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교통사고, 나는 일주일간 간병을 하며 할머니를 모셨다.
이 일주일이 아부지와 보내게 될 마지막 시간이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2021년 11월 14일, 일요일(日)
늦은 오후 서울에서 구미로 내려가는 길은 그렇게 밀리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다시 차를 몰고 다시 구미를 내려가는 길이 고단하긴 했지만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사정을 말하고 해결할 것이 많아 지겨울 틈도 없었다. 시선은 차창 앞과 백미러를 분주히 오가며 운전을 하는 동시에 블루투스 이어폰으로는 동료 교사에게 부탁할 일을 말하고, 우리 반 회장에게는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등 쉴 새 없이 말하기 바빴다.
구미에 도착한 건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본가에서 저녁을 챙겨 먹기는 어려울 것 같아 휴게소를 들러 간단한 간식으로 요기를 한 것이 다행이었을까? 엄마는 구들장 위에 누워 끙끙 앓고 있었고, 아부지는 화목보일러에 나무를 넣으러 나간 틈이었다.
'엄마, 좀 어때? 어제보다 더 아파요?'
'왔나? 속이 더 메스껍고, 계속 토할 거 같고 온몸이 다 아프다.'
'아이고... 병원 빨리 가서 진료를 받아야 뭘 알 텐데.. 지금 외상은 타박상뿐이어서 근육통인 건지 다른 문제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 약도 못 먹고... 엄마 내분비계 약은 드셨어요?'
'으으응, 아니. 약도 못 삼키겠어.'
때마침 집 안으로 들어서던 아부지가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엄마는 하루종일 한 끼도 안 먹다가 오후 늦게 뭐라도 먹어보려 했으나 토악질을 했다고 넌지시 말했다. 종일 누워만 있는 엄마가 뭔가 이상했던 할머니는 아부지에게 물어보셨다가 어제 있었던 교통사고 소동을 알게 되셨다고도 했다. 하긴, 내일이면 한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할지도 모르는 데, 영원히 비밀로 할 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부지는 좀 어때요? 어제 어깨 아프다더니만'
'내? 내는 끄떡없다. 하나도 안아프지'
'니 아빠 허리 아프다고 일어설 때마다 아이고고고~ 소리 낸다'
'내가 언제 그 카드노'
아부지도 심하진 않지만 분명 타격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매 번 이 정도로만 건강하면 100세는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레퍼토리가 또 반복되어 나올 때쯤 엄마는 아부지도 어깨와 허리가 아프다는 걸 나에게 일렀고, 아부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텔레비전을 켰다.
'엄마. 내일 아침에 일단 한방병원 갔다가, 영상의학과 가보자. 탁이 형이 아는 원장님 있는 병원이 있데'
나는 한방병원을 갔다가 영상의학과를 가자고 말했다. 일전에도 교통사고를 겪어 종합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으나 시스템상으로 CT와 MRI 찍는 것도 쉽지 않았고, 시간이 오래 걸렸던 기억에 다른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한 결과였다. 이미 여러 가지 병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엄마에겐 CT나 MRI, 초음파 촬영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니 가급적 빨리 촬영할 수 있는 영상의학과를 가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탁이 형이 부모님의 사고 소식을 듣고, 나름 괜찮은 영상의학과와 함께 입원이 가능한 곳을 알려주었었다. 여러모로 난 여기가 났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혁이 삼촌이 집 가까운 병원 찾아봐 놨데.'
혁이 삼촌은 엄마의 사촌 동생으로 보험사 렉카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양가 모두 부모님의 사촌들까지는 편의상 삼촌이라고 부른다. 가족들끼리 정말 가깝게 지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제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부모님이 제일 먼저 떠올린 것도 혁이삼촌이었다. 교통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혁이 삼촌은 사고현장을 정리하고 부모님을 응급실로 모시고 가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말을 들을 생각이 하나도 없는 두 사람을 보고, 급하게 렌터카를 보내준 것도 혁이 삼촌이었다.
오늘 아침 부모님 댁에 들러 괜찮은지 살펴본 것도 혁이 삼촌이었다. 삼촌은 엄마의 병을 잘 알고 있어 구미에 신경외과 과장님이 새로 진료를 시작하는 병원을 알아보고 추천해 주었던 것이다. 구미 토박이에 구미 사정을 제일 잘 아는 삼촌의 말을 따르는 게 더 일리가 있었다. 아부지는 근육통만 있는 것 같으니 내일 아침에 한방병원에 들러 물리치료를 받고, 출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 날은 조용조용히 지나갔다.
2021년 11월 15일 월요일 (月)
아침 일찍부터 분주했다.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아부지는 일찌감치 화목 보일러에 나무를 넣고, 밭을 정리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국을 끓이고 있었다. 다른 반찬을 하진 못했지만, 국 없인 밥을 먹지 않는 아부지의 식성을 30년 넘게 챙겨온 지라 몸이 힘들어도 국은 끓여놓고 병원을 가야겠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씻고, 스트레칭을 한 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라떼(고양이)가 조용히 다가오더니 발목에 꼬리를 감았다. 고양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숨을 들이켰다.
