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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06. 2023

소망이 만나기

2020.12.4. 소망이 만난 날의 일기


2020년 12월 2일 수.

이제 정말 아가가 나오길 바라며 학교의 가장 높은 오르막을 열 세 번 오르내렸다. 마음은 더 올라가고 싶었는데 잔디 깔린 땅이 푹신해 발목이 아파져서 집에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일부러 청소기에 짧은 호스를 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청소를 하고 쉴새없이 짐정리를 하며 움직였더니 저녁 내내 허리가 아팠다. 많이 걸어서 그런가, 하면서 끙끙거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12월 3일 목.

밤 12시쯤 아래에 물이 흐르는 느낌이 들어 화장실에 가보니 속옷도 젖어있고 소변처럼 계속 맑은 물이 흘렀다. 병원에 전화해야 하나 바로 가야하나 고민하다가 생리대를 대고 남편을 깨웠다. 허리와 골반이 계속 아팠다.

골반이 너무 아파서 침대에서 내려오기가 힘들 정도였다. 



병원에 도착하니 자궁문은 1cm 열렸다고. 허리 통증이 진통이 시작된 거였을거라고 했다. 나도 처음이라 뭐가 진통인지 잘 몰랐다. 양수와 핏방울을 줄줄 흘리며 출산방 침대에 누웠다. 진통 촉진제를 맞으며 조금씩 주기를 계산하기 힘든 진통이 왔다. 유튜브에서 본 호흡을 하며 견딜만 했다. 병원에 있는동안 한 시간 한 시간이 정말 빨리 흘렀다. 진통 몇 번 지나가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진통이 잦아들면 둘다 쪽잠을 자고 나는 약한 진통이 올때마다 깨서 길게 자야 이십 분씩 잤을까.



오전 9시쯤. 3-4cm 정도 열리니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잠을 못 자고 밤새 병원에서 깨어있었고 음식을 못 먹고 액체만 마시는 중이었다. 피곤한 상태로 진통을 참으려니 진이 빠졌다. 진통을 견디다가 지쳐서 필름이 끊긴 것도 여러 번. 내가 내진에 스트레스 받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남편의 마사지 없이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진통을 겪다가 받는 내진은 정말로 참을 수 없었다. 눈물이 퐁퐁 나왔다. 내진이라는 걸 내 말로만 들었지 곁에서 처음 본 남편도 안쓰러워했다.



오후 12시 반. 무통 주사를 놓기로 하고 진통을 참으며 앉았다. 척추에 주사를 놓는 동안 몸을 움직이면 안 됐다. 앉아서 참는 진통은 정말로.. 뭐랄까. 고문이 이런 것일까.주사를 놓고도 약이 도는데는 시간이 걸려서 발과 다리는 마비되고 정작 통증이 심한 배와 허리는 계속 아팠다. 열두시간이 넘도록 아팠던 허리는 정말 상체와 하체를 분리하고 싶을 정도로 아파졌다. 그래도 너무 지친 상태라 의료진들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남편이 대화했고 나는 통증이 좀 줄어들자 기절하듯 잠들었다.



두어시간 자고나니 신기할 정도로 허리 아래가 모두 마취된 상태였다. 다리를 움직이려고 하면 침대 밖으로 삐져나갔다. 내진을 해도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드디어 고통에 몸부리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되찾은 기분. 동시에 뱃속에서 소망이는 아까 나처럼 울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나는 무통 주사로 고통을 피하고 있지만 아가는 진통을 그대로 겪고 있을텐데. 엄마 너무 힘들어.. 하며 울지 않을까? 안쓰러워졌다.



오후 두시가 넘으니 자궁은 5cm 열렸다. 남편은 다른 분에게 식사를 부탁해 배달 받았다. 다리에 힘이 있어야 아이를 낳을텐데 이렇게 마취된 상태여도 되나, 나는 고민하고 있다.



오후 여섯시쯤 드디어 7cm가 열렸다. 하지만 분만을 시작하는 10cm까지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 없었다. 다시 통증이 느껴질때마다 무통 버튼을 눌렀다. 진통 그래프를 보니 요동치고 있었다. 저걸 맨몸으로 겪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하니 무통이 잘 들어 감사했다.



여덟시 반이 넘어가니 9cm 이상 열려 곧 분만을 시작할 것 같았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의사는 오지 않았는데 그날 그 시간에 같은 층의 모든 산모들이 분만 준비중이었다고.. 나는 운 좋게 좋은 타이밍에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분만을 기다리다가 누워있느라 못 넘어간 물을 토해냈다.



