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5년 2개월
얼마 전에 엄마와 통화하다가 엄마가 옛날 옛적 어린 나와 동생을 한창 키우던 때를 이야기했다. 엄마는 자주 몸이 아팠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봤던 운동장에 줄 서서 아침 조회를 하다가 픽픽 쓰러지는 그런 연약한 아이가 바로 우리 엄마였다. 공기가 탁한 만원 버스에서 졸도한 날도 많고 체육 시간에는 선생님이 못 나오게 했다니 늘 몸이 아팠던 듯하다. 초등학생 때 내 기억에도 엄마는 자주 누워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는 안방 침대에 누워 나와 동생에게 먹을 것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알아서 놀게 두고 끙끙대며 누워 있었다. 엄마가 아픈 때면 엄마의 기분도 예민해지기 때문에 나와 동생은 매일 엄마의 상태를 살피곤 했다. 몸이 피곤하고 예민하니 엄마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화를 내는 때도 많았다. 술을 좋아하는 아빠 때문에 자주 화나있고 소리를 지르는 날도 많았다. 엄마는 그때는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했단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유도 이해된다. 내 몸이 너무 아프니까, 남편이 화나게 하니까,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이들은 어지르고 치우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니까. 그리고 엄마는 말했다. "근데 그렇지 않더라고. 그렇게 화내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너는 그러지 마." 나는 샐쭉하며 장난처럼 말했다. "엄마한테 그렇게 배웠는데 나는 왜 하면 안 돼?" 엄마는 멋쩍게 웃었다. "그러게. 그래도 그러지 말어. 엄마가 미안해."
그때 나는 엄마가 나쁘다고 생각했다. 아빠 술 좀 먹게 두지. 우리는 무서워서 잠도 못 자고. 그냥 평화롭게 넘어가면 안 되나. 엄마는 그냥 누워 있으면서 왜 이렇게 우리한테 화를 낼까. 하지만 나는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의 엄마를 많이 이해하게 됐다. 일단 손이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들을 키우는데 남편이 술을 먹으며 늦게까지 집에 오지 않는 것은 엄청난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몸이 힘든데도 계속되는 일상과 육아를 견뎌내야 할 때 내 마음 하나를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는 엄마보다 훨씬 건강하다. 남편도 일을 마치면 칼같이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놀아주고 씻긴다. 아이들도 꽤나 순하고 잘 따라주고(실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믿는 게 나의 정신 건강에 좋다) 나도 계속해서 좋은 소통 방법, 훈육 방법, 기도와 묵상, 고민을 계속하며 이 매일의 육아 생활을 계속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조건에서도 나는 내 엄마보다 더 나은 엄마인가 가끔 스스로 자신이 없다.
5년이 넘도록 아이들과 매일 부대끼며 살면서 나도 가끔은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평소에는 어떻게 웃으며 상황을 넘겨 가는지 나도 모를 노릇인데, 그 어떤 선이 탁 끊긴 날은 어떻게 다정하게 말할 수 있는지, 어떻게 웃고 어떻게 모든 기다림과 인내를 해낼지 전혀 그 방법을 잊곤 한다. 내 몸이 힘들거나 정신이나 마음이 힘들 때, 아이들이 당연하게도 엉망으로 구는 것들을 견뎌줄 수가 없어서 나는 무서운 엄마가 되곤 한다. 그러면 애들이 엄마가 무서워서 찰떡같이 말을 듣는데, 그게 더 화가 난다. 그냥 좋게 말할 때 들을 수 없나? 꼭 이렇게 화낼 때까지 마음대로 했어야 하나? 이번 주에는 아이들이 화를 내면 말을 잘 들으니 그냥 계속 화를 냈다. 화에 익숙해지면 그 관성으로 계속해서 화를 내게 된다. 멈출 수가 없다. 어지간히 화가 났어야 멈추고 다시 웃는데 멈춰지지가 않았다. 굳이 나의 화에 정당성을 줘보자면 지난주부터 여러 행사와 봉사가 겹쳤고 며칠 동안 이서가 밤마다 나를 깨웠다. 화가 미친 듯이 났던 어제 새벽에는 소변이 샜대서 옷을 갈아입히고(친절하게 했다) 이불도 걷고 몸이 간지럽대서 두드러기가 난 걸 보고 알레르기 약도 챙겨 먹였다. 그 와중에 이서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짜증을 냈다. 어린아이도 새벽에 깨서 피곤했겠지만 열심히 챙기던 나도 화가 났다. 그렇게 서로 마음이 조금 상한 채로 다시 잠들었다. 새벽에 깨있었으니 이서도 피곤해서 아침에는 또 준비가 늦어지고 나는 학교에 늦을까 계속 재촉하며 서로 점점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화를 멈췄느냐. 멈췄다. 어제 아침 내내 그렇게 윽박지르며 아이들을 준비시켜 다 같이 나가 이서를 학교에 보냈고 이한이와 어찌어찌 오전을 잘 보냈다. 화는 안 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서 안 했다. 그리고 이서를 데리러 갔는데 이서는 차에 타서 안전벨트를 다 맨 뒤에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서에게 불만을 늘어놨다. 그러면 교실에서 나오기 전에 화장실을 갔으면 되지 않냐. 지금 이한이도 다 탔는데 다시 내려서 다 같이 들어가야 하냐. 문 열어줄 테니 혼자 교실 화장실에 갔다 와라. 이서는 겁먹은 얼굴로 알겠다고 했다. 이서에게 학교 문을 열어주고 이서가 교실을 향해 복도를 지나는 동안 이서 반 친구들이 보호자들과 나오고 있었다. 각자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오는 엄마들도 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자주 인사하고 대화하는 한 엄마는 괜찮냐며 물었다. 나는 요새 좀 힘들다고 답했고, 늘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그 엄마도 나를 이해한다고 감지도 못한 머리를 넘기며 답했다. 전날 제대로 못 잔 두 아이가 돌아가며 짜증을 내는데 집에 들어가 둘 다 침대에 눕혔다. 일단 잠을 자고 나면 점심을 먹을 거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버티고 잠을 안 자겠다는 이서와 우는 이한이를 눕히고 나도 냅다 누웠다. 둘 다 눈 감은 걸 확인하고 조금 기다리니 금세 코 고는 소리가 났다. 나도 아이들 곁에서 자고 알람이 울리고 일어났다.
