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5년 2개월
미국에서는 차가 신발이라고 한다. 워낙 땅이 넓고 자리를 넓게 쓰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워서 어디든 가려면 차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신발이 우리 부부에게는 딱 하나 있었다. 미국에 온 이후로 우리는 늘 차 한 대를 나눠 썼다. 남편이 일을 가거나, 학교에 가거나, 축구를 하러 가면 나는 아이들과 집에 얌전히 있어야 했다. 갈 수 있는 곳은 내가 유모차를 밀고 걸어갈 수 있는 반경 안이어야 했다. 그나마 신학교에서 지낼 때는 그 반경 안에 아는 이들이 많아서 불편해도 지낼 수 있었다. 유모차를 밀고 헉헉대며 언덕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아는 사람이 없어도 아빠 학교에 놀러 가 잔디밭에서 놀기도 했다. 차가 한 대에, 키도 하나라 문제도 있었는데 가끔은 내가 차를 써야 하는데 남편이 수업에 하나뿐인 차키를 들고 가서 키를 받으려 기다리다가 약속 시간에 한 시간이나 늦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풀타임으로 사역을 시작하면서는 불편함이 좀 더 커졌다. 이서도 학교에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새벽에 교회에 갔다가 일곱 시가 조금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아이들 등교 준비를 돕는 동안 나는 아침을 차리고 다 같이 아침을 먹고 이서 학교에 갔다. 이서를 보내고 다시 교회로 돌아가 남편을 내려주고 나는 곧장 집으로 가고 싶어도 이한이는 꼭 가고픈 곳이 있다. 운전대 붙은 카트가 있는 마트나, 도서관이나 놀이터, 그게 어디든 어린아이는 꼭 놀고 싶어 한다. 그러면 한 곳 들러 아이 마음을 달래고 집으로 간다. 다리가 짧은 내 친구와 세월아 네월아 계단을 올라 아파트 삼층에 들어선다. 이서 하교 시간까지 남는 시간은 40분 남짓. 나는 그 안에 엄마를 부르는 이한이에게 대꾸해 주며 급하게 집안일 한 가지를 한다. 조금 전에 집에 들어왔는데 또 나가야 한다니 안 나가겠다고 신발장 앞에 꼿꼿이 서있는 이한이를 어르고 달래서(어떤 날은 그냥 둘러메고) 이서를 데리러 간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이고 이한이를 재운다. 남편을 데리러 갈 시간이 가까워오면 이한이를 살살 깨운다(진짜 우리 집 둘째 극한직업이다). 어떤 날은 물려준 사탕을 물고 순순히 나오고 대부분은 잠이 덜 깨 울며 나온다. 그러면 또 안고 달래며 두 아이를 차에 태운다. 그렇게 남편을 태우면 또 한 곳에 놀러 간다. 아랫집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며 아이들이 뛸 때마다 천장을 치거나 아파트 관리실에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다.
주일 아침에는 일곱 시에 모두가 일어나 잠이 덜 깬 아이들 옷을 갈아입혀 차에 탄다. 일찍 교회에 가야 하는 남편을 내려다 주고 나와 아이들을 자꾸 생기는 눈곱을 떼며 집으로 돌아온다. 씻고 밥 먹고 설거지를 해두고 다시 교회로 간다. 예배를 마치면 아이들은 노느라 바쁘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기다리다가 두 시쯤 차에 태운다. 이한이를 재워야 한다. 시동을 걸고 집 쪽으로 조금 운전하다 보면 십중팔구 두 아이 모두 잠든다. 그러면 나는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거나 집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조금 기다린다. 그리고 다시 교회로 돌아간다. 남편은 세시가 조금 넘으면 모두 정리하고 나온다. 그러면 온 가족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일상을 매일 사는 것은 온 가족에게 피곤한 일이었다. 남편이 차를 써야 하면 나와 아이들은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남편이 일하다 말고 집에 돌아와 차를 줘야 했고 울는 놀다가도 아빠가 마칠 시간이 되면 신데렐라처럼 떠나야 했다. 대부분은 이서 친구들, 내 친구들이 우리의 일정에 맞춰 줬다. 그래서 큰 불편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온 가족이 다 함께 다니니 오붓하기도 했고 나도 아침에 혼자 아이들을 준비시키지 않으니 덜 힘든 부분도 있었다. 그렇게 긍정 회로를 돌리며 지내왔다.
