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게와 아빠

by 김영지



몇 주 전, 수업이 끝나고 기분이 꿀꿀해 근처의 꽃집으로 향했다.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열심히 점원에게 설명하며 꽃을 고르고 있었다. 뒤에서 기다리며 들어보니 이전에 아내에게 흰 장미가 짧게 꽂힌 박스를 선물했다가 혼났다고 한다. 아마 요새 유행하는 용돈 박스 같은 것을 사다주신 듯했다. 아내가 말하길 꽃에 색이 있어야 하고 꽃병에 꽂고 싶으니 다발로 사 오라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오셨다. 남자가 꽃집에 들어오는 것도 긴장되는 일인데 구구절절 설명까지 하려니 꽤나 곤란하신 것 같았다. 아저씨의 오랜 설명으로 기다리는 손님들이 생기자 점원도 꽤나 곤란해 보였다.



아저씨는 "아니, 뭔 포장지가 중요하다잖여.."하셨다. 뒤에서 기다리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요하죠"하고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그런 거냐며 구원받은 듯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셨다. 그때를 틈타 점원은 내가 먼저 꽃을 고르도록 했다. 나는 점원이 잠시 내 꽃과 병을 포장하러 간 새에 작은 소리로 이미 포장돼 전시되어있는 꽃다발 중 작은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병에 꽂아두는 거 좋아하시면 다발도 클 필요 없어요. 여기 포장 예쁘니까 저 다발 사 가시면 돼요."



점원이 내가 고른 꽃을 봉지에 잘 싸서 가져다줬다. 아저씨는 내가 받아 든 꽃을 보고 예쁘다며 이 꽃과 저 꽃을 번갈아봤다.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내일 다시 오겠다며 떠났다. 오십 대 남자가 아내의 맘에 드는 선물을 고르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아내의 취향도 조금씩 변할 텐데 그것을 맞추려 노력하는 것은 참 로맨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의 마음에 들 선물을 고르려 창피한 것도 잊고 조언을 구하는 아저씨를 보며 아빠도 엄마에게 선물하고는 좋은 소리를 못 듣던 것이 생각나 왠지 정이 갔다.



그런 아빠도 작년 결혼기념일엔 엄마에게 목걸이를 사주고 싶다고 나를 엄청 귀찮게 했었는데. 내가 디자인을 골라 가져가는 족족 더 찾아보래서 뿔 나는걸 참으며 했었는데. 케익도 있으면 좋겠대서 먼저 퇴근하는 내가 퇴근길에 사와 뒷좌석에 넣어두고 아빠가 집에 오며 꺼내와 '짜잔-'하고 들고 들어오랬더니 그것도 제대로 못 했는데. "아빠 그걸 지금 들고 왔어야지 왜 그냥 들어왔어"하고 복화술로 핀잔을 주니 멋쩍게 웃으며 "그러게 아빠가 이런 거 진짜 못 한다"하고 말했는데.



그래도 엄마는 진짜 소녀처럼 볼이 발갛게 돼서 웃었다. 엄마에게 저런 표정이 있었나 싶을 만큼. 아빠랑 나랑 우리 둘이 그렇게 비밀스러운 일을 했다는 게 참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가치관 경매