두고 엄마는 방학마다 여행을 가면 될 일이지 왜 1년이나 나가 있어야 하냐며 이해를 못 하셨지만 나는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로 타국에서 일상을 살아보기를 원했다.
한편 해외여행이라면 적지 않게 다녀봤다지만 한 달 이상을 거주하는 경험 자체는 처음이였기에 나는 비자 발급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유학휴직을 위해 제출해야 할 서류는 크게 3가지, 공인어학점수와 어학원 입학허가서 그리고 체류비자이다. 6개월 이하의 기간 동안 영국에 머무를거라면 별도의 비자신청은 필요하지 않으나 청에서 허락하는 기간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년이었기에 11개월 숏텀 학생비자가 필요했다(이 또한 애매하게 딱 12개월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비자를 발급받는 일이 정말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이유는 첫째, 지정된 결핵검진센터 - 잠복결핵 검진이 필요한데 세브란스병원에서 받아야만 인정된다 - 와 비자센터를 방문해야 하는데 평일에 한정된 시간에만 운영하기 때문에 예약을 잡는 것부터 쉽지 않다. 특히 서울과 먼 지방에서 평일엔 일해야 하는 신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연가를 두 번이나 쓰고 서울을 왔다갔다 해야 했다(생각해보면 참 고된 일정이었는데 점차 바라던 일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그렇게 힘들었지 않았던 것 같다).
둘째, 하염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당시 코로나 팬데믹이 이제 막 풀려가는 상태에서 급격하게 유학생이 늘어난데다 기한 안에 맞춰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입장에선 결과가 언제 나올까만 오매불망 기다리게 되고 혹시 문제가 있진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덤이다. 실제로 지인은 잠복결핵을 판정받아 일정 자체가 크게 미뤄지기도 했다고ㅠ
하여튼 이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유학휴직이 최종승인 난건 휴직일자로부터 겨우 한달 전쯤이었다.
원래 유학휴직을 쓸 생각은 없었다. 언젠가 평생의 버킷리스트인 남미에 가서 서핑도 하고 탱고도 배워보자며 막연하게 꿈을 꿨을 뿐이였다. 교사는 경력이 10년 쌓이면 별 사유 없이 1년간 쓸 수 있는 휴직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때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다. 때로 일상이 너무 권태롭고 고될 때면 괜히 나 혼자 꺼내보는 작은 희망 정도랄까.
사실 내 로망이었을 뿐이지 진짜 일어날까 반신반의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가서 개고생을 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결혼 시기를 생각하면 시기를 무작정 나중으로 미룰 수도 없었다.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러나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는데 어학연수로 영어실력이 크게 향상된 케이스가 정말 드물기 때문이다. 어학연수 자체가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그동안 배워온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라는데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다들 가기 전에 충분히 영어 실력을 쌓아두라고 강조를 한다.
영어 실력 향상 자체에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영어가 늘거라는 기대가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내가 꾸준하게 놓지 않았던 공부가 있어다면 그건 단연 영어공부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영어 공부 하나만큼은 이것저것 시도해보며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해왔다. 언젠가는 외국에서 살아볼 날이 오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영어 잘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그 덕에 여행 가서도 별 무리 없이 영어를 쓰지 않는 수준은 되었으나 영어 생활권에서 지낸다는 것은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영어 실력 향상과 여행. 보편적인 어학연수의 목적이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결국 여행자와 생활자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을 때 나의 목적은 ‘사람’이란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 어학연수 목적은 다름 아닌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내향 오브 내향인으로 인정 받은 나지만 혹시 아는가 거기선 한국과 좀 다르게 행동할지.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어찌됐든 재밌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