그러다가 몇 주 전에 남편이 아침에 집에 오가느라 쓰는 시간을 줄이면 훨씬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온통 길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전업 주부인데도 제대로 집안일을 못 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아이들대로 차를 타고 다니느라 지루하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때에 가지 못해 불편해했다. 문제는 재정이었는데, 중고차라도 한 대를 더 사자면 할부금, 보험, 기름값, 여러 정비와 유지비가 계속 들어갈 터였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이번 주에 결국 차를 샀다! 이서 반 친구 중에 이서와 잘 노는 친구가 있다. 엄마도 상냥한 사람이라 종종 밖에서도 만나곤 했다. 그 친구의 아빠가 현대 차 딜러였다. 이곳저곳 중고차 매장을 다니다가 공개돼 있는 가격에 항목 이름을 잔뜩 붙여 추가 요금이 붙는 것에 지쳐 있었는데, 이 분이 일하는 곳은 다른 요금이 없다고 해서 가 봤다. 십 년 정도 된 차였지만 상태가 좋았고 다른 요금이 더 없으니 차 값도 저렴한 편이었다. 이서 친구 아빠를 일터에서 보니 짠하기도 하고 오래된 차라도 한 대 팔아주고 싶어 사기로 결정했다. 모든 서류 작업을 마치고 차키를 받았다. 원래 타던 차보다 더 작은 차라 거대한 우리 2인용 유모차가 들어가지도 않는데, 아이들이 너무 신나서 카시트를 모두 옮겼다. 아이들이 새로 산 차를 타겠다고 합창을 해서 결국 나와 아이들이 이 차를 타기로 했다. 온 가족이 다닐 때도 이 차로 다니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왠지 온 가족이 함께 다니던 시절이 가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편해지는 것도 많겠지? 차가 두 대인 삶은 어떤 걸까? 조금 설레는 기분으로 잠들었다.
전날 저녁부터 아이들에게 내일은 아빠가 아침에 오지 않으니 우리 셋이 더 부지런히 준비해야 한다고 예고했다. 아침에 꾸물럭대는 아이들을 주물럭대며 준비시키고 아침밥과 영양제를 먹이고 열심히 움직였는데, 학교에는 십 분 지각했다. 내일은 우리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자! 다 같이 하이파이브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서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바로 돌아오니 세상에, 전날보다 한 시간이나 시간이 더 생겨서 나는 이한이 머리도 깎아줬다. 더벅머리가 됐는데 나도 남편도 시간이 없어 못 깎아주던 걸 해내고 나니 너무 시원했다. 남편이 끝날 시간에 맞추지 않아도 되니 아이들 낮잠이나 밥 먹는 것도 더 천천히 할 수 있고 나도 느긋하게 빨래도 접고 천천히 부엌을 정리했다. 아,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있나.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 절로 친절한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정말로 육아 생활에서 화가 나는 건 잘못된 환경 설정 탓이 크구나! 나는 원래 태생이 못된 엄마가 아니구나!
허리띠를 얼마나 더 졸라매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절약한 시간과 힘을 잘 나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힘으로 나는 글도 더 쓰고 집도 더 깨끗이 가꾸고 아이들과도 좀 더 알차게 보내야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자 적응의 동물이라 또 차가 두 대인 삶에 익숙해지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도 잊게 되겠지만, 최대한 늦게 잊도록 노력해 보겠다. 무엇보다 새 차를 타고 행복해하는 우리 아가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우리 더 놀러 다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