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었던 어느 날, 수업과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 나는 책상에 귀를 대고 엎드려 있었다. 연필과 칼에 패인 자국이 선명한 나무 책상, 그리고 그 아래 붙어있는 책을 넣을 수 있는 철 서랍을 통해 교실의 소리가 크고 불분명하게 들렸다. 반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도 웅웅 울리며 크게 들렸고, 도무지 교실에서 난다고 생각할 수 없는, 공사장에서 날법한 소리도 쿵쾅쿵쾅 계속해서 들렸다. 그 날 나는 책상에 엎드려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들으며 우주를 생각했다. 도무지 연관을 찾을 수 없지만, 그랬다. 어쩌면 그날 수업에서 우주에 관해 배웠을 수도 있고, 그 즈음 우주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우주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은 어린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늘 강아지나 병아리, 햄스터 등 애완동물을 길렀고, 그런 동물들은 시간이 흐르면 곁을 떠나곤 했다. 동물도, 사람도 모두가 태어나면 죽는 것이 당연하고, 영화와 책도 시작하면 끝이 있다. 언젠가 어떤 모습으로든 마무리 된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끝이 없다니. 끝없이 팽창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혹은 어떤 느낌일까? 그 팽창하는 것에 대해 끝없이(이런 느낌일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 끝없는 우주 속에서 언젠가는 끝날 나의 존재가 너무나 미미하게 느껴졌다.
좀더 자란 지금의 나는 ‘끝없는 것’이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온통 주위에 널려있다. 우리가 겪는 일들과 생각, 감정은 ‘지나갈’ 뿐, 결코 끝나지 않는다. 한 지인은 직장을 다니던 중 야간대학을 지원하는데, 나이가 서른이 가까워진 때에도 고등학생 때의 성적이 입학 요건인 것을 보며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다, 매 순간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에는 이 시기가 지나면 고등학생은 끝나고 그 다음이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시간의 내 행동과 관계들은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들, 심지어 내가 점심에 밥을 먹었느냐 아니냐, 혹은 어떤 메뉴를 먹었느냐는 내가 다음 식사를 언제 할지, 식사를 한다면 어떤 메뉴를 고르게 될지에 영향을 미친다. 점심을 먹었다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영화 한 편이 끝나면 그 후에 나에게 남는 감상과 생각의 변화는 나에게 계속 남아있다. 영화는 그 인물들과 사건의 한 단면만을 보였을 뿐, 삶은 어떻게든 이어진다. 너와 어제 나눴던 대화,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감정은 그 순간이 지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나와 너에게 남아 생각과 대화를 낳고 관계를 만들며 끝없이 이어진다. 내 곁을 떠나는 동물들을 보며 죽음은 끝이라 생각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죽음도 끝이 아니다.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났다 해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의 영향을 받는다. .
모든 일이 ‘끝없이’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나의 어제의 선택이 오늘을 만들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을 만든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지금의 무책임한 한마디와 불성실한 행동, 대충 흘려 보낸 시간과 사람이 지금 이 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순간을 좀더 책임감 있게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말과 행동을 시작할 때에 그 나중을 생각해야 한다. 끝나는 것 같은 순간은 새로운 시작과 연결된다. 설령 내가 선택했던 일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그 순간은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된다. 삶은 계속되기에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주는 그저 계속해서 팽창하고 커지는 것이 자신의 속성이니 성실하게 넓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넓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채, 그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듯 내일도 계속해서 넓어지는 것이다. 넓어질 만큼 넓어진 뒤엔 끝이 난다. 그리고 끝난 뒤엔 다시 새로운 곳으로 넓어지는 것이다. 끝이 없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 당연하고 즐거운 일일 수도 있다. 내 우주의 오늘이 끝이라면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