들 숨에 차갑고 습한 시골의 공기가 가득 들어왔다. 오늘부터 일주일은 바쁠 것이라는 생각에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강아지들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골집의 하루는 분주하다. 해야 할 일들이 차곡차곡 머릿속에 쌓였다. 가장 먼저 집 오른쪽에 붙어 있는 구멍가게에 불을 켰다. 새벽부터 담배, 빵, 막걸리를 사러 오는 시골 어르신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강아지와 고양이의 사료를 챙겨주고 화장실을 정리해 주었다. 보일러에 불을 다 뗀아부지는 집 왼쪽 비닐하우스에서 밭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짬을 내서 씻고 나왔다.
7시가 되어간다. 국을 끓여놓고 엄마는 다시 누웠다. 난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계란후라이를 만들어 아부지의 아침상을 차린 뒤 점심 도시락을 쌌다. 때 마침 일어나신 할머니의 머리를 빗겨드리고, 옷을 챙겨 노인요양센터 주간보호를 가실 수 있도록 준비했다. 할머니께서 차를 마시는 동안 나는 노트북으로 화상 회의를 열어 학급 조회를 진행했고, 그 사이 아부지는 아침식사를 마치셨다.
8시 20분이 되었다. 노인요양센터에서 할머니를 모셔가기 위해 왔다. 부모님의 교통사고를 말씀드리고 간단히 안부인사를 나눈 뒤 할머니를 배웅했다. 할머니는 엄마 잘 챙기고, 나도 밥을 꼭 챙겨 먹으라고 당부 또 당부를 하고 나가셨다. 할머니를 따라 아부지도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아부지, 시간 너무 이른데. 지금 가면 병원 안 열었을 것 같은데.'
'아~~ 회사에 일 많아서 안 된다. 빨리 가서 진료받고, 빨리 회사 가야 한다.'
아빠도 엄마도 성격이 급하다. 그리고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별로 다친 곳도 없는데, 굳이 회사에 아쉬운 소리 해가면서 늦게 갈 필요가 뭐가 있냐며 일찍 가서 한방병원 문 앞에서 기다리겠다는 말만 남기고 차를 몰고 나가버렸다. 하지만 15분 뒤에 전화가 걸려왔다.
'네가 말한 그 한방병원 와이리 문을 늦게 여노?'
'그니까 좀 있다 가라 그켔잖아요. 만다고 이리 일찍 나가는데. 몇 시에 연다는데요?'
'10시 30분에 연다고 적혀있네'
8시 55분을 향하는 시계의 분침과 눈이 마주쳤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부지... 거기서 3분 거리에 엄마 진료받기로 한 병원 있으니까 바쁘면 거기서 교통사고 접수하고, 진료하고 가봐요. 아까 회사 11시까지는 들어간다고 그랬다메'
'오야. 알았다.'
엄마를 제외한 모두가 나가고, 나는 구멍가게에 앉아 가게를 지키며 원격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다행히 프로젝트 수업의 마무리 단계였고, 간단한 화상 수업 이후 개별 제작과 피드백을 제공하느라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가게 일을 하며 전화로 질문에 답을 하거나 반대로 내가 질문을 할 수 있었고, 카톡으로 진행방향을 점검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수업을 끝내고(수업을 하던 모습을 보는 엄마는 세상이 좋아졌다며 신기해했다), 오후엔 반차를 내고 엄마의 입원 수속을 밟았다.
오후 1시, 엄마와 함께 병원에 방문했다. 주말에 응급실에서 받아온 소견서를 바탕으로 몇 가지 진료를 진행하고 나자 의사는 예상대로 엄마에게 입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속 토악질을 하고, 어지러워하는 원인을 찾을 필요가 있었기에.. 엄마는 병실로 올라가고, 나는 입원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엄마에게 전달했다. 엄마는 병원에서도 계속 누워 끙끙 앓기만 했다. 종일 먹은 것도 없이. 병실을 둘러보며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이후 입원실엔 환자 1명당 보호자 1명만이 허용되었고, 병문안을 올 수 없었다. 한 편으론 재택근무가 가능한 타이밍이어서 부모님 옆에 있을 수 있는 게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할머니까지 계신 상황에서 아부지는 회사일과 가게일을 병행하며 엄마 간병까지는 할 수 없을 테니까.
오후 4시 엄마가 누워서 자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반차를 냈지만 종례를 해야 했다. 아이들의 과제를 점검하고, 학교 전달사항과 가정통신문을 체크했다. 그리고 4시 20분, 주간보호에서 할머니께서 돌아오셨다. 할머니는 엄마의 상태는 어떤지, 사고가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차는 폐차를 한 건지 그동안 궁금했던 걸 한 번에 다 물어보셨다. 주간보호에 가셔서 종일 이 생각만 하셨던 듯 질문을 마구 쏟아내셨다. 사고 경위를 알려드리고, 차는 폐차를 해야 한다는데 혁이 삼촌이 우선 알아본다고 한다는 말과 마지막으로 엄마는 입원했고, 아버지는 크게 문제가 없어 회사에 갔다가 6시엔 퇴근하신다고 말씀드렸다.
