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누적

역동성의 삶을 향해서

by 김두현

직전 글을 쓰고 나서,

몇 번 더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한 순간이 있었다.

다만,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아서 복기를 하려고 하는 과정도 감당하기 버거운 시기들을 이였다.


몇 가지를 좀 정리하고 하는데...

가장 큰 건 역시나 여름방학 KAIST 여름 인턴이다.


여름 인턴


타지에서 생활해 본 첫 번째 경험이자,

연구라는 목적으로 온전히 시간을 쓴 경험이었다.


초반에는 사실 연고지가 아애없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KAIST라는 사실 하나만을 위안 삼으며, 버텼다.

차차 같이 인턴하는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생활은 그래도 흥미로워졌다.


HCI라는 분야에 학부 인턴을 해보고 싶었던 나에게, KAIST라는 공간까지 경험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좋은 기회였다.

더군다나 나에게 24년 하반기, 25년 상반기를 지나면서 이거는 무조건 어딘가에 소속되어서 경험을 하는 것이 가장 값진 것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그냥 잡았다는 것이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그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고 싶었다.


내가 연구에 맞는 사람인지, 타지에서 연구라는 목적 하나만으로도 내가 워라밸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인지, HCI라는 분야가 나에게 맞는지 등 많은 것을 한 번에 시험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목적은 2달이라는 시간 동안 소기에 달성할 수 있었다.


먼저 나는 연구에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

연구라는 목적을 동일시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의논한다는 점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즐거웠다.

다만 2달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가짐이다 보니 워라밸을 챙기기 위한 노력들은 다소 부족했다.

그래서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흥미와 동시에 여가를 즐기면서 만나는 새로운 관계들에 대한 흥미가 채워질 수 있다면, 연구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그걸 공부하라는 임무가 주어지는 것을 FANCY 한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 상 세상은 평범하게 살면서, 살짝의 금적적인 여유가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자의 길이 과연 내가 지금까지 발견한 다양한 재미들을 모두 역동적으로 채워줄 수 있을지, 혹은 역동성이 연구에 해가 되는 지점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남아 있다.

다만, 아무래도 나는 정량적인 기준을 맞추는 일을 해야지 그나마 몰입을 맺고 끊음을 확실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성적인 기준은 뭔가 뜨뜻미지근한 마무리들의 연속인 것 같다.


타지 생활은 생각보다 좋았다. 유성구가 좋은 걸 수도 있다.

집을 보러 가서 조언을 받았던 신성동으로 방을 구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인턴 생활이 끝나가면서 영상으로 담고 싶었던 길이 있었다. 신성동에서 KAIST 동문으로 가는 과학로 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타슈를 빌리고 이 길을 타고 가다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기상으로 인한 피로나 출근에 대한 감정이 파란 하늘과 쨍한 햇살 사이의 그늘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밝아진다. 나는 정말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원룸 자체는 소음이 다소 존재했지만,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면서 소음에 대한 민감도도 조금은 내려간 것 같다. 다시 내려갈 일이 있다면, 더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인턴을 통해 친해진 삼총사가 없었다면, 타지 생활이고 나발이고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심적으로 공유할 만한 대상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번 느꼈다. 특히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서 가는 동료가 잘 맞는다는 행운은 더더욱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생산적인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나에게 중요한 요소인지를 느끼게 해 줘서,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기회를 탐색해 나갈 것 같다.


나는 워라밸을 맞출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상상이상으로 하나에 푹 빠진다. 그게 일이던 사람이던 취미건 말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겠지만, 머릿속에서는 2개를 동시에 챙길 위험을 감수할 바에는 하나를 확실하게 챙긴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항상 나는 먼 미래를 상상하는데, 결국 긴 호흡으로 보았을 때, 지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후회를 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항상 워라밸은 나에게 도전과제이다.

만약 내가 2달의 생활동안 워라밸까지 맞추려고 했다면? 아마도 삼총사를 놓쳤을 수도 소중함을 덜 느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무래도 항상 집중했던 상황에 대한 만족을 하는 것 같다. 그 마음 깊은 곳에는 항상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는 듯하다.


왜 최고인가?

항상 나를 괴롭게 하는 가치관이다. 진짜 나는 아무 의미 없이 경쟁사회에서 지기 싫어하는 특성이 생겨버린 것일까? 이 사회에서 나는 그러면 항상 불행한 상태로 남지 않을까? 이런 의문들을 알고 있음에도 왜 나는 항상 어려운 길 최고가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길을 택하려고 하는 걸까?


아니 최고가 아니라 Unique 한 사람이 되어서 독자적이고 싶은 것이 좀 더 강할 수도 있다.


해답을 조금은 찾은 것 같다. 나의 가장 큰 특성을 꼽자면 나는 눈치 보는 삶이 싫다. 일에 있어서 나는 한치의 눈치도 보고 싶지 않다,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정확하게 비판하고 토론하는 삶을 원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런 삶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한 가지 경우의 수가 남는데, 그것이 독자적인 위치를 갖추는 것이다. 나는 눈치를 볼 필요없이, 누군가가 내 눈치를 보는 상황만이 있는 미래말이다. 한국은 그렇게 설계되었고, 거기에서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찾아가는 것 같다.



연구에 대한 나의 생각은 부정적이였다.

하지만 이런 기회들을 통해서 사실은 혜택받은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원하는 그 독작적인 위치를 위해서는 어쩌면 연구라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나는 계속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왔고, 그것은 결코 하이닉스에 들어가고 싶다거나, 삼성전자에 취업을 하고 싶은게 아니였다. 계속해서 나에게 가장 fit한 직업이나 분야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내 인새의 죽을 때까지의 목표일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쩌면 20대의 나는 연구를 통해서 나만이 가지는 강점을 찾아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든다.


수시채용 경과


인턴을 시작하면서도 나에게는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26년 상반기에 어디든지 들어가겠다는 나의 다짐과 6월 말 시작된 KAIST 원서접수는 꽤나 압박이였다.

교수님과 상담을 했지만, 도저히 해당 대학원으로 원서를 쓸 수가 없었고, 본래의 목표였던 인턴을 해보고 결정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글로는 이렇게 2줄로 끝나지만 나에게는 많은 고민이 있던 결정이였다. 석사를 할 수 있는 최고의 대학의 기회를 그냥 공백으로 두는 판단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결정의 행운인지 하이닉스 수시채용이 7월에 열렸고 나는 거기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26년 상반기보다도 빠르게 10월에 일을 할 수 있다면 경험의 측면에서 훨씬 매력적이였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을 7-8월 인턴기간동안 준비하고, 직무적성검사를 7월말 준비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시험이였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해본다는 마인드로 일주일이였지만, 작년 하반기보다 완성도 있게 준비했다. 항상 내가 느꼈던 나의 약점은 후반부 지구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냥 후반부에 어느정도 됐다고 생각했을 때도 그냥 나를 밀어붙였다. 모의고사 시작 버튼을 누르고 나면 아무튼 끝내야하니까 할 수 밖에 없다. 그런과정과 마음이 닿았는지 면접까지는 갈 수 있었다.


2달의 KAIST 인턴이 끝나고 바로, 일주일만에 면접을 보러갔다.

그런 원대한 기대와 다르게 나는 면접을 보자마자 실망스러웠다. 내가 한 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분명히 시스템 레벨의 디지털 회로설계로 자기소개서를 도배하였다.

면접관이 자꾸 뭐 다른거 한거 없냐, 과목은 들었냐 그런 것들을 물어보고 설계와 전혀 상관없는데 프로젝트들을 시간 때우기로 물어본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슬픔을 넘어서 화가 났다. 뭐하러 면접에 나를 불렀는지.. 하 여기서 줄인다.


희망회로를 돌릴 수도 없을 정도로 면접이 펼치지니까,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은 내 인생의 최악의 일주일이였다. 탈락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느정도의 희망도 없이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나온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렇게 원하는 직무를 위해 더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대학원에 대한 마음은 더 생기게 되었고, 내가 얼마나 디지털 회로설계에 진심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이제는 시스템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이 나에게 최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있다. 업무환경이나 관심사가 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임을, 면접에서도 뽑히겠다는 적략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피력했다는 사실은 그 면접이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다. 많은 면접을 보면 볼 수록 결국 이것은 개인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회사가 필요로하는 사람을 뽑는 과정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내가 선택이 안되는 것은 나의 능력부족도 있겠지만, 결국 회사가 자기들이 원하는 그 딱 그 수준의 인재만을 선발하는 것이다. 굶어 뒤지기 일보직전이 아니라면 나는 소신데로 갈 것이다.


내가 몸소 채용시장의 풍파를 맞고 있다. 어쩌면 간절하지 않을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게 취업준비는 그냥 하나의 경험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만 반도체 스타트업 인턴은 지금 시점에서 정말로 해보고 싶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경험해보고, 내가 그 안에서 기여하는 모습은 정말 뿌듯할 것 같다. 이제는 알았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는 네임벨류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가 대기업을 가고 싶어하는 이유로 철밥통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 재미는 거기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대기업을 위해서 나를 맞춰가는 작업을 통해서 생존해야된다면 있는 재미도 다 깎일 것 같다.

나와 시너지가 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한다 이제부터.


그래서 이제부터 나는 내가 해야되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마냥 하드웨어는 산업체에 들어가야만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자만, 그건 아닌듯하다.

많은 오픈소스들이 있고, 학계도 그런 오픈소스를 적극활용해서 연구를 진행한다.

내가 호기심이 있지만 아직은 추상적인 지점을 구체적인 수치로 분석하는 일을 진행해보려고 한다.



글이 중구난방이다.

21세기에 나는 자기PR 시대에서 확실한 PR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자 한다.

어느정도 실패가 누적되다보니까 실패로 인한 다른 사람의 시선도 무뎌진다.

더 나에게 집중하는 계기로 삼고, 내 안의 이야기를 완성시켜 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