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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밑하나 Aug 02. 2022

귀촌했습니다. 혼자서!

<빙그르르 귀촌라이프> -1

나는 26살 봄에 시골에 왔다.

어린 나이에 시골에 가서 살겠다고 하는 나에게 혹자는 특별한 계기를 기대하며 물어오지만, 사실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다.

나는 제천 월악산 자락에 있는 덕산면에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 대안학교를 나왔다. 열네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10대의 거의 전부를 이곳에서 보냈다. 열아홉 겨울에 졸업을 하고 서울에 가서도 덕산이나 학교가 그립다는 생각을 자주 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서울에서, 도시에서 줄곧 괴로웠다. 




성수동에서 의류 스튜디오 물류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에, 내가 다녔던 대안학교에 잠시 계셨던 미술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전에 만났을 때 지나치듯 했던 말을 기억하시고는, 갑자기 나에게 덕산으로 가서 살아보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시골에서 약 5개월 동안 살아보면서 약간의 활동비와 프로젝트비를 지원받고 정착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첫 통화에서는 '하고 있는 일도 있고, 지금 당장 어디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요'라고 거절했지만 그날 밤 문득 내가 말한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뭔가 싶었다. 물류팀에서 어깨에 염증이 생기도록 박스를 나르는 일? 매일 밤마다 과호흡에 시달리면서도 놓지 못하는 예술 작업? 일주일에 한, 두 번 겨우 가는 댄스강사 일? 글쎄, 나는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고, 살아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덕산에 왔다. 덕산에 와야 하는 이유보단, 서울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어서 왔다.


작년 10월 즈음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는 서울에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덕산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산과 하늘, 논밭의 풍경이 신비로웠다. 밤마다 건물들 사이에 우두커니 떠서 잠을 자는 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산속에 푹 파묻혀서 잠드는 느낌이 좋았다. 내(우리)가 땀 흘려 키운 농작물이 반찬이 되어 밥상에 올라는 것이 감사했고, 그 고되고 단순한 노동이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서울에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만 했는데, 이곳에 와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할 수 있다. 덕산에 남을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렇게 슬쩍 눌러앉은 덕산에서 지금까지 나는 참 많이 변했다.



아침마다 일어나고 매일 밤 잠에 든다. 겨울만 좋았는데 이젠 모든 계절이 다 특별하게 좋다. 괴롭고 아프지 않은 순간에도 내가 숨 쉬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첫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긴 솔로 기간을 보내고 있는데, 혼자인 것이 처음으로 불안하지 않다. 정신과 약을 끊었고, 과체중에서 벗어났다. 내 일상은 여전히 아주 바쁘지만 잊지 않고 나에게 휴식시간을 주곤 한다.



혼자서 시골에 와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좋은 것들이 더 많았지만 사실 시골에 살면 불편하고 나쁜 일도 더러 생긴다. 그래서 더 자세히 들려주고 싶다. 혹시 혼자 귀촌을 고민하는 여성들이 있다면 아주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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