'그럼 느랑 느 아부지 밥은 어떻게 하노?'
'할매요. 뭘 그런 걸 걱정합니까. 내 여태 혼자 살아온 날이 얼만데, 내 반찬 잘해요.'
'느 밥 할 줄 아나?'
'하모요. 김치도 담글 줄 아는데, 그리고 이모들도 잠깐씩 들른대서 걱정 안 해도 돼요.'
할머니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 날 처음으로 웃어봤다. 종일 자잘 자잘한 일들이 계속 생겨 분주했던 틈에 할머니와 잠깐의 대화가 긴장감을 완화시켜 주었달까? 할머니는 날 더러 그래도 자식이라고 서울에서 구미까지 내려와 있으니 다행이라면서도 엄마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부지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시면, 밤에 제가 엄마 병원 가서 상태보고, 옆에 있다가 새벽에 들어올 거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러려고 구미 온 건데.'
할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꿀에 절여둔 토마토를 잘라 간식을 드렸다. 난 밭일을 하러 나왔다. 시골의 하루는 정말이니 쉴틈이 없다. 누가 전원생활에 로망이 있다고 텃밭을 가꾸고 싶다고 말한다면, 정말 부지런해도 힘든 것이 전원생활이고, 일을 하고 돌아서면 다시 일이 생기는 게 밭일이라고 말릴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난 표고버섯을 채취하고, 들깨를 털었다.
저녁 6시 30분, 퇴근 후 아버지가 집에 도착하고 하루가 얼추 마무리되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부지와 나는 동생과 통화를 했다. 아부지는 병원에서 촬영한 엑스레이상 큰 문제 소견은 없어서 물리치료만 받기로 했다고 말하며 자신을 튼튼하다는 걸 또 한 번 강조했다. 동생은 혀를 쯧쯧 차며 그래도 예상치 못한 부상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식사 이후 집안일은 아부지가 맡았다. 나는 오후에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해서 하나씩 해결해 나간 뒤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9시, 병원은 고요했다. 엄마가 필요하다고 했던 세면도구를 챙겨 왔는데, 병상 위엔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옆 자리에 누워계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말해주셨다.
'그 댁 아들이지요? 그 아지매 화장실에 계시던데, 속이 마이 안 좋은갑데. 계속 구역질하고 있으시던데..'
'아아 감사합니다. 화장실로 가볼게요.'
화장실 앞에서 나오는 엄마와 마주쳤다. 5시간 사이에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한 것일까? 엄마의 얼굴이 초췌해져 있었다. 병원에서 분명 저녁부터 안정제를 처방한다고 했었는데, 약효가 없었는지 계속 구역질을 하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오. 엄마 살 빠진 거 같다! 엄마 살 빼야 하는데! 강제 다이어트네!!'
'넌.. 엄마가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아파서 이러고 있는데, 그라고 싶나?'
'어쩔 수 없다면 즐겨야지. 이 참에 살 빼자!'
능청스럽게 아무렇지 않은 듯 농담을 건네며 종일 있었던 일들을 엄마에게 말했다. 그리고 아부지는 크게 다치지 않았고, 내일 아침에 회사 출근 전 물리치료를 받고 엄마한테 잠깐 들른다고 이야기했다. 내심 아부지가 크게 다쳤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민이(매제)는 모레 입항한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그래도 있잖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구미 내려와 가지고 저녁에 엄마랑 아빠랑 이야기하니까 좋네. 매번 내려올 때마다 밭에 일하는 거 아니면 다른 볼일들 때문에 바쁘고, 각자 다 저녁에 일 있어서 바빴는데, 오랜만이다. 이런 거'
'니 내려와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할머니 우예 모셨겠노. 할머니가 제일 걱정이다.'
'엄마는 할머니 걱정하고, 할매는 엄마 걱정하고, 애증이야?'
'애증은 무슨 이제는 할매가 안쓰러워서 그렇지. 앞도 안 보이는 양반이 얼마나 답답하시겠노.'
'동생은 다음 주 휴무날에 맞춰 한 번 내려온다고 하던데.. 시간이 되려나'
특별하지 않지만, 소소하고 일상적인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 게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이야기를 계속해서일까? 엄마도 조금씩 안정되는 것 같았다. 긴 대화 끝에 엄마가 이젠 자야겠다고 말한 뒤 나는 조용히 병원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가 끝이 났다.
2021년 11월 15일(월)-2021년 11월 19일(금)
그리고 그 일주일은 오늘 하루와 같은 날들이 특별할 것 없이 반복되었다.
아부지를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과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그리고 글을 쓰면서 아부지의 부재에 충분히 슬퍼했고,
계속 지쳐있지 않으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