10시 반부터 드디어 분만이 시작됐다. 마취된 상태라 진통을 안 느끼니 제대로 힘을 줄 수 있었다. 간호사들과 중간중간 대화하고 웃기도 하면서 진통 그래프를 보며 힘을 줬다. 생각보다 다리 힘이 아닌 뱃심이었다. 삼십분 정도 지나서는 내가 진통이 오는걸 좀 느껴야 더 잘 힘줄 수 있다고 마취제를 좀 줄였다.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진통은 아주 미미하게 느껴졌다.





12월 4일 금.

계속 힘주기를 했으나 새벽 한 시가 넘어가자 의사는 배큠으로 아이가 나오는 걸 도와야 한다고 했다. 사실 회음부를 좀 잘라냈다면 벌써 나왔을 수도 있는데.. 아이 머리는 크고 나올 입구는 너무 좁았다. 배큠이 실패하면 제왕절개로 간다고 했다. 수술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배큠을 실패하고 수술을 한다면 아이에게 너무 무리가 될 것 같아 겁이 났다.



의료진들이 몰려 들어오고 남편은 괜찮다고 달래는데 나는 무서워서 계속 눈물이 났다. 울면서도 숨을 고르면서 의사의 신호에 맞춰 호흡하고 힘을 줬다. 첫 시도는 실패했다. 배큠이 머리에서 떨어져 아이는 나오다말고 다시 들어갔다. 진통 한 번에 세번씩 힘 주던 것을 이번에는 애가 나올 때까지 하기로 했다. 남편이 계속 옆에서 호흡 타이밍을 알려주고 나는 울면서 헐떡거렸다. 이번에 나오지 못하면 진짜 큰일날 것 같아서 정말 온몸을 쥐어짜서 아이를 빼냈다.



소망이는 울고, 의사들이 한번 더 힘을 주래서 다시 쥐어짜니 태반도 딸려나왔다. 아이가 나오는 것보다 마지막에 태반 나오는 게 더 아팠다.. 아마 아이가 나오며 이미 회음부가 찢어져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아이 소리를 듣고 울음이 터졌다. 긴장이 풀리면서 몸도 덜덜 떨렸다. 남편은 탯줄도 자르지 않고 나를 달랬다. 



정이서, Lena. 2020년 12월 4일. 1:32am 3.44kg이었다.



아기는 나자마자 후처리를 위해 테이블로 데려갔고 잠시 남편을 불러 아이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내 가슴 위에 올려줬는데 정말로 심장 소리를 기억하는지? 후후 숨을 내쉬면서 가슴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손을 더듬어 심장쪽을 만지는 것도 귀여웠다. 소망아 힘들었지? 고생했어. 하고 말했는데 병실 안이 시끄러워서 내 목소리가 들렸을지는 모르겠다.



소망이는 배큠으로 빼며 생긴 머리 멍과 황달때문에 바로 NICU로 갔다. 나는 한 시간 정도 그 방에서 자궁에 고인 피가 제대로 빠져나오는지 확인하고 병실로 왔다. 마취때문에 몰랐던 후폭풍이 몰려왔다. 회음부는 거의 항문까지 찢어져 꼬맨 곳이 퉁퉁 부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휠체어를 탔는데 회음부가 아파서 팔힘으로 손잡이를 잡고 몸을 들고 갔다..



해 뜨기 전에 소망이를 만나러 갔는데 눈이 똘망똘망하고 젖을 생각보다 잘 빨았다. 뱃속에서 그렇게 뻥뻥 차고 잘 놀길래 힘 세서 읏차하고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어째 그래 못 밀었어? 하고 원망도 해보고 귀여워서 쓰다듬어주고 왔다.



이런 어린 아기를 안아본 적이 없어 이상할 줄 알았는데 내가 잘 못 안아 불편해도 아기가 참아줬다. 아이를 혼자 떨어뜨려 두고 병실에 우리끼리 있자니 밤에 혼자 훌쩍 울기도 했다. 신기한 마음이었다.



이제 나는 하루 이틀 내로 퇴원할텐데, 아기는 치료때문에 병원에 더 있어야할거 같다. 집에 가면 존재하지도 않았던 소망이때문에 허전할 것 같은 기분. 한 번도 이 집에서 소망이의 모습이나 소리를 보고 들은 적이 없는데도 빈 집 같을 것 같다. 내 엄마가 보고싶기도 하고 내 딸이 보고 싶기도 한 이상한 기분이다.



이로울 이, 용서할 서.

Generous and kind. 

사랑받고 사랑 주는 아이가 되길. 엄마 아빠가 많이 사랑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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