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경매

그때 그 친구들은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 아무 말 대잔치

by 김영지




열 세 살, 나는 친구들 네 명과 함께 글쓰기 공부를 했다. 그때 우리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지금 내 나이 정도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마른 몸에 옷이나 머리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큰소리로 웃지 않았고 자주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은 갓 결혼했고 우리가 학교 갈 때 지나가는 길가 빌라에 살고 계셨다. 선생님의 집은 작고 신비로웠다. 선생님은 우리를 가르치는 것 외에 대학원을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집에 들어서면 작은 거실 한 벽면을 꽉 채운 책장이 서 있었고, 그 책장에는 책이 차고 넘쳐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 앞 바닥에 자주색과 갈색으로 무늬가 짜인 카펫이 깔려 있었고 우리는 그 위에 있는 낮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우리는 금요일 저녁마다 수업을 했고, 선생님은 형광등을 켜지 않고 노란빛이 나오는 램프를 켜고 수업을 시작하셨다.



몇 년 전 나는 다니던 교회의 대안 학교에서 독서 수업을 시작하게 됐다. 수업 내용을 고민하면서 대학을 다니며 모아둔 자료들을 뒤적이다가 오래된 파일을 찾았다. 열 세 살, 그 선생님과 네 명의 친구들과 수업했던 자료들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었다.



그 안에 있는 질문들을 지금 다시 보니 선생님이 얼마나 고심하며 자료를 만들었는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기발하고 쉬우면서도 어린 우리의 생각을 끌어낼 질문들이 있었다. 이미 이런 방법을 경험했기에 이것이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기발한 주제 중 하나는 '가치관 경매'였다. 여러 가지 가치관을 나열해두고 우리에게 정해진 돈을 상상하고 그 안에서 어떠한 가치에 돈을 사용할지 정하는 것이었다. 그 안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많은 돈을 갖는 것' '다투지 않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우리나라 통일에 큰 보탬이 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같이 사는 것' '잘못된 것을 보고 정의롭게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 다니며 자유롭게 사는 것' 등.



그중에서 내가 낙찰한 가치들은 저 위의 것들이 아니었다. '잘 생기고 멋있는 외모의 이성 친구를 갖는 것' '자기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 이렇게 세 개였다. 각 가치 옆에는 낙찰 금액과 구입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다. 다른 친구들은 다섯 개, 여섯 개의 가치를 사는 동안 나는 고작 저 세 가지를 샀다. 그중 '잘 생긴 외모의 이성 친구'는 고작 5만 원에 낙찰됐기에 내가 크게 가치를 둬서 얻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뒤의 두 가지의 낙찰가는 각각 35만 원, 40만 원이었다. 어릴 적의 나는 친구를 갖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것, 자유롭게 사는 것보다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공책에 못난 글씨로 짧은 소설을 썼다. 그리고 글쓰기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내 소설을 보여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나는 약간 뻐기는 마음으로 잘 썼다는 칭찬을 기다렸던 것이 기억난다. 선생님은 정말 네가 생각한 것이냐고 물으셨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각 가치마다 낙찰한 사람의 이름을 보고 있자니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이제는 보였다. 어떤 친구는 그 어린 나이에 사랑과 자유, 그리고 다툼 없는 행복한 가정을 원했다. 그 친구는 글쓰기를 마치고 집에 갈 때면 아파트 벤치에 앉아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게 된 남자아이에 대해 이야기해주곤 했다. 또 한 친구는 건강과 친구,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원했다. 그 친구는 남자였고 나와 몇 해 동안 같은 반이었는데 나와 내 동생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도와주곤 했다. 다른 친구는 많은 돈과 정의와 용기를 원했다. 또 나라에 공을 세우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이 친구는 더러운 똥이나 방귀 등의 농담을 좋아하고 늘 실실 웃었는데 그러면서 예습을 엄청나게 열심히 해왔다. 과학 수업 시간에는 아무도 들어본 적도 없는 '횡격막'이 뭔지 대답할 정도였다. 마지막 친구는 잘생긴 외모와 권력과 존경을 원했다. 그 친구는 평소에는 아주 착하다가도 누군가 노랗게 물들인 자신의 앞머리를 건들기만 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주먹질도 잘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애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고, 관계나 베푸는 가치에는 아주 낮은 가격을 매겼던 나는 여전히 상상력과 전문가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제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기뻐하고 아파하며 돕는 마음도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안다. 그 친구들은 지금 어떤 어른이 되고 있을까? 어딘가에서 사랑할 사람을 찾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며 정의 앞에 용감하고 존경받을 만한 어른이 되려 노력하고 있을까? 이제는 자라서 길을 가다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할 그 얼굴들이 생각난다. 우리는 앞으로 자라 어떤 사람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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