어제는 동네 커뮤니티 컬리지의 입학 설명회가 있는 날이었다. 요새 나는 이한이도 유치원에 가면 뭔가를 배워볼까 알아보는 중이다. 남편은 나를 입학 설명회에 보내주려고 목사님께 말씀드리고 일찍 나와 아이들을 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전날 못 잔 잠을 조금 보충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아이들과 실내 놀이터가 있는 햄버거 가게로 가서 남편에게 아이들을 보내고 나는 얼른 학교에 갔다. 아유, 애들 유치원 가면 나도 좀 집에서 쉬지 무슨 공부냐고 생각했는데 막상 학교에 가서 이런저런 설명도 듣고 앞으로 들어야 하는 과목들도 쭉 보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다. 지난번에 입학처에 물어볼 것들이 있어 이한이를 데리고 찾아왔을 때는 이한이가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울어서 진땀을 뺐다. 아이들 없이 오랜만에 대학 강의실에 앉아 설명을 듣고 있자니 입학도 하지 않았는데 효능감 같은 것이 들었다. 딱 두 시간, 나 혼자 운전하며 음악도 듣고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내 미래는 무엇일까 고민하고 나니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러니까 결국 나한테 필요했던 건 잠과 혼자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었나 보다.
햄버거 집에 들어가니 이서와 이한이가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엄마!" "잘 다녀왔어요?" 그 목소리가 그렇게 귀여웠다. 집에 돌아와 이서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선물 받은 배스밤을 욕조에 풀었다. 초록색 물이 신기해 아이들이 열심히 노는 동안 나는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새벽부터 예배 인도하고 일하고 아이들을 보고 온 남편이 잠깐 침대에 등을 붙였다가 얼른 나와 부엌으로 왔다. 남편도 나의 피로와 마음을 알았다. 남편의 위로 방식은 이런 거였다. 나의 일을 덜어주는 거. 아이들을 씻기고 무사히 재웠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학교 앞 주차장에서 다시 만난 그 엄마에게 나는 마음이 많이 나아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어린 아들과 씨름하고 있던 그 엄마도 너무나 이해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You can have your days.(네 마음 가는 대로 하는 날도 있어야지.)"
그 말이 너무 다정했다. 그래, 나도 나의 체력과 마음의 한계가 있는데. 나도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날도 있는 거지. 이전에는 이런 날이 있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첫째 이서가 두 돌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화를 내면 아이가 잘못될까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수많은 육아서와 전문가들이 아이에게 감정으로 화를 내지 말라고 해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죄책감은 느끼지 않는다. 늘 밝게 인사하고 심지어 플레이 데이트로 놀이터에 만난 아이들을 너무 신나게 놀아주던 내가 표정도 없이 내 아이에게 무섭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엄마들이 놀라지 않았을까, 잠시 고민도 했었지만 아이를 책임져본 엄마라면 누구든 이해할 거라는 걸 알았다.
오늘 나는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았다. 이한이가 신발을 직접 벗기 귀찮다고 울면서 벗고는 양말이 벗겨지지 않는다고 소리칠 때, 나는 다가가 신발을 너무 잘 벗었다고 호들갑을 떨어줬다. 이한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헤헤 웃으며 "양말 벗겨줘요"라고 했다. 저녁에 손님이 오기로 해서 이서에게 장난감을 정리하기로 전날부터 약속했는데 이서는 지키지 않고 이한이와 놀았다. 그래도 그냥 내가 정리했다. 아이들이 너무 잘 놀고 있으니까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 온 손님들은 이제 막 결혼한 새 신랑, 신부와 이미 손주를 여럿 본 할아버지, 할머니셨다. 그분들은 내가 이곳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지 이해하는 얼굴로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말했다. 마음이 괴로운 날도 있겠지만 금방 자라 버리니 힘써하라고.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사랑을 주면 아이들은 잘 자라지만 동시에 기고만장해진다. 가끔 아이들은 엄마의 화도 먹고 자란다. 엄마에게도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는 것, 엄마도 피곤할 수 있다는 것, 엄마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 있다는 걸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조심해야 할 선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맞춰 살겠지. 나는 건강하게 먹이고 하루 종일 놀게 해 주고 열심히 책도 읽어주고 온갖 호기심과 질문에 답해주고 온습도를 맞추고 영양제를 챙겨 먹이며 살뜰히 챙기는 엄마다. 나는 정말로 노력하는 엄마지만 모든 걸 참아주며 속이 썩어가는 엄마보다는 아이도 엄마에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낫겠다. 나의 이